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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May 15. 2023

생물학적 나이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다.

나이 때문에 곤란하겠다는 말을 대신 들어주는 일이 내 자존감 마저 떨어뜨릴 때가 있다.

어르신들을 대신해서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뿐인데 그런 말들은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다른 수요처로 전화를 거는 일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나이가 많으시다고요? 그 일을 20년 정도 하셨고 일을 놓으신 적도  없으셔서 잘하실 텐데요. 게다가 정말 건강하시고요."

"그래도 생물학적 나이라는 건 무시 못하겠더라고요. 좀 곤란하세요. 최대 65세까지 부탁드려요."

"아, 네에, 알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은 후에는 알 수 없는 열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의미하게 볼펜꼭지를 눌렀다 뗐다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무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어서 전화를 하는 사이엔 심호흡이 필요했다. 이런 점이 내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 중 하나다. 나이 든 사람을 거부하는 직업전선의 틈새를 파고드는 일을 하다 보면 거절당하는 것은 내 몫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내가 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기분이다.

거절이 이어지다가 악수를 청하는 수요처를 만나게 되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지수는 다시 제로상태가 된다. 그만큼 귀하고 고마운 존재로 느껴진다. 열린 마음으로 노인들의 능력만을 보겠다고 하는 수요처는 희망의 줄기 같다. 그리고 그건  내 노후생활마저 긍정적인 기대로 설레게 한다.


구직 접수를 받는 중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이 게셨다.

"천천히 찾아주셔도 되는 데요. 다만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 되겠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해 주십시오. 자꾸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까 안 그래도 초라해져 가는 것 같아 주눅이 드는데 더욱 처량하게 느껴져요. 나만 당하는 건 아닌 건 알지만 몇 번을 그렇게 거절당하고 나면 전화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거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당시의 감정을 다시 상기하시는지 눈가가 붉어져 계신 게 보였다. 당연히 나는 어르신께 걱정하시지 말라고 말했다.  나이를 말했을 때 오케이 하는 수요처만 연결해 드리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69세이시면 아파트 외곽청소를 하는 데에 많은 무리가 있는 나이도 아닌지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게  따라붙던 그  법칙이 어김없이 적용되고 말았다. 내가 자신 있게 장담하는 일은 반드시 어긋나는 이상한 법칙.

어르신께 전화가 왔다." 전화하라는 곳으로 전화를 했더니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서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분명 그 69세이셔도 좋다고 해서 소개해드린 수요처였는데 말이다. 전화를 해서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워크넷 광고와 더불어서 우리에게 의뢰를 했는데 워크넷을 통해서 젊은 분들이 많이 지원을 한 상태라 이번에는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거절했다고....

그래서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니 수긍을 할 수 없었다. 거절의 이유가 너무 적나라했다.

그건  솔직함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어도 직업전선에서는 말이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가 그쪽에 연결을 해드릴 때는 분명 어르신의 나이도 좋다고 하셔서 해드린 거였는데요. 이번엔 젊은 나이 대의 지원자가 많았나 봐요. 그래서 번복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많아서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건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늘 듣던 말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요. 수고해 주셔서 감사해요. 천천히 하세요."라고 답해주셨다. 더욱 죄송스러워지는 마음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말은 비수가 될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반복될수록 상처는 깊고 넓어질 거다.

대신당하는 거절도 이렇게 무안한데 하물며 당사자들이 직접 듣어야 하는 궁색한 거절들은 오죽할까! 물론 직업에 따라 거절당하는 나이대가 다를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힘을 쓰는 일, 재빨라야 하는 일, 정확해야 하는  일, 어쩌면 젊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구하고자 하는 일자리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이 하고자 하지 않는 일들이다. 아파트에서 밀대로 복도를 닦고, 한없이 쌓이는 낙엽을 쓸고 냄새나는 음식물을 비우는 작업들을 하신다.

이미 세월의 흐름 앞에 고개 숙이고 이 세상, 남은  귀퉁이에 걸터앉을 돗자리 한 장을 펴고자 함이시다.

안다. 노인을 직원으로 쓰다가 생기는 문제에 대한 부담을 정책이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거절의 이유는 나이가 많아서 안 되겠다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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