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반드시 챙긴다!
궁극적인 한 가지를 꼽는 상상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무인도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챙기게 될 궁극의 책 한 권 같은 상상이다. (바다의 무인도를 간다면 물론 <모비딕>이다! 외로운 바닷가에 홀로 앉아 이스마엘과 함께 인간 존재의 하찮음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숲 속에 홀로 살게 된다면 다른 책을 가져가야겠지. <월든>이라면 너무 빤해서 재미가 없을 테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외로 <비밀의 화원> 같은 선택지가 있을지도…)
이런 상상은 혼자만의 놀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거리이기도 하다. 그중에는 물론 이런 질문도 있다. 어떤 여행에서든 꼭 챙겨가야 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두두두둥!
물론 체력이다! 농담이 아니다. 아무리 즐거운 여행이라도 몸이 아프고 피곤하면 즐길 수 없다. 휴양 여행이라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여행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쓰러지지 않고 버텨야 휴양도 할 수 있는 법이다. 밤샘 비행기를 타고 한숨 못 자고 도착해도 다음 날 웃으며 새 도시를 탐험할 수 있고, 하루에 10킬로미터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을 수 있다면 여행 중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만사 오케이일 것이다. 힘든 순간도 여행의 추억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고 즐거운 순간을 발견하는 감각이 한층 날카로워진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몸과 마음에 익숙지 않은 일들을 계속 겪어내야 하는 일이므로 즐거움과 재미가 큰 만큼 부담도 크기 마련인데, 일단 체력의 과부하가 걸려 버리면 아무리 즐거운 일들이라도 고행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럼 내가 왜 여기에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이러고 있지, 라는 회의감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 고행마저도 삶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멋진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누리려 하는 경지에 올랐다면 그것조차 괜찮을 테지만…
체력에 더해 챙겨가면 좋을 것들을 굳이 꼽자면, 한 가지는 언어다. 아주 간단한 인사말,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에서 시작해서 실로 큰 도움이 되는 숫자 말하는 법, 예의 바르게 부탁하는 말, 내 기분을 표현하는 말 정도다. 여기에 더해 서투르더라도 조금은 다양한 어휘를 익혀간다면 그때부터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아무리 서툴다 해도 낯선 언어로 건네는 한 마디 인사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신호다. 나는 단지 멀찍이 서서 관찰하는 구경꾼이 아니고 손가락 하나만큼이라도 이곳에 닿고 싶은, 관계 맺기가 가능한 사람이에요.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손을 내밀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언어에는 젬병이라 아무리 배워보려 해도 잘 모르겠다면 핵심 단어 하나(예를 들어 영어에서 핵심 단어는 please다)만을 잘 익힌 다음 ‘잘 모르겠지만 부탁해요’라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갖추면 좋을 것. 바로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는 적당한 무딤이다. 혹은 유연함이다. 의외로 사람마다 자신만의 기준이 뚜렷한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곧 죽어도 맨얼굴로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잠자리에 벌레라면 작은 개미 한 마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깨끗함과 청결함의 기준이 남보다 월등히 높은 사람도, 소음에 대한 내성이 낮은 사람도, 공기와 냄새에 대한 특히 민감한 사람도, 낯선 맛과 향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건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지금 살고 있는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의 장소로 여행을 간다면 자신이 모르고 있던 자신의 까탈스러운 기준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몇 가지가 있다. 세제의 과용, 담배 냄새, 개인적 공간의 침입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여행을 즐겁게 하려면 그런 기준을 조금은 낮출, 혹은 낮추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 따위는 하기 싫고 자신의 기준에만 맞춰 살고 싶다면, 지금 살고 있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마음껏 기준을 높이고 살 일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을 시험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하찮은 경험에 비춘다면 자신의 기준을 뒤흔들고 무너뜨려 보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일수록 낯섦에서 오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연하게 대처하고 이를 오히려 즐거움과 재미로 삼으며 여행을 할 수 있다. 무딤은 결국 마음의 체력인 셈이다. 몸이 여행의 피로를 견디듯 마음도 낯섦을 견뎌내야 한다.
만약 도저히 그런 기준을 낮출 수 없고, 내가 왜 그 기준을 낮추어야 하냐고 생각할 만큼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면 뭐, 괴롭고 힘들어하면서 여행을 하든가, 그저 집에 있으며 안온하지만 시야가 좁은 일상을 누리든가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 계획이 잡히면 그때부터 체력을 키운다. 몸에 의도적으로 과부하를 걸어 체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조금씩 높여 나간다. 배낭을 짊어지고 마라톤을 뛰는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뙤약볕에 열 걸음을 걸었다고 쓰러지지 않을 정도는 단련한다. 장시간 비행기를 탔다고 해서 피로에 잠식되어 끙끙거리지 않고 여행지의 공기와 소리와 냄새와 분위기를 온전히 감각할 여유 정도는 가질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마음의 체력도 키우려 한다. 짐을 싸면서도 ‘버려두고 가야 할 것들’, ‘놓고 가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꼭 필요한 것과 없어도 괜찮은 것과 반드시 버려야 할 것들.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 필요한 것들은 삶에서도 필요한 것들이고, 여행에서 버려야 할 것들은 삶에서도 버려야 할 것들이다. 그러니까 여행은 삶에 대한 초특급 집중 수련 코스가 맞다. 고행과 사유와 수행을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