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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 Jul 27. 2024

긴자를 배회하다

(*2, 3화는 얼마 전에 한 번 올렸던 글을 브런치북으로 옮기면서 조금 편집하여 다시 올립니다.)


나의 일본 여행에는 두 가지 상충되는 면이 공존했는데 앞에서도 썼지만 하나는 내가 '일본! 너무 가고 싶어!!! OOO도 꼭 가보고 싶고, OO도 먹어 볼 거야!!'하는 마음으로 계획한 여행은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워낙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나라라는 특성상 일본에 가면 뭘 하고 뭘 먹으면 좋을지에 대한 정보는 넘쳐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이 정해준 여행코스대로 3박 4일 바쁘게 허덕이다가 오게 될까봐 걱정이 된 나는 일부러 두 가지 일정만 정해두었고, 그 두 가지는 각각 둘째 날과 셋째 날에 하나씩 안배해 두었다. 넷째 날은 보아하니 아침이나 좀 여유롭게 먹고 공항 가면 끝이겠고, 첫째 날은 다른 이유 없이 숙소에서 가까우니까 긴자 쪽에 가야겠다 싶었다. 일본에서의 첫 끼 후 행선지는 이렇게 대충 긴자로 정해졌다.



펭귄 녀석의 협조를 얻어냈다


자 이제 정말 교통카드를 해결해야 하는데.. 안 그러면 도쿄 여행은 망한다. 실물카드를 사겠다는 계획이 처음부터 어그러져서 걱정이었는데, 하지만 다행히 아이폰 유저는 스이카 앱을 깔고 또 블로그의 힘과 아는 한자 몇 개에 의지해 카드를 발급받아 지갑에 등록하고 애플페이로 금액을 충전한다. (파스모passmo도 마찬가지라는데 나는 저 발걸음이 신나보이는 펭귄이 귀여워서 스이카로)


우선은 2,000엔만.

스이카 앱.
지갑에 카드가 등록되었다.

이렇게 모바일 카드를 쓰면 개찰구에서 핸드폰만 갖다대면 된다(앱을 실행할 필요도 없었다).


도쿄의 지하철은 워낙 악명이 높아서 처음 가는 길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복잡하게 역 이름 읽으려 하지 말고 노선별 알파벳이랑 색깔, 그리고 정류장별 숫자가 커지는지 작아지는지만 잘 보라는 말에 꽂혔던 것이다. 


즉 구글맵에 위와 같이 나오면 나는 주황색, G, 그리고 번호가 갈수록 줄어드는 방향의 플랫폼에 서야 하는 것민 기억하면 된다. 위 유튜브 영상 댓글에는 영상에서 알려준 방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던데, 3박 4일간 내가 다닌 곳은 저 원칙으로 다 해결이 되어서 적어도 나는 이 방법으로 아주 잘 다녔다.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댓글에 스이카 실물카드 발급이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놓쳤다.)


저기.. 긴자 식스는 안 가시나요

위 스크린샷은 예시고 긴자까지는 걸어갈 만한 거리여서 걸어서 갔다. 비도 오는데 굳이 지하철을 타지 않은 데는 교통비를 아끼려는 것도 있지만 가는 길 중간에 궁금한 가게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소금빵 맛집 팡 메종.... 호홍


줄 서는 게 싫다고 하면서도 소금빵 맛집이라니 갑자기 궁금해졌었다. 대체 도쿄 가서 뭐하지? 하며 맛집 검색 중 마침 긴자에 팡 메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혹시나 싶어 지도에 체크해두었던 것이다. 저녁시간이라 문 닫을 때가 가까워 그런지 줄도 안 서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리지널 소금빵 한 개당 110엔. 오리지널 두 개를 사서 나오자마자 얼른 조금 뜯어먹어 보았다. 아쉽게도 만든지 오래되어 그런지 너무 기대해서 그런지 나는 놀라운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맛있어서 만족했다. 비가 내려서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뜯어낸 소금빵을 들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번화가를 찾아갔다.


사거리에 도착하니 익숙한 명품 브랜드 간판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루이비통 앞에 길게 늘어선 줄도 보이고. 하지만 나와는 별 인연이 없는 곳이라 빠르게 지나쳤다.


그보다 뜬금없이 가고 싶은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이토야 문구점이다. 지금은 아무 볼펜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갖다쓰는 직장인이 되었지만 라떼도 다꾸가 유행했기에 문구점에 색상별로 가지런히 꽂힌 펜에 설레던 때가 있었으니. 특히나 우리나라 제품들은 아직 어딘가 불편하고 색상도 썩 다양하지 않던 당시에도 일본 펜들은 손에 딱 맞게 잡히는 그립감에 상상도 못한 온갖 색으로 출시되어 있어 문구점에서 사지도 않을 펜을 자꾸 테스트 해보게 만들었었다. 나에게 일본 문구란 그런(미국 문구와는 정반대의) 지위를 갖고 있는데, 일본에 왔더니 12층 건물 하나가 전부 문구점인 곳이 있다니 궁금했다.



자, 도착이다. 티파니와 나란히 자리한 저 위용. 그런데 '건물 하나 통째로'라고 호들갑을 떨기에는 건물이 좀 많이 작다. 아니 좁다. 전체적으로 일본은 건물도 차도 폭이 상당히 좁아서 실수로 닿을까봐 조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토야 건물을 옆으로 눕히면 결국 미국의 2층 건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한 층씩 돌아보았다. 정말 물건이 많기는 많고, 종류별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구경하기 재밌었다.


1, 2층에는 우산이며 아기자기한 부채, 엽서 등을 팔고 있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창가의 토토 작가님이 그린 엽서도 있어서 나올 때 사려다가 잊었다.


두둥.


3층이었나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이 팔 들어올릴 힘도 없어뵈는 나무늘보 녀석이 취향을 저격했다. 보라, 저 팔을 들어올리기도 귀찮아 축 늘어뜨리고 있는 나른한 모습을.. 안면 근육도 눈도 최대한 힘을 풀었다. 옆에서 누가 귀찮게 해도 웬만해서는 반응하지 않을 강한 모습이다. 반응한다고 해도 한세월 걸리겠지. 나도 어지간히 느린 사람이라(모든 게 대체로 느리고 또 그걸 즐긴다) 늘 나무늘보에게 공감하며 바쁜 도시에서 생존해가고 있다보니 반갑다. 데려오진 못하겠으니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이렇게 섹션별로 아기자기한 물건이 다양하다. 여기는 실링 왁스 관련 섹션.
일본 전통 무늬도 꽤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막상 가보니 12층 전체가 전부 문구류는 아니고 꼭대기에는 레스토랑이 있고 그 아래 두 층 정도는 무슨 강의실 같은 게 있었다. 아무튼 한층 한층 둘러보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다음은 Beams.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보고 따라서 가봤는데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건지 내 스타일이랑은 안 맞는 건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나왔다. 적어도 내가 갔을 때는 가격도 싸지 않으면서 재질이 썩 좋지도 않았다. 모자가 좀 귀여웠지만 집에 있는 밀짚모자도 안 쓰는 사람으로서 사지는 않고 몇 번 써 보기만 하다가 나왔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빔즈를 찾았다.
조금 지쳐서 남자옷 위주의 윗층은 아예 안 가봤다.


크다란 미피가 귀엽다.


이제 어디 가지..?

7월의 도쿄가 덥다고 걱정해주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비가 내리니 덥기는커녕 오히려 좀 쌀쌀하다.

이세이 미야케. 전시를 겸한 매장 같은데 재밌어보이는데 들어가긴 부담스럽다. 오니츠카 타이거 매장이 여기저기 많던데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 한국에서도 안 가본 터라 선뜻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그런 나에게 딱 맞는 매장이 눈에 들어왔으니..! 바로 유니클로 긴자점.

유니클로도 12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니클로에서 꽃도 팔고 카페도 있다니.. 슥 들어가본다.


시간 삭제, 유니크한 긴자의 유니클로


예쁘다. 긴 여행이었으면 사서 숙소에 꽂아놓고 감상했을텐데.


유니클로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그 후 두 시간 동안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세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여기도 건물이 좁았지만 이토야 정도는 아니었다. 본토의 매장이다보니 확실히 종류가 다양하고 볼 거리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긴자점이 큰 편이라고. (가장 큰가?) 나는 옷 쇼핑을 귀찮아하는 편인데 그런 나도 줄까지 서가며 피팅 룸에 두 번이나 들어갔다 왔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차선 방향이 반대다보니 피팅 룸 줄마저도 반대 방향이라 좀 헷갈렸지만. 나처럼 반대 방향으로 생각하고 힘차게 피팅 룸에 등장했다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줄 맨 끝으로 인도되는 다른 여행객들이 보였다. 


줄을 서서 열 벌쯤 입어본 뒤 두 벌을 골랐다. 그리고 또 한 번 tax free 계산대에 줄을 서서 할인혜택까지 챙겨냈다. 마침 추웠던 차에 방수 잠바를 하나 구매했다. 또렷한 파란색이 마음에 들었던 반바지도.


사실 맘먹고 쇼핑하기로 들면 살 게 정말 많아서, tax free 줄에 나처럼 두 벌만 계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앞의 한 중동 커플은 바구니를 먼저 하나만 계산대에 올려놓았는데 직원은 당연히 그래서 그게 전부라 생각한 것 같았다. 바구니 하나에 담긴 옷을 입력하고 총액을 불러주자 커플은 웃으면서 “오, 우리 이게 다가 아니야. 아직 더 있어.”라며 다음 바구니를 올렸다. 난 끼어들지는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것도 끝이 아니예요 직원분.. 당신 눈엔 안 보이겠지만 아직 바구니 두 개가 더 있어요. 부디 마음의 준비를..!’


12층 카페에서 마신 말차라떼. 카페는 기대한 것처럼 창밖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잠시 앉아 지친 다리를 쉬기에는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저 두 벌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7월에 도쿄에서 잠바를 사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실내공간에서 냉방이 너무 셀 때, 비바람이 불 때 휘뚜루 마뚜루 걸치다보니 4일 동안 매일 잠깐씩이라도 잠바를 꺼내 입었다. 뚤뚤 말아서 같이 딸려온 주머니에 구겨넣을 수 있는 식이라 쏙 맘에 들었다. 이미 이런 류의 경량 패딩을 몇 년째 잘 쓰고 있어서 살 때 주저함이 없었다. 반바지도 너무 짧지 않으면서 비치지도 않는 감이라 아주 실용적이었다. 셋째 날의 팀랩 전시를 위해 반바지를 챙겨 왔었지만 구김이 너무 심한 옷이라 좀 내키지 않았었는데 아주 잘 됐다. 


옷 소비를 줄이려는 요즘이지만 이건 살 만 했다며 기분 좋게 마감 준비를 하고 있는 매장을 나왔다. 니혼바시로 돌아가 숙소 앞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서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어쩐지 긴자에서 명품샵만 빼고 다닌 느낌이다. 일본에서 사면 싸다고는 하던데 원래 관심이 없으니 일부러 가는 것도 고역이다. 


아까 산 소금빵을 편의점에서 사 온 치즈와 초콜렛과 번갈아먹으며 내일의 일정을 준비했다.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조금 긴장하며. 사실 그렇게까지 찾아가야 하나 싶기도 해서, 일단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내키는 대로 정하기로 했다.


첫째 날의 끝.


숙소 - 요시노야 - 팡메종 - 이토야 - 빔즈 - 유니클로 - 편의점 - 숙소


보통 다른 사람들은 여행 가면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상에서는 하루에 6~7천 보쯤밖에 걷지 않아서 뿌듯함에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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