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여행하면 큰일 나는 두 가지

아무리 여행에 정도가 없다지만

by 와리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 여행의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삶의 방식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멋짐은 바로 그 다름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멋진 바닷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의 풍경을 즐기는 여행 방식이 있을 테고, 온통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마라톤을 하듯 ‘인생에서 꼭 보아야 할 예술 작품’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나가는 여행 방식도 있을 것이다. 도시 외곽 한편에 자리를 잡고 그 도시의 삶의 방식을 몰래 답습해 보는 여행도 있을 것이고, 그 도시만의 맛을 찾아 순례를 도는 식도락 여행도 있을 테다.


여행에서는 경비가 허락하는 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선택지가 열려 있다. 하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도 내가 가능한 한 피하려 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수동적인 여행이다. 수동적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작게는 패키지여행이겠지만 크게는 다른 사람의 여행 방식을 별생각 없이 따라 하는 여행이다. 그러니까 가이드북, 여행 블로그, 여행 유튜브, 구글 리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자랑과 조언에 좌지우지되는 여행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정보는 얻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로 낯선 도시로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정보’들에 얼마만큼이나 휘둘리냐다. 정말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패키지여행을 하면서도 주체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습득했든 간에 나만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하루아침에 습득할 수는 없는 법. 수십 년 간의 삶을 통해 갈고닦아 온 나만의 취향이 힘을 발휘할 때다. 내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여행의 순간에서 기쁨과 설렘을 발견할 확률이 그에 정비례하여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내가 한 선택의 성공과 실패는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무려 ’자기 인지‘를 갈고닦는 기회가 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도 특히 내가 경계하는 것은 ‘꼭 해야 봐야 할 00가지’라는 문구다. 특히 어느 어느 나라에 가면 꼭 사 와야 후회하지 않는 00가지 같은 제목이 붙은 콘텐츠들. 물론 그 안에 정말 내 취향에 잘 맞는 알짜배기 정보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내 경험상 거의 대부분이 그저 무취향의 사람들을 현혹시키거나,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내용이 많다.

그러기에, 정말 나와 내 취향을 잘 알고 현지 사정에도 밝은 사람이 사려 깊고 정성스레 건네주는 여행 조언이 귀하다. 너라면 이런 걸 좋아할 것 같으니, 이곳에 한 번 가 봐. 네 취향에 맞을 법한 가게/거리/전시야.

이것도 내 일천한 여행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여행지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조언을 늘어놓는 사람은 그곳에 여행 온 지 사흘에서 일주일쯤이 된 사람들이다. 설렘과 즐거움과 들뜸이 한껏 고조되어 아직 사그라들지 않을 무렵, 그 기쁨과 설렘을 어떻게든 전해 주고 싶은, 혹은 자랑하고 싶은 이들. 물론 그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다만 경험을 나누는 것도 다 좋지만, 네가 했던 좋은 것들이 나에게도 좋을지는 모르겠으며 네가 했던 경험이 여기에서의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뿐.


피하려 하는 다른 한 가지 여행 방식은 내가 테마 파크형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 여행이다. 풀어 말하자면 여행지의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을 내 여행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구성하는 도구로 여기는 여행이다. 나 외의 다른 사람과 다른 것들을 전부 도구로 여기는 삶의 태도는 특히 비일상인 여행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저 ‘나’의 특별한 여행이라는 환상에 빠져 그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전혀 보려 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을, 그 삶을, 그 문화를 전혀 존중하지 않지 않는다. 이곳의 모든 것이 자신의 환상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자본의 토대 위에 환상을 유지하는 테마 파크를 활보하듯 여행지를 활보한다. 모든 즐거움과 편의는 당연히 고객인 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네가 네 환상 속에서 거니는 그 거리는 실제로 사람들이 현실의 삶을 꾸려나가는 거리다. 그곳에는 단지 재미로만 소모되어선 안 될 문화와 특유의 공기가 있다. 길 가는 모든 사람이 너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는 직원, 단지 도구로서 소모되고 사라지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그곳에는 그들의 언어가 있고, 문화가 있고, 규칙이 있고, 삶이 있다. 아주 당연하게도.


여행을 할 때 내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두 가지다. 나 자신과 세상. 여행에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매일의 삶에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대하느냐로 귀결될 터다. 그러므로 나는 여행의 모든 순간마다 나 자신과 세상을 존중하고 그 목소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려 한다. 아직은 서툴고 부족할지언정. 아직 헤쳐 나가야 할 많은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찬란한 다양함의 독특한 한 조각이 되려는 꿈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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