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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Feb 27. 2023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가져도 될까?


내가 노인 취업알선을 시작한 것은 고작 7개월째다. 이 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너무 숙맥이고 풋내기다.

하지만 내가 이 일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어쩌면 지금, 이 날것의 감정이 더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조금씩 무뎌져가도 있는 나를, 동료들을 보고 있다. 문득, 이 감정들을 되살리기엔 너무 멀리 가 버린 후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뭉툭해진다는 건 마음 바닥을 긁혀도 연하고 넓어진 면 때문에 자극이 줄어든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의 보호막일 뿐이다. 




2월에는 항상 많은 문의 전화와 내담자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해 12월 중순 즈음에 접수를 받았던 노인 일자리의 선정여부가 가려지고 수요처와 참여자와의 매칭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에게는 선정되신 분들에게만 문자로 연락이 간다고 안내문과 구두로 설명을 충분히 드렸어도 다시 되묻는 문의가 80퍼센트는 되는 것 같다.  물론 잊으신 분들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신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상당한 수의 문의는 사실 선정되지 못했을 까봐 걱정돼서 하신다.


"아, 어째 12월에 서류를 낸 지가 한참인데 아직 소식이 이렇게 없나요?. "

"이미 *월*일에 문자로 선정되신 분들에게는 알려드렸어요. 문자를 받지 못하셨으면 선정되지 못하신 거 같아요. 성함하고 생년월일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알아봐 드릴게요!" 

대부분의 유선상담의 시작은 이렇다.

"어르신께서는 이번에는 선정이 되지 못하셨네요. 대기번호 ***으로 돼있으시네요."

대답은 거의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면 잠깐의 침묵과 한숨소리를 듣게 되고 의례적인 위로의 말 한마디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거의 하루종일 이런 전화상담이 이어지고 귀가 어두우신 어르신들에게 대답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언제나 한 옥타브정도는 높여져 있다. 그래서 사무실 안은 언제나 북새통이다. 그 사이에서 상대방의 전화 목소리를 감지하려면 절로 미간에 주름이 간다. 누가 본다면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옆으로 돌아보면 어르신이 기웃거리신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르신." 재빠르게 물어본다.

"아, 아까 전화했는데 , 내가 떨어졌다고 그러더구먼. 그래서 내가 어째서 떨어졌는지 궁금해서 왔어요. 누구한테 물어야 하남?"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하신 걸 떨어졌다고 표현하시곤 한다.)

이런 용무로 오시는 분들이 꽤 많으시다. 전화상담으로 충분히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뭔가 마땅하지 않으셨던지 재차 방문을 해서 물으신다. 그러면 해당 사업 담당자에게 안내를 하면 들리는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나보다 더 잘 사는 ***이는 척하고 붙었는데 더 못살고 차도 없고 자식도 없는 내가 왜 떨어졌데요?"라고 하신다. 수 백번도 더 들은 하소연이다. 그때마다 담당자는 점수표를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접수 당시, 제출하신 서류와 일자리 선정을 위한 점수는 어떤 기준으로 매겨지는지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 드려도 수긍을 하지 못하신다.

 "에고, 어떡하나 이거라도 할 수 있어야 먹고사는 데. 80 먹은 노인네를 누가 일을 시켜줘야 말이지. 믿고 있던 건 이것뿐이었는데. 쯧쯔" 대부분 이런 아쉬운 말씀을 뒤로하고 돌아가신다.


 한 번은 70 중반의 여자 어르신이었는데,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셨다.

"어쩐데, 아들 대신에 내가 애들 셋을 키우는데, 이 일이라도 해야 보탬이 되는데.... 어째서 나 같은 사람이 떨어졌대요?"라며 서럽게 우셨다. 거짓 울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울컥 솟는 설움이 섞여있었다.

자판 위를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바라봤다. 

"그렇게 어려우시면 사례관리팀으로 연결해 드릴게요." 담당자도 딱했던지 사례관리 팀으로 연결해 드리려고

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 아니에요, 이미 지원을 받고 있어서 별다른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을 거예요.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얼마이상 돈을 벌면 안 된다고 했어요. 사실 지원받는 돈으로 여기저기 낼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이거라도 해야 했는데...." 라며 다시 울음을 삼키시며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무실의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집까지 모셔다 드릴 것도 아니면서 차마 그 가녀린 어깨를 외면하는 것 같아 문을 닫을 수 없었다. 




하루종일 환청처럼 어르신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분 역시 이 시점에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어있으리라고는 상상이나 하셨겠는가. 온갖 시련을 겪고 난 노후엔 그래도 한 자락 휴식 같은 삶을 살다 가리라는 희망, 아니 누구나 가지는 소망정도는 있지 않으셨겠는가?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현실을 보게 된다. 그것도 적나라하게.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한 들 그걸 보상해 주는 방패막은 한 가지밖에 없다. 

아무리  자식을 잘 키우고 성공시켰다고 해도 자신의 통장에 얼마를 쌓아두는가에 따라서 보상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거다. 누군가는 첫째로 건강을 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건강을 지키려 하면 정말 현실적으로 돈이 많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지금의 노인들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전부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했던 세대다. 그리고 의료실비보험이라는 걸 들어보지도 못한 채 이미 나이 들어버렸다. 


피나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노후엔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게 무어 그리 욕심이겠냐마는 현실은 나이 80에도 경쟁하는 시대에 있다는 거다. 누군가가 떨어져야 내가 붙는 경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 달에 30만 원이 안 되는 일자리에 울고 웃는 게 현실이었다. 추운 겨울날에도 '노인 일자리' 접수창구에 길게 늘어선 줄을 마다하지 않고 서계시는 어르신들 중에는 성실하게 살지 않으신 분이 없고 헌신적으로 살지 않으신 분이 없다. 어쩌다 보니 절실해진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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