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식 미식 도제 수업

외로움을 동력으로 한 음식의 상승 기운!

by 와리

여행하다가 만나는 영어가 서툰 아저씨들은 모두 나를 좋아했다. 다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어떤 말들을 전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음식의 이름이었을 때도 있었고, 문화의 차이일 때도 있었고, 마음속 깊은 외로움일 때도 있었다.

아저씨들이 나를 좋아했던 것은 내가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서툰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 애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단절에 대화가 끊기고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 나만 홀로 남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언어의 미로를 헤매는 모험 같았다. 손짓과 발짓, 눈빛, 표정, 그와 관련되어 혹시 서로가 알 법한 공통 언어의 단어들. 이런 단서를 잔뜩 그러모은 채 우리는 서로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가닿으려 무진 애를 썼다. 대화의 흐름에 따라 수수께끼들은 끝도 없이 이어져 등장했다. 빠른 해답의 파파고가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이렇게 진득하고 힘겨운 대화에 사람들이 관심을 잃는 것은 빠르고 당연했다. 끝까지 남아 있던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남들보다 조금은 그 미로를 탐험하는 솜씨가 뛰어났던 것인지, 그저 미로 찾기가 재미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소망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눌러앉았던 숙소 주인장 렉 아저씨의 친구 이 아저씨(이름이 “이”였다.)도 그런 아저씨들 중 하나였다. 그나마 서툰 영어가 되는 렉 아저씨와는 달리 정말 예스와 노 정도의 영어만을 알았다. 하지만 담배와 술, 음악 외에 별로 관심이 없는 렉 아저씨와는 달리 이 아저씨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우리가 아직 못 먹어 본 태국 음식, 특히 치앙마이 음식에 뭐가 있는지 묻자 아저씨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어. 혹시 이런 거 먹어 봤니? 저기 시내에 맛있는 가게가 있는데. 우리가 아저씨가 말하는 음식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아저씨들 사이에서는 가게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거기는 아들이 물려받고 맛이 변했어. 가격이 너무 올랐고 예전의 분위기가 사라졌어. 그 집은 이미 없어졌는데. 진짜 맛있는 곳은 어디 어디인데, 거기는 좀 멀지.

점점 말이 빨라져 이해할 수 없어진 대화에 우리가 항복을 외치자 이 아저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그 손짓이 잠시의 보류였을 뿐, 포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음 날이 되어야 알았다. 숙소 앞마당에서 우리의 이름을 크게 부르던 아저씨의 손에는 봉지가 들려 있었다. 봉지에서는 무언가 향긋하고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어제 우리가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그 음식이었다.

그것이 이 아저씨와 함께 하는 치앙마이 음식 기행의 시작이었다.


너 이런 음식 있는 거 알아? 먹어 봤니? 이건 어느 어느 거리의 가게가 최고로 맛있어. 내가 다음에 사다 줄게.

이거 한 번 먹어 봐. 이거 한 번 맛이나 봐. (우와, 맛있다.) 맛있어? 마음에 들어? 다음에 가게에 같이 가자.

(음식을 먹는 중에) 그런데 여기보다 더 맛있는 데가 있어. 혹시 이런 음식 알아? 이거랑 비슷한데 더 맛있어. (거긴 어디예요?) 다음에 같이 가자.


우리는 아저씨의 차를 같이 타고, 혹은 아저씨의 오토바이 뒤를 오토바이로 따라가며 치앙마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태국 국수에는 하나의 세상을 이룰 만큼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배웠고,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주문하는 법을 배웠고, 치앙마이 사투리로 맛있다고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식당 사장님한테 하는 치앙마이식 아저씨 농담(“배는 부른데 돈은 없어요.”)을 배웠다.

달콤한 간식을 좋아하는 아저씨의 취향을 따라 처음으로 태국식 디저트에 입문했고 그중에 좋아하는 디저트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달콤한 코코넛 밀크에 여러 젤리와 과일을 말아먹는 루엄 밋과 따끈한 코코넛 밀크에 달걀을 넣어 먹는 브아러이 카이 완이다.)

저녁에 닭발 튀김을 사다 먹고 있는 나를 보며 “너 그러다가 손이 닭발처럼 변한다.”고 놀리다가도 “닭발을 좋아하면 여기에 가야지.”하고 데려간 곳은 치앙마이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식당이 되었다.

더운 여름 저수지 옆의 방갈로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는 태국식 풍류도 아저씨에게 배웠고, 맛있는 생선 요리를 먹기 위해 한 시간이나 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는 태국식 나들이도 아저씨 덕분에 경험했다.

아저씨는 마치 도제를 키우는 스승처럼 매번 전보다 조금은 어려운 과제를 던져 주었고 그에 맞춰 우리가 섭렵할 수 있는 태국 음식의 수준도 점점 높아졌다. 매운 개구리볶음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맛있다”를 외치며 먹고 있는 우리를 보는 아저씨의 눈빛에는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장난기와 함께 ‘내가 이 아이들을 여기까지 키웠구나’하는 뿌듯함이 엿보였다.


우리를 향한 베풂과 애정의 뿌리에 아저씨의 외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우리와의 소란스러운 시간이 아저씨의 삶에 시끄럽고 유쾌한 순간을 더해 주었을 뿐, 그 외로움을 치유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방콕 출신으로 혼자 치앙마이에 살면서 건축 일을 하던 아저씨, 동남아시아를 주유하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잠시 치앙마이에 체류하던 우리. 실은 이 두 가지 인생이 음식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얽힌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선물 같던 일이었다.

그저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과 함께 먹었던 음식들이 아저씨에게 아주 조금의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이 아저씨와 함께 했던 순간과 그 애정을 소중한 추억으로 품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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