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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다름 코치 Feb 10. 2024

아버지의 독선에 무너진 가족애(愛)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가족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라면 명절 때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이다. 대신 명절 연휴 직전 강원도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온다. 올해도 여전히 아이들과 새롭게 식구가 된 강아지를 데리고 본가에 다녀왔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반려견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점심식사하기로 한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강아지를 차에 두고 오라며 큰 소리를 쳤다.

이제 4개월밖에 안된 어린 강아지를 차에 혼자 두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겐 첫 만남부터 두려움과 반항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한 명씩 돌아가며 밖에서 강아지를 지키고 번갈아가며 식사했다.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와 반가운 인사는커녕 반려견에 대한 부정적인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여러모로 실망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당시엔 나도 화가 나서 더 이상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덮어놓자며 다른 이야기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경직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강아지를 돌보느라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점심 식사 후 세배하러 집으로 갔다. 역시나 강아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강한 고집 때문에 아이들과 남편은 밖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돌아가며 세배를 하자.’

 ‘현관에 강아지를 잠깐 두고 인사하자.’

 ‘그냥 차에 잠깐 두자’ 등등...

 강아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요즘 시대 반려견 문화까지 거들먹거리며 부정적인 의견을 굽히지 않는 아버지로 가족들의 명절 만남은 금세 헤어짐으로 끝났다.


 영월에 도착한 지 2시간 만에 우린 집으로 향했다. 세배도 하지 못하고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고 불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의 독선적이고 손녀들을 위해서라도 잠시나마 참고 이해해 주려는 마음이 0.1도 없었던 모습에 서운함과 안타까움,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이 올라왔다. 더불어 나의 어린 시절 무섭고 일방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트라우마처럼 고통스럽고 불안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소통 강사라며 활동하고 있는 내가 오히려 아버지와는 현실에서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 같아 강사로서 자질까지 다시 생각하며 자존감마저 떨어졌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분명 그렇게 손녀들을 돌려보낸 아버지도 미안하고 속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은 확고했지만 조금만 양보했더라면 분위기를 이렇게 망치지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했길 바랐다.

 돌아오는 길 상황을 정리해 보며 그때의 갈등 상황을 비폭력대화법을 시도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봤다.


 아버지는 강아지가 사람과 집에서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셨군요.”(관찰-가시 빼는 작업)

 요즘 반려견 문화도 이해하기 어려우셨고요.”

 그런데 손녀들이 강아지를 데려와 당황스럽고 의견을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기도 하셨겠어요.”(느낌)

 손녀들은 새로운 가족인 강아지와 함께 반갑게 인사 나누고 싶었나 봐요.”(욕구)

 아버지가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고 강아지는 가방에 둘 테니 양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부탁)” 


 현재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며 우리가 원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부탁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과 뒤늦은 후회를 했다. 당시엔 나도 화나고 어이없는 마음에 더 강하게 아버지에게 언성이 높아졌다. 비폭력대화법은 알고 있지만 시도해 보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법에 대해 강의하고 코칭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결국 세배하며 덕담 나눌분위기는 깨졌고 서둘러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차 안을 감싸는 분위기는 무겁고 싸늘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러면서 나의 어린 시절 무섭고 소통이 안 됐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며 지금 내가 이렇게 소통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배움에서 끝이 아닌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소통을 배운 적이 없던 것이다.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할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타인을 이해하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소통력을 알아차리고 타인과 원활히 대화하는 학습과 훈련을 했다면 지금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지 않았을까? 아쉬움 섞인 상상을 해본다.


 40년 동안 20명이 넘는 자동차정비공장의 리더로서, 약 50년간 함께한 남편으로써, 그리고 한 가정의 아버지, 할아버지로써, 마지막으로 한평생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자신과의 소통법을 배우고 노력했다면 아버지의 삶, 그리고 함께했던 직원들, 가족들의 삶까지 달라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과 소통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느낄 수 있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금쪽 상담소와 같은 고민 상담 프로그램의 인기가 여전히 뜨겁다. 고민을 털어놓는 출연자의 사연을 잘 들어보면 항상 가족과 소통에 문제가 갈등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부모의 문제가 가장 크지만 해결 방법을 모르거나 개선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오은영 박사가 아무리 훌륭한 설루션을 알려준다 하더라도 스스로 깨우치고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변할 수 없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알게 된다.


 비록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소통이라는 과목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소통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로부터 시작해 가족, 친구, 직장에서의 모든 관계는 소통에서 출발하고 이어진다. 이 모든 관계와 잘 지내고 싶다면 우선 내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과 유독 대화하기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노력한다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소통력은 부단한 노력에 의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변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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