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혼자 있기

한밤중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외로움과 자유에 대하여

by 와리

혼자 여행을 하면 어느 밤에는 꼭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다. 낯선 곳에서 혼자 잠드는 긴장감도 있기 하거니와 아무래도 익숙지 않은 기척과 소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잠이 옅어 편안한 집에 있을 때조차 뒤척이기가 흔하니, 낯선 여행지에서 잠을 깨는 일이야 당연한 일일 테다.

혼자 여행 중 한밤중에 잠을 깨면 우선 공기와 냄새가 낯설다. 몸이 닿는 침구의 감촉도 어색하고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려와 한참 동안이나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보면 깨닫는다. 아, 지금 나는 이 낯선 도시에 혼자 있구나.

여기에서는 아무도 나라는 존재를 알지 못한다. 나의 안녕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생명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 어둡고 캄캄한 곳에 혼자 있다. 그러면 질문이 찾아온다.


나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원래는 일상에서도 내내 곱씹으며 살아야 하는 질문일진대. 여행지에서 혼자 맞이하는 이 질문은 한층 짙고 깊다. 한없이 외로우면서도 한없이 자유로운, 어쩌면 공포스럽고 어쩌면 설렘이 가득한 상태다. 홀로 외로이 뚝 떨어진 내 몸과 마음은 생존의 공포로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그 와중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오직 나만의 몸과 마음에 깊이 집중한다. 차분하고 평온하고 여유 있는 상태에서의 명상이 아니다. 그야말로 존재의 의미가 달린 급박한 욕구에 쫓기며 헐레벌떡 꾸역꾸역 하는 집중의 명상이다.

사회의 틀도, 책임과 역할도, 가족의 정도, 그 어떤 것도 나를 붙잡아 주지 않는 상태에서 홀로 투쟁하듯 의미를 찾는 그 시간은 무시무시하면서도 자유롭다. 설렘인지 공포인지 모를 감각에 피부가 따끔거리고,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핑핑하며 빠른 속도로 돌아간다. 자질구레하지만 많기도 많았던 여러 가지 장애들에 주춤하던 것들이 눈부신 추진력을 얻어 앞에 놓인 모든 것을 다 흩어버리며 달려나간다. 돌아보면 어느새 나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던 곳까지 와 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오직 나 자신만 돌봐도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오늘 아침에는 무엇이 먹고 싶니? 뭔가가 먹고 싶기는 하니?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좋아. 오늘은 뭘 할까? 그저 정처 없이 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계속 걸어볼까? 어딘가에 앉아 멍하니 거리 풍경을 바라볼까? 아니면 세상이 나를 잊도록 숨을 죽이고 이곳에 틀어박힐까?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 정신이 시키는 대로 시간도 잊고, 장소도 잊고 내내 글을 쓸까?


자유로워진 내 몸과 마음이 뭘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는 것도 잠시 뿐이다.

평소에는 철든 아이처럼 짐짓 양보하며 숨을 죽이고 있던 온갖 마음의 소리들이 마치 입이 트인 어린아이처럼 재잘재잘 온갖 소리들을 쏟아낸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나는 이런 걸 좋아했구나.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았구나. 실은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걸 재미있어했구나. 이 방향으로 걷고 싶었구나.

소소할지언정 진실인 정보들, 그 어떤 허식도 배려도 양보도 묻어 있지 않은 나에 대한 진짜 정보들을 마치 눈송이를 뿌리듯 솔솔 쌓아 올린다. 어떤 것은 거대한 무언가로 높이 쌓이고, 어떤 것은 그저 그 자리에 남아 조용히 반짝인다.


궤도에서 조금 벗어나 있던 몸과 마음을 영차하고 힘을 들여 찰칵찰칵 지금의 진짜 나로 되돌리고, 내 앞에 펼쳐진 다른 방향의 길을 설렘과 희망을 품고 바라본다. 물론 이 길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사소한 계기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여기의 나에게는 이 순간 서 있는 길이 진실이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내가 나에게 돌아오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고행과 외로움과 자유와 거리감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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