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밤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작게 들리다가 점점 커졌고 마침내 숙소 현관문을 칠 때는 문이 부서질 것 같은 굉음을 냈다.
회사 숙소는 5층 건물이었고 각 층마다 고향을 떠나 가족과 떨어져 옥계에서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라인에는 유독 주요 부서,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한밤중에 향수병을 감당 못해 누군가와 얘기 나누려고 문을 두드렸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소리가 일주일째 계속되었다.
소리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던 이유는 밤 12시를 넘긴 시각이고 모두가 잠들고 싶은 그 시간에 문을 열어 확인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루 이틀은 다른 집 문을 두드리며 술기운에 집을 착각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잠귀가 밝은 나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출근하자마자 사내 게시판에 소리와 관련해 글을 올렸다. 너도 나도 일주일 동안 시달린 소리의 정체를 추측했다.
- 술주정꾼 남편을 내쫓은 거야. 회사 동료 앞에서 실컷 창피당하면 정신 차리겠지.
- 외로워서 대화상대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요?
- 회사에 불만이 쌓여 퇴사한 사람이 보복 소음을 낸 것 일 수도 있어요.
점심 무렵, 총무부 신 과장 연락을 받았다. 게시판에 올린 글을 지우라고 했다. 원글을 지우면 댓글을 덩달아 지워지는 구조였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지만 고개를 젓고 나서
- 시끄럽게 떠들지 마!
쏘아붙이듯 확 내지르는 소리에 뒷걸음질 치면서도 직감적으로 불의한 상황을 뒤덮으려는 의도를 읽었다.
그나마 간신히 밤잠을 이룰 정도로 소리에 예민해진 상태에서 신 과장의 거친 말투가 남긴 상처까지 겹치자 더 궁금해졌다. 일주일 내내 누구를 찾아 무엇을 말하고 싶어 문을 두드렸는지,
한밤 중 마주할 낯선 손님을 맞기 위해 저녁을 먹고 나서 커피를 연거푸 마셨다. 주수천 물 흐르는 소리, 자병산을 타고 내려오는 슬픈 바람 소리를 일부러 창을 열고 듣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깨어 있어야 한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희미하게 들려오다 점점 커졌다. 502호 우리 숙소 문을 두드릴 때, 적어도 내 귀에는 애타는 하소연을 담아 목 놓아 우는 통곡소리처럼 들려왔다.
바로 현관문 앞에서 서서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인기척을 느끼고 나서 문을 열어젖혔다. 암묵적으로 확인하면 안 되는 존재는 마주편 숙소 문을 두드릴 찰나였다. 갑자기 열린 문에서 튀어나온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목발을 짚은 채 절뚝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손이 아닌 그 목발을 들어 문들을 힘껏 내리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뭔가 억울함의 끝판왕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벌벌 떨고 있는 내게 오늘 이 순간을 꼭 기억해 달라는 신호의 눈빛을 던졌다.
5층, 4층을 차례대로 내려가면서 목발은 더 이상 다친 다리의 지지대가 아닌 울분을 대신
토해내는 싸움꾼의 둔탁한 무기처럼 문을 실컷 팼다. 마치 그 안에 살고 있는 자신을 지켜주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진실을 말하려고 했는지, 혼내주고 싶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더 이상 한 밤의 낯설고 사납게 들어닥친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청 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일어난 인재 사고는 늘 그렇게 빠르게 소문의 꼬리를 자르려고 했다. 다친 것보다 더 아프게 일터를 잃어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다. 책임지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