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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혜 Oct 27. 2024

사라진 회사 버스, 마지막 승객

현장을 오고 가는 회사 버스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식당이 본관에 있어 걸어서 올 법한 거리인데도 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 점심상을 마주하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노사합의를 통해 식사 시간과 출퇴근 시간에 여러 대가 투입되었고, 한낮에는 업무용으로 광산-본관 -현장-항만을 1회 돌았다.

 

업무용 버스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항만과 본관을 오고 가는 업무를 보고 있는  나외에 가끔 본관 회의나 교육이 있는 직원들이 탑승하는 정도였다. 광산을 돌아 다시 태우러 오는 시간과 간격이 길었기에 그 버스로 오고 간다는 생각을 하면 업무시간을 불성실하게 보내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항만으로 내려가는 다른 차편이 있으면 업무를 일찍 보았고,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회사버스 빈 차로 다닐 때도 왕왕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산 짜는 시기가 오면 불필요한 예산 1순에 들어갔다. 버스를 계속 운행하며 인건비까지 들어가는 비용보다 자차 이용을 독려하고 유류비 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절약되었다.


- 얼른 차를 사! 회사 버스가 아니라 단독 대형 리무진 같아. 낭비라고 낭비!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승객을 태우러 오기 귀찮았던 회사버스 기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옥계 시내를 통과할 때는 소소한 볼일을 볼 때도 있어 잠깐 정차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눈치 보여 꼭 한 손에는 음료를 사들고 탔다.


- 제가 안 타면 이 버스 없어질지 몰라요.


물론 기사님의 농담 섞인 말투에 농담으로 엄포를 놓았긴 했지만 몇 년 간 거의 혼자 타고 다니면서 보낸 소중한 상념의 시간을 곧 잃게 될 거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 버스 안에서 불안한 청소년기에 의지가 되었던 선생님과 영영 이별하는 슬픈 소식을 접했고 수양버들이 빼곡히  서  있는 길을 지나며 하염없이 울었다. 꼭  다섯 번째 줄에 앉아 조그만 몸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깊숙히 의자 안으로 몸을 웅크리며 긴긴 하루의 벌어지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글로 갈기며 메모하거나 숨죽여 울곤 했다.


항만 공장 인근 주민들이 분진으로 민원을 걸고 소요가 며칠 째 지역 신문 보도되었다.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를 태우러 오던 버스도 덩치가 큰 터라 공격대상이었다. 각종 농사 장비와 집기 등으로 바리게이트를 치고 직원들 출입을 막으며 험악한 분위기로 데모 현장이 바뀌어 갈 때도 멀찌감치서 기다렸다 안전하게 태워갔다.


- 저 년 잡아라!


마치 첩자처럼 업무용 버스쪽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데 앙칼진 아주머니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회사 마크가 박힌 제복 대신 사복 차림이라 눈에 안띄게 움직였는데도 벌떼 같이 달려들 태세였다.


- 에휴, 냅 둬!  피래미잖아.


보잘 것 없을 정도로 왜소한 몸에 겁에 질린 얼굴이 창백하고 안쓰러웠는지 더이상 나를 쫓지 않았다.헐레벌떡 회사 버스에 올라탔고 기사님은 과속을 하며 데모 현장에서 한시바삐 멀어져갔다.


데모가 길어지면서 안전사고 우려로 업무용 버스 운행은 중단되었다. 더이상 본관을 오고 가는 업무도 보지 않았다. 사내 인트라넷으로 대부분의 일들이 해결되었고 회사 사보에 간간이 글을 투고했던 나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리고 일자리를 잃은 기사님은 훨씬 더 위험한 일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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