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마음들이 내려주는 가호의 힘
혼자 머무는 중이었다. 우기였지만 마침 날씨가 좋아 매일 아침마다 길을 나섰다. 좁은 나선 계단을 돌아 내린 다음 문을 열면 마당에서 뒹굴고 있던 고양이 가족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고양이들한테 말을 걸고 있으면 내 기척에 예민한 주인장 아저씨가 슬리퍼를 끌고 나와 아침 인사를 건넸다. 공손한 태국어와 영어과 뒤섞인 대화. 부족한 것은 없니, 필요한 것은 없니, 불편한 건 없니. 고양이 이야기, 날씨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오늘도 즐겁게 보내요.”
행운을 빌어주는 주인장의 인사를 뒤로 하고 대문을 나서면 오늘 하루가 시작이었다. 옛 치앙마이의 작은 골목들을 실컷 걷고 걷다 땀에 푹 젖어 지칠 대로 지쳐 숙소로 돌아오면 활짝 열린 발코니 창으로 불어드는 시원한 바람 속에 꽃향기가 가득했다.
치앙마이에서 창문이 앞뒤로 열리는 숙소라니, 귀했다. 게다가 발코니로 통하는 문과 창문에는 빈틈없이 모기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에어컨이 기본인 태국의 숙소에서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만끽하다니, 시기와 장소가 딱 맞아떨어져야 누릴 수 있는 사치다.
그 바람과 향기가 좋아서 늦은 오후에는 숙소의 타일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며 지냈다. 저녁거리는 걸어서 5분 거리의 시장에 가서 간단히 사다 먹기도 했고, 몇 번은 멀리 원정을 나가기도 했다.
치앙마이를 떠나는 비행기는 으레 그렇듯 늦은 저녁에 출발했다. 그래서 숙소 주인장께는 떠나는 날에는 저녁까지 머물러도 되는지 미리 허락을 구해 두었다. 그러고서는 하루치 숙박비를 더 지불할 작정이었다. 지난번 가족들과 함께 이 숙소를 찾았을 때도 그랬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떠나기 하루 전날, 미리 주인장님께 준비해 둔 숙박료를 드렸다. 주인장은 마지막 날에는 어차피 다음 손님이 4일 후에 도착하니 마음 편히 있다 가도 된다고 말하다가, 내가 준 돈이 하루치가 많다며 돈을 거슬러 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니에요, 늦은 시간까지 있어야 하니 하루치 더 드린 거예요.”
“하지만 어차피 비어 있을 방인데. 다음 손님이 없으니 서둘러 청소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있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제가 있으면서 물도 쓰고 전기도 쓸 건데요.”
“그건 당연히 쓰는 거고요.”
“그거 안 드리면 제가 마음이 불편해서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면야…”
하지만 그렇게 돈을 받는 주인장은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해 보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주인장은 여전히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나를 붙잡고 말을 꺼냈다.
“어제 내가 거슬러 주어야 했던 돈, 어제 저녁때 뜨리 아저씨한테 드렸어요. 피 뜨리 알죠? 렉 아저씨의 친구. 오늘 사원에 기원하러 치앙라이로 가신댔거든요. 내가 와리 이름으로 돈을 전해 드리면서 부탁드렸어요. 와리가 이번에 생일 기념으로 치앙마이에 왔는데, 와리를 위해 돈을 바치고 기원해 달라고요. 오늘 아침 일찍 치앙라이로 떠나셨어요.”
“우와… 고맙습니다.”
“마침 잘 되었잖아요. 와리가 생일이서요. 아마 지금은 치앙라이에 도착하셔서 사원에 가셨을 거예요. 무슬림 사원요.”
그랬다. 내가 당연히 내야 한다고 여긴 돈은 주인장 아저씨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마침 기원을 떠나는 친구 아저씨에게 맡겨준 것이다. 내가 생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혼자 여행을 와서 신의 가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표하지 못했지만, 아침의 치앙마이 골목을 걷다가 문득 그 마음이 얼마나 크고 따스한지 깨닫고 말았다. 나와 겨우 안면만 있는 그분은 지금, 내게서 주인장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전해진 돈을 들고 그 먼 곳의 사원을 찾아가 무슬림의 신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의 이름으로 공양을 바치고 생일을 축하하며 안녕을 빌어주고 있을 터였다. 그 순간 알라신께서 내 이름이 붙은 공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감격스러운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호를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며 만들어 낸 순수하고 든든한 가호였다.
주인장은 내가 공항으로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경을 써 주었다. 택시를 제대로 불렀는지 확인해 주고, 택시 기사에게 인사를 하며 나를 부탁하고, 택시가 차를 잘 돌릴 수 있도록 수신호까지 해 주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크게 인사한 다음 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주인장의 모습을 내내 바라보았다.
어쩐지, 고향을 떠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