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오두막은 아니지만
13년 전인가 14년 전인가, 살림을 동강낸 다음 반려인과 둘이 동남아를 구석구석 돌아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도착한 여행의 첫 도시 치앙마이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정을 잘 모르고 처음 며칠만 예약해 둔 호텔은 규모만 컸지 폐허처럼 을씨년스러웠고, 꽃 축제를 이제 막 치르고 난 도시 분위기는 맥이 빠진 듯 느적지근했다. 널찍하고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을 도무지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그 길을 건너지 못하면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근처에서는 괜찮은 커피를 마실 만한 카페 한 곳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마감을 앞둔 일거리를 짊어지고 커피 사냥을 하며 쫓기듯이 일을 하는 동안 반려인 나무는 싼 장기 숙소를 찾아 온 시내를 걸어서 돌아다녔다. (맞다, 그랩 같은 게 전혀 없고 스마트폰이 이제 막 상용화되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저녁마다 만난 우리는 그날의 성과를 공유했는데, 치앙마이에서 느긋하게 머물면서 태국 분위기를 익히고 태국어를 어느 정도 배운 다음 메콩 강을 따라 동남아를 일주하겠다던 원대한 계획이 초장부터 무너지는 듯했다. 이제 내일이면 어디로든 가야 하는 그 호텔의 마지막 저녁 나무(반려인)는 말했다.
“자, 우리한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대학가에 있는 원룸 숙소야. 여기는 활기차고 재미있는 한편 밤에 조금 시끄러울지도 몰라. 다른 하나는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작은 숙소인데, 방은 좁고 어둡지만 주인아저씨가 친절하고 좋아. 첫 번째 숙소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숙소인 한편 두 번째 숙소에서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며 지내야 해.”
우리는 각자 10분 정도 고민한 다음 작은 쪽지에 자기가 가고 싶은 숙소를 적어 주먹에 쥐고 함께 내밀었다. 탁자에 떨어진 두 쪽지에는 똑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다.
“렉 아저씨네.”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를.
그곳에서 우리는 렉 아저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태국 문화를 익혀 나가게 될 터였고,
나무는 매일 밤 동네 아저씨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며 태국어를 유창하게 익히게 될 터였다.
린을 만나 가족처럼 친한 친구가 될 것이었고,
근처 가게 사람들과 얼굴을 익혀 마치 동네 사람인 양 인사를 나누고 다닐 터였다.
렉 아저씨의 친구이자 외로운 미식가인 리 아저씨를 만나 치앙마이 곳곳의 노포와 유명 음식점을 섭렵하게 될 터였고,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쉬고 가게 될 터였다.
치앙마이를 찾을 때마다 다른 숙소에 머물더라도 선물을 사들고 인사를 하러 여기에 들르게 될 터였고,
그때마다 아저씨네 가족이나 친구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게 될 터였다.
그 후에 태어난 아이와 함께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인사를 하게 될 터였고,
그 아이는 자라서 근처를 지날 때마다 렉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러 가자고 졸라대고, 동네 아저씨들의 예쁨을 받다 못해 설날 용돈까지 받게 될 터였다.
(태국에서는 새해 때 행운의 상징으로 아이들에게 붉은색 돈(그러니까 100바트짜리 지폐다)을 준다고 한다. 정말 그런 건지, 아저씨가 용돈을 주고 싶어서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치앙마이를 찾았을 때, 그러니까 올해 봄에는 차로 1시간이나 걸리는, 생긴 지 100년이 넘었다는 카우소이집에 카우소이를 먹으러 갔었다. 그날 우리가 까이뚠(향신료닭요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렉 아저씨의 친구는 그 다음날 뺏뚠(까이뚠과 비슷한데 오리로 만든 요리)를 만들어 우리가 묵는 숙소까지 가져다 주셨다. 그 뺏뚠은 어디에서 파는 것과는 전혀 다른 깊은 맛이 났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치앙마이를 생각하면 렉 아저씨네 숙소 2층 방(8호실)이 떠오른다. 침대 하나와 장 하나와 간이 의자 하나와 작은 탁자 하나로 가득 찼던 좁은 방. 나무로 된 바닥은 삐그덕거렸고, 노란 조명은 못내 어두웠다. 문을 열고 나가면 있는 복도 발코니에서는 작지만 아늑한 안마당이 내려다 보였다. 물고기가 가득한 정원 연못이 있던 탓에 모기들이 기승을 부렸지만 나는 꿋꿋하게 문을 활짝 열고 일을 했다. 햇살이 가득한 복도에서는 일을 하다 나를 기웃거리는 린의 기척이 있었다. 새벽마다 근처의 절에서 종소리가 울렸고 저녁에는 태국 도마뱀 뚜깨가 꼭고꼭고 울었다. 란나식의 높은 지붕이 붙은 작지만 멋진 대문을 넘어서면 집의 작은 불단에서 피우는 향 냄새가 풍겼다. 마당 한쪽,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공용 공간에는 항상 아저씨가 좋아하는 옛날 팝송이 틀어져 있었다.
저녁마다 마당에 나와 있던 아저씨는 우리가 대문을 넘어 들어갈 때마다 터무니없이 공손하게 태국식 인사를 해 주고 어디 다녀왔는지, 밥은 먹었는지, 즐거웠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일을 잘 되고 있는지를 살뜰하게 물었다. 아저씨는 태국어로 말을 걸 때면 아직 서툰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천천히 발음해 주었다. 그 질문들이 얼마나 정성스러웠는지 우리는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 아는 태국어 단어를 총동원하여 충실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매일 같이 음식이 있을 때마다 함께 먹자고 권하고, 또 매일 같이 맥주를 함께 마시자고 권하고, 모든 것이 다 궁금한 우리의 서툰 태국어 질문에 서툰 영어로 열심히 답해 주시던 그 분. 매일 밤마다 오래도록 이어졌던 서툰 태국어와 서툰 영어의 대화.
우리가 아저씨한테 가장 많이 들은 태국어는 아마도, “낀 도이깐 마이?”(같이 먹을래?)와 ”담 사바이.“(마음 편하게 있어.)
우리가 아저씨한테 가장 많이 한 태국어는 아마도, “아러이 캅/카.“(맛있어요.)와 ”사눅 캅/카.”(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