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오픈 첫날, 주문보다 멘붕이 먼저 왔다.

오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by 경리언니찐나

드디어 오픈 첫날. 손님이 오는 순간 기뻐해야 했지만, 실제로 하준에게 먼저 온 건 설렘보다 멘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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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전날 밤, 하준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도 머릿속은 계속 가게 안에 있었다. 식자재는 빠진 거 없었는지, 키오스크 메뉴는 제대로 들어갔는지, 포스기 연결은 괜찮은지, 배달앱 사진은 잘 올라갔는지, 수빈이랑 도윤에게 전달한 출근 시간은 정확했는지.

걱정은 끝이 없었다.


새벽 세 시쯤 눈을 감았다가, 다섯 시 반에 다시 떴다. 알람보다 먼저 깼다. 피곤한데 이상하게 몸은 이미 일하러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준은 허겁지겁 씻고 집을 나섰다.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거리였다. 가게 셔터 앞에 도착했을 때는 공기가 차갑고 조용했다.

그런데 셔터를 올리는 순간, 하준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이제 진짜 내 가게구나.


며칠 전까지는 공사 중인 빈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간판도 달렸고, 테이블도 들어왔고, 주방 기계들도 제자리를 찾았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가게 같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준은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리스 주방이 차갑게 반짝였고, 새로 닦아놓은 테이블에 형광등 불빛이 길게 비쳤다.

잠시 서서 가게를 한 바퀴 둘러본 그는 조용히 웃었다.

“됐다. 진짜 열긴 여네.”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일이 시작됐다.

전날 정리해둔 줄 알았던 식재료 위치가 생각보다 불편했다. 소스 통은 손이 바로 닿지 않는 자리에 있었고, 포장 용기는 예상보다 꺼내기 번거로웠다. 주방 동선도 머릿속에서 그려본 것과 실제가 조금씩 달랐다.

하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건 여기 두면 안 되겠다… 아, 이건 너무 멀다.”

혼자 옮기고, 다시 놓고, 또 열어보고, 닫아보고. 시간은 빠르게 갔다.

7시 50분. 도윤이 먼저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짧고 익숙한 인사. 하준은 반가운 마음에 크게 대답했다.

“어, 일찍 왔네요.”

도윤은 시계를 한번 보고 말했다.

“8시 출근이니까요.”

그 말은 너무 당연한 말이었는데, 하준은 괜히 머쓱해졌다.

“아, 그렇죠. 잘 왔어요.”

도윤은 곧바로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 쪽을 살폈다. 어제 설명했던 위치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

“소스 이쪽으로 옮기면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왜요?”

“조리하면서 두 번 꺾어야 해서요. 점심 때 바빠지면 계속 부딪힐 것 같아요.”

하준은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 그렇게 하죠.”

그때까지만 해도 하준은 조금 안심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 명은 제시간에 왔고, 차분했고, 생각보다 잘 봐주고 있었다.


문제는 7시 58분에 시작됐다.

수빈에게서 카톡이 왔다.

사장님 저 거의 다 왔어요! 5분 정도만요 ㅠㅠ

하준은 화면을 잠깐 바라봤다.

8시 출근인데 5분 정도만요.

어제까지라면 “첫날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첫날이었다. 그리고 첫날의 5분은 그냥 5분이 아니었다.

그 5분 동안 누가 준비를 하느냐, 누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냐, 누가 키오스크 옆에서 동선을 점검하느냐가 다 달라졌다.

하준은 답장을 짧게 보냈다.

조심해서 와요. 도착하면 바로 준비 부탁해요.

보내고 나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도윤은 이미 주방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하준은 괜히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기가 불편해하는 티를 내고 싶진 않았지만, 이미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수빈은 8시 9분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연달아 말했다.

“죄송해요 사장님, 버스가 생각보다 늦게 와서요. 진짜 빨리 왔는데…”

하준은 순간 여러 말이 떠올랐지만 삼켰다.

첫날이니까. 지금 분위기 흐리면 안 되니까. 일단 시작은 해야 하니까.

“일단 준비부터 해요.”

수빈은 빠르게 앞치마를 두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물컵을 정리하고, 키오스크 주변을 닦고, 테이블을 다시 정돈했다.

확실히 손은 빨랐다. 표정도 밝았다. 응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준은 이상하게 아까 그 9분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오전 10시 반까지는 비교적 괜찮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오픈 축하 화분을 보내준 지인들이 몇 명 들렀고, 근처 상가 사장님들이 얼굴을 비추며 인사도 했다. 커피를 사 들고 온 민석은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하준은 웃었다.

“생각보다? 말이 왜 그래.”

“아니, 네가 해놓은 거 보니까 진짜 사장 같아서.”

“나 오늘 새벽부터 사장이었어.”

민석은 키오스크를 한번 눌러보더니 말했다.

“지금은 웃지? 점심 지나고도 웃고 있으면 인정.”

“재수 없게 왜 그래.”

둘은 웃었지만, 민석 말은 틀리지 않았다.


11시 40분쯤부터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 테이블이었다. 그다음엔 포장 손님 한 명. 곧이어 키오스크 주문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배달앱 주문도 한 건 들어왔다.

하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좋다. 이 정도면 할 만하다.


그 생각은 정확히 7분 뒤에 깨졌다.

주문이 겹치기 시작하자 모든 게 동시에 느려졌다.

주방에서는 도윤이 조리 순서를 맞추느라 말수가 줄었고, 하준은 중간에서 재료를 건네고 포장까지 챙기느라 손이 모자랐다. 수빈은 홀 응대와 키오스크 문의, 포장 손님 응대까지 혼자 커버하려다 보니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사장님, 이거 포장 먼저예요?”

“아니요, 매장 3번 먼저요. 아니 잠깐, 배달이 더 급한가…”

“이 주문 취소됐어요?”

“아니요, 결제 대기예요. 잠깐만요.”

“물티슈 어디 있어요?”

“오른쪽 서랍… 아니 그 아래!”

말이 겹쳤다. 동선이 겹쳤다. 시선이 겹쳤다.

하준은 갑자기 자기가 어디를 먼저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방을 도와야 하나. 홀을 봐야 하나. 배달 시간을 맞춰야 하나. 주문 순서를 다시 잡아야 하나.

손님은 계속 들어오는데, 사장은 점점 더 아무것도 제대로 못 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손님이 키오스크 앞에서 말했다.

“이거 주문됐나요?”

수빈이 급히 달려가 응대했다.

“아 네, 잠시만요. 확인해드릴게요.”

그 사이 포장 손님이 카운터 앞에서 기다렸고, 주방에서는 도윤이 낮게 말했다.

“사장님, 밥 한 통 더 꺼내야 해요.”

하준은 돌아보며 대답했다.

“아, 내가 할게요.”

그런데 냉장고 앞에서 밥통을 꺼내는 순간, 하준은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준비해둔 양이 생각보다 빨리 줄고 있었다. 이 속도면 점심 피크 안에 한 번 더 손봐야 할 수도 있었다.


그때 배달앱 알림음이 또 울렸다.

하준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손님이 많아 기뻐해야 하는데, 왜 지금은 기쁨보다 압박이 먼저 오는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12시 18분.

홀에서 수빈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죄송합니다, 금방 나가고 있습니다.”

하준은 뒤를 돌아봤다. 기다리던 손님 한 명이 시계를 보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물을 더 달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주문 순서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하준은 정리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모든 게 동시에 터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 본인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사장은 원래 전체를 봐야 하는 사람인데, 하준은 지금 한가운데 끼어서 같이 허우적대는 사람에 가까웠다.

피크가 조금 꺾인 건 1시가 넘어서였다.


세 사람 모두 말수가 줄어 있었다. 손님은 여전히 있었지만, 아까의 폭발적인 흐름은 한 번 지나갔다.

하준은 주방 벽에 잠깐 기대 숨을 골랐다. 등이 축축했다. 팔은 무겁고 머리는 멍했다.

민석이 아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점심 지나고도 웃고 있으면 인정.

하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웃긴 뭘 웃어.


수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제가 주문 확인을 조금 더 빨리 했어야 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하준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수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도윤도 나름 잘 버텼고, 수빈도 손이 느린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누가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주문이 몰릴 때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디서 누가 체크해야 하는지가 정확히 정리돼 있지 않았다.


즉, 사람 문제가 아니라 운영 문제에 가까웠다.

하준은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아니에요. 첫날이라 다 같이 정신없었죠. 저도 완전 엉망이었어요.”

도윤이 물 한 컵을 마시고 말했다.

“주문 몰릴 때 순서 기준만 정하면 나아질 것 같아요. 포장, 매장, 배달이 한 번에 들어오니까 우선순위가 계속 바뀌어요.”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리고 주방 위치도 조금 다시 바꿔야 할 것 같고…”

수빈도 작게 말했다.

“홀에서 제가 뭘 먼저 봐야 하는지도 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키오스크 문의, 포장 응대, 테이블 정리 다 겹치니까 순간 헷갈렸어요.”

하준은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망한 건 아니었다. 다만 준비가 덜 된 상태로 현실을 맞은 것뿐이었다.

첫날이라 그런 게 아니라, 첫날이라 드러난 거였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운영은 언제나 부드러웠다. 하지만 실제 운영은 주문 하나, 질문 하나, 동선 하나가 겹치는 순간 바로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꼬임은 누가 더 열심히 하느냐보다, 누가 무엇을 언제 확인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영업을 마치고 셔터를 내린 뒤, 하준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다리는 무겁고 허리는 뻐근했다. 몸도 힘들었지만, 더 피곤한 건 머리였다.

오늘 하루 종일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올려보려 했는데, 이상하게 남는 건 정신없었다는 감각뿐이었다.


그는 노트북을 열고 메모장을 켰다.

오픈 첫날 문제 정리

그리고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식재료 위치 재정리 필요

주문 몰릴 때 우선순위 기준 없음

홀 역할 분담 불명확

배달/포장/매장 주문 확인 방식 정리 필요

피크타임 준비 수량 다시 계산

출근 시간 준수 중요

사장이 전체를 볼 수 있는 구조 필요

마지막 문장을 적고 나서 하준은 한참 손을 멈췄다.

사장이 전체를 볼 수 있는 구조.

오늘 가장 힘들었던 건 바빠서가 아니었다. 바쁜 와중에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다 결국 다 흔들렸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장사는 손님이 많다고 무조건 잘되는 게 아니었다. 그 손님이 몰릴 때 가게가 무너지지 않게 버티는 구조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열정만으로는 절대 안 만들어졌다.

하준은 가게 불을 끄기 전, 텅 빈 홀을 한번 돌아봤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설렘으로 보이던 공간이 이제는 질문으로 가득 찬 공간처럼 보였다.

어디서 병목이 생겼는지. 누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오늘은 오픈 첫날이었고, 하준은 웃으며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성공보다 숙제가 더 많이 남은 하루였다.

그렇다고 이상하게 절망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선명해졌다.

가게는 열었다. 이제부터는 굴러가게 해야 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가게 문은 열었지만, 운영은 아직 시작도 못 한 기분이었다.


다음 화 예고

다음 화에서는, 바쁜데 왜 남는 돈이 없는지 사장이 처음으로 현실을 체감합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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