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태국어, 짜에

온 도시와 함께 하는 까꿍 놀이

by 와리

치앙마이의 한 식당.


아이는 숟가락을 휘두르며 눈앞의 밥을 아슬아슬하게 흩뿌렸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그중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를 제지하려는 순간 아이가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저 앞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 점원이 한 분 서 계실 뿐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 숲이,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아이는 숟가락으로 아저씨 점원을 가리키면서 또 까르륵하고 웃었다. 혹시라도 무례하게 보이지 않을까 당황해서 아이의 손을 내리며 죄송한 마음으로 점원 아저씨를 쳐다보니 아저씨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무뚝뚝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입꼬리만 살짝 당기며 미소를 지었다.

“숲이, 그렇게 사람을 가리키는 거 안 돼.”

서둘러 아이의 손을 잡아 내리고 밥에 집중시키려 하는 순간, 아이는 또다시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힌 채 몸 전체를 울리며 웃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식당에 크게 울려 퍼졌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을 때 이번에야말로 발견하고 말았다. 양손을 뒷짐 진 채 자못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던 아저씨가 아이만 보고 있던 순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갑자기 양손을 확 펼치며 우스운 얼굴을 만들어 주는 모습을. 오직 단 한 사람의 관객만을 위한 공연이었다.

숨 넘어갈 듯이 까르륵거리며 웃던 아이는 다시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반짝이며 아저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제 우리한테 들킨 것을 알아 표정이 풀어진 아저씨는 보란 듯이 큰 동작으로 까꿍을 했다.

“짜에!”

아이가 배운 첫 태국어였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지켜야 하는 예의에 대해 나부터도 엄격했기에, 아직 두 돌도 되지 않은 꼬꼬마 아기와 함께 외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언제나 미리 허락을 구하고, 아이를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하고, 혹시 있는 실수에 대해 공손하게 사과를 했다. “그러면 안 돼.”,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내내 되풀이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제 더 이상 아무 데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기준이 확실했던 사람이라기보다는 누가 내 아이를 불쾌하게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한껏 움츠러든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와 함께 하는 첫 여행을 결심하기도 어려웠다.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그 먼 곳에 도착하는 여정만으로도 이미 아득했다. 육아에 최적화된 온갖 물품이 적재적소에 장착된 편리하고 안락한 집을 떠나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태에서, 내 몸 하나였어도 벅찬 장거리 이동을 해야 했다. 아무리 내가 여행에 익숙하다지만 어린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은 또 미지의 영역이었다. 아직은 어린아이가 생경한 환경과 음식에 어떻게 반응할지,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칠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이가 감당하기에 무리인 일정은 아닌지, 이게 내 욕심은 아닌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생각이 오갔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 것은, 태국, 그중에서도 치앙마이에서 보낸 소중한 시간들에 아이를 함께 동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서 느꼈던 그 공기의 온기를 이제 우리 셋이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많이 어렸던 아이는 자신이 있는 곳이 태국, 그중에서도 치앙마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테지만,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듯했다. 아직은 조금은 낯가림이 남아 있었을 무렵이지만 아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자주 웃기 시작했다. 그게 주위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 다정하게 웃어 주고 인사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그걸 알아차리자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와 낯선 어른들 사이에서는 마치 은밀한 암호처럼 비밀 인사가 오갔다. 거리의 어른들은 아이의 시선을 잡는 일에 몰두했고 식당의 점원들은 누가 더 짜에(까꿍)을 잘해서 아이를 웃기는지 경쟁했다. 식당 주인들은 아기 먹을 게 없는데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다 메뉴에도 없는 음식을 준비해 주셨고, 시장에서 덤으로 과일을 하나씩 더 받기도 했다. “이건 너 먹어.” 가게 안에서 아이가 뛰지 못하게 말리는 나를 가게 주인 분들이 다시 말렸다. “마이 뺀 라이, 마이 뺀 라이.”(“괜찮아, 괜찮아.”라는 뜻의 태국어로 태국식 마법의 주문.) 아이를 보호하는 시선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이가 카페의 정원에서 달리다 넘어지는 순간에는 주위에 몇 사람이 ‘어어어’하면서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었다. 아이가 순간의 행복에 겨워 까르륵하고 웃음을 터트리면 주위 사람들은 시끄럽게 여기기보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아마도, 아이는 엄마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꼈을 것이다. 움츠러들다 못해 쪼그라든 마음으로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고개를 조아리던 엄마가, 이제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편안하게 웃고 있었으니. 치앙마이에서 두 돌 아이와 보낸 두 달 동안 나는 사과보다 고맙다는 인사를 더 많이 했고, 머리를 조아리기보다는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웃었고, 아이의 뒤치다꺼리에 신경 쓰기보다는 아이에게 베풀어 준 배려에 어떻게든 보답하려 고민했다.

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만이 아니라 주위 모든 이들이 함께 축복하고 기뻐하며 따스하게 바라봐 주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사랑함에 있어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손해와 대가를 따지지 않는 이유 없는 온정이, 이 세상에 있었다. 그 온정 어린 시간들은 비록 그 시간이 끝나더라도 우리 안에 깊이, 오랫동안 그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은 또다시 다정함을 피우는 씨앗이 된다. 나와 내 아이에게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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