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보다 무서운 건 월세였다.
인테리어를 고민하기도 전에 통장 잔액이 먼저 줄어든다. 창업은 꿈으로 시작했지만 현실은 월세와 공사비, 각종 고정비로 먼저 다가왔다.
가게 계약을 하고 나면 조금은 후련할 줄 알았다.
하준은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일찍 눈을 떴다. 이미 퇴사 의사를 밝혔는데도 몸은 회사 다닐 때 리듬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오늘부터 출근할 회사 대신, 머릿속에 가게가 먼저 떠오른다는 점이었다.
천장 조명은 뭘 달지. 간판은 얼마나 눈에 띄게 해야 하지. 테이블은 두 명 손님 위주로 놓는 게 좋을까. 배달 동선이 꼬이지 않으려면 주방 입구를 어떻게 빼야 하지.
생각은 제법 사장다웠다. 문제는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는 거였다.
오전 9시 12분.
휴대폰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보증금 이체 확인, 중개 수수료 출금, 계약금 처리 완료
하준은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어제는 종이 위 숫자였는데, 오늘은 진짜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이제 진짜구나.
꿈은 늘 시작할 때 멋있다. 문제는 통장 잔액이 그 꿈을 숫자로 번역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감정이 달라진다는 거였다.
하준은 습관처럼 은행 앱을 다시 열었다. 잔액을 세 번쯤 확인하고 나서야 휴대폰을 내려놨다.
“이게 맞나…”
작게 중얼거렸지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 무렵, 인테리어 업체 실장과 가게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하준은 조금 일찍 도착해 텅 빈 매장 안에 서 있었다.
낮에 보는 가게는 어제와 또 달랐다. 햇빛이 들어오니 낡은 벽지가 더 선명했고, 바닥의 긁힌 자국도 더 잘 보였다. 씽크대는 교체해야 할 것 같았고, 주방 쪽 환기시설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잠시 후 인테리어 실장이 줄자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전체적으로는 깔끔하게만 손보셔도 괜찮겠는데요? 완전 철거까지는 안 가도 될 것 같아요.”
그 말에 하준은 조금 안심했다.
“그럼 비용도 좀 줄겠죠?”
실장은 애매한 표정으로 웃었다.
“줄긴 줄죠. 근데 주방 쪽 설비 손보면 또 들어가요. 간판 하셔야 하고, 도장 새로 해야 하고, 조명 바꾸면 분위기 사니까 그 부분도 보셔야 하고요.”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거의 견적서의 다른 표현처럼 들렸다.
철거 일부. 도장. 전기. 조명. 간판. 배수. 주방 설비. 테이블. 의자.
하준은 실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지만, 머릿속에는 계속 숫자만 쌓였다.
“대략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나올까요?”
실장은 태블릿을 몇 번 두드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끼면서 해도 이 정도, 조금 분위기 내시면 이 정도요.”
하준은 잠깐 말이 없어졌다.
예상보다 컸다. 많이 컸다.
그는 본사에서 일할 때 수많은 점주들을 봤다. 신규 오픈하는 가게도 많이 봤고, 폐업 직전인 가게도 많이 봤다. 그때는 다들 비슷해 보였다.
인테리어를 하든, 메뉴를 바꾸든, 결국 장사만 잘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장사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 대부분은 돈이었다.
실장이 돌아간 뒤, 하준은 혼자 가게에 남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빈 매장 한가운데 앉아 있으니 조용한데 이상하게 머리는 더 시끄러웠다.
이걸 줄이면 저게 문제고, 저걸 아끼면 또 다른 데서 티가 날 것 같았다.
간판을 너무 평범하게 하면 지나가는 사람이 안 볼 것 같고, 인테리어를 너무 신경 안 쓰면 처음 들어오는 손님이 실망할 것 같고, 그렇다고 다 하자니 돈이 무섭게 빠져나갔다.
그때 친구 민석에게 전화가 왔다.
“견적 받았냐?”
하준은 대답 대신 한숨부터 쉬었다.
“왜, 생각보다 많이 나왔냐?”
“많이 나온 정도가 아니라, 아직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민석은 웃지 않았다.
대신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원래 다 그래.”
“아니, 가게 하나 차리는 게 이렇게 돈 먹는 일인지 몰랐어. 계약금 나갔지, 보증금 나갔지, 중개수수료 나갔지, 이제 인테리어까지.”
“그래서 다들 오픈하고 나서 첫 달부터 멘붕 오는 거지.”
“난 오픈도 안 했는데 벌써 오고 있어.”
민석이 말했다.
“하준아, 지금부터 제일 중요한 거 뭔지 알아?”
“돈 아끼는 거?”
“아니. 뭘 아끼면 안 되는지 구분하는 거.”
하준은 잠깐 조용했다.
“무슨 뜻이야?”
“사장들이 처음에 다 비슷해.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신경 써. 간판 예쁘게 하고, 의자 좋은 거 놓고, 벽 예쁘게 꾸미고. 근데 막상 운영 시작하면 진짜 피곤한 건 다른 데서 터져.”
“다른 데?”
“사람. 시간. 기록. 정산.”
하준은 피식 웃었다.
“야, 아직 직원도 안 뽑았어.”
“그러니까 더 그렇지. 사람 한 명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게는 그냥 네 공간이 아니라 운영하는 곳이 돼.”
민석의 말은 이상하게 자꾸 오래 남았다.
사실 하준이 상상한 사장님의 모습은 조금 폼이 났다. 깔끔한 앞치마를 두르고, 익숙하게 주문을 받고, 손님과 인사하고, 가게 문 닫고 나면 뿌듯하게 하루를 정리하는 그런 모습.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그는 지금 빈 매장 한가운데서 벽지 색보다 월세 납부일을 먼저 고민하고 있었다.
예쁜 조명보다 이 고정비를 감당하려면 하루에 몇 그릇을 팔아야 하는지부터 계산하고 있었다.
하준은 노트북을 꺼내 간단하게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월세. 관리비. 공과금 예상치. 인테리어 비용. 주방 설비. 식자재 초기비용. 배달앱 수수료. 인건비 예상.
적으면 정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장사는 손님이 오기 전부터 이미 지출과 싸우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월세는 유독 이상했다. 매출이 없든, 비가 오든, 손님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그냥 정해진 날이 되면 내야 했다.
노력과 무관한 비용.
하준은 화면에 적힌 월세 숫자를 한참 봤다.
하루로 나누고, 한 끼 가격으로 나누고, 손님 수로 나눠봤다.
그러자 월세는 더 무서워졌다.
“이걸 내려면…”
손님 몇 명이 와야 하지.
점심 피크만 잘 받으면 될까. 배달이 어느 정도 나와야 하지. 한가한 평일 저녁은 어떻게 버티지.
가게는 아직 열지도 않았는데, 하준의 머릿속은 이미 한 달치 운영으로 가득 찼다.
저녁쯤 엄마가 전화를 했다.
“오늘은 뭐 했어?”
“가게 갔다 왔지. 인테리어 견적도 보고.”
“어땠어?”
하준은 잠시 웃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무섭더라.”
엄마는 조금 놀란 듯했다.
“너 그런 말 잘 안 하잖아.”
“원래는 좀 설렜는데, 이제는 설렘보다 계산이 먼저 돼.”
엄마가 조용히 물었다.
“후회해?”
하준은 빈 매장을 떠올렸다. 낡은 벽, 작은 주방, 햇빛 들어오던 바닥,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그 공간.
“아니. 후회는 아닌데…”
말끝이 잠시 흐려졌다.
“내가 생각한 사장님이랑 진짜 사장님이 좀 다른 것 같아.”
엄마는 한참 말이 없다가 웃었다.
“원래 멀리서 보면 다 쉬워 보여.”
그 말이 맞았다.
본사에서 볼 때 자영업은 매출표와 점포 사진이었다. 잘되는 매장은 잘되는 이유가 있어 보였고, 안 되는 매장은 뭔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자기 차례가 되니 알게 됐다.
가게를 유지한다는 건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결정들을 버티는 일이었다.
무슨 메뉴를 팔지보다 언제 돈이 빠져나가고, 어디서 새고, 누구 손에서 흔들리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월세였다.
그날 밤, 하준은 가게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메모장 제목을 새로 바꿨다.
원래는 오픈 준비였는데, 이제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꿨다.
버텨야 하는 비용
그 아래에 하나씩 적었다.
월세
관리비
공과금
인건비
식자재
배달 수수료
예기치 못한 변수
마지막 줄에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사장이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것들
왜 그 문장을 적었는지, 하준 자신도 정확히는 몰랐다. 아직 직원도 없고, 오픈도 안 했고, 실제 운영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도 어쩐지 예감이 들었다.
돈은 숫자로 빠져나가지만, 가게는 결국 사람과 시간 때문에 흔들릴 거라는 예감.
그리고 그걸 제때 확인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예감.
하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봤다.
사장이 되면 자유로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건 자유보다 무게였다.
그래도 이상하게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무섭지만 해보고 싶었다. 겁나지만 내 선택이라는 마음이 더 컸다.
다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가게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건 용기만이 아니었다.
매달 빠져나갈 돈을 버틸 현실감, 그리고 그 비용을 감당할 만큼 운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각오.
그게 없으면, 예쁜 인테리어는 오래 못 간다.
하준은 눈을 감기 전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잘 열기보다… 잘 버텨야겠다.”
그리고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그의 가게를 따라다니게 됐다.
오픈 전 가장 무서운 건 공사 소음이 아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계속 빠져나가는 돈이었다.
다음 화에서는, 직원을 뽑으면 일이 줄 줄 알았던 사장의 첫 착각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