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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 Jul 27. 2024

왜 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 본다

(*2, 3화는 얼마 전에 한 번 올렸던 글을 브런치북으로 옮기면서 조금 편집하여 다시 올립니다.)


오전 출발이라 새벽에 공항에 가야 했다. 이렇게까지 일찍 가야 하나..?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지만 결국 눈이 일찍 떠져서 계획보다 삼십 분을 일찍 일어났다. 뭐 갈 곳이 없네 어쩌구 하더만 신났나보네. 공항에 한참 일찍 도착했고, 워낙 이른 시간이라 보안검색대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일찍 온 거야. 스타벅스 북카페를 발견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지간히 심심했을 뻔 했다.

여행 가서 읽을 책이라도 한 권 살까 드릉드릉했지만 호캉스를 가는 게 아니라 열심히 돌아다닐 예정이니(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이 높으니) 참아본다. 공항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행기들이 주는 설렘과 북카페가 주는 고요한 안정감이 공존하는 기분 좋은 공간에서 머물다가 출발. 



얼렁뚱땅 와 버렸다


비행은 생각보다는 길었지만(일본이면 괜히 한 시간이면 도착해야 할 것만 같아서) 조금 자다보니 곧 도착했다. 도쿄구나.


공항엔 일본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혼재했다. 말이 안 통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공항이라 그렇겠지만 이렇게 3개 국어로 나에게 길을 알려주니(일본어는 모르지만 간단한 한자는 아니까) 세 명이 한 번에 외치고 있는 것 같아서 재밌었다. 쉽게 입국심사를 통과해 버스 티켓 사는 곳까지 도착했다.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배가 고팠다. 집에서 나오면서 간식거리를 챙겨온다 하고 잊어버린 탓이다. 여권만 있으면 된다면서 호탕하게 나오는 바람에 그만.

공항버스 티켓 구매 후 빠르게 개시하는 일본 첫 소비. 일본은 또 자판기가 유명하지~라며 원래 계획했던 척 해본다. 눈에 익은 녹차도 보이지만 그림과 한자에 의존해 음 복숭아 맛이구나.. 하고 골랐다. 버스는 스카이라이너보다 조금 오래 걸리지만 배차간격이 짧아서 좋다. 가격도 저렴하고. 자리에 앉아 방금 산 음료수를 순식간에 절반을 비웠다. 꼴깍꼴깍. 맛있었다.


날씨가 흐리더라니 이내 비가 내린다. 적어도 덥지는 않다. 비도 심하게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추적추적 내리는 정도여서 도쿄의 첫 인상을 함께 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자다 깨다 하는 사이 도쿄역 도착.


도쿄역은.. 발을 내딛는 순간 헤매기 시작이었다. 공항에서 교통카드를 사는 걸 깜박하고 뒤늦게 도쿄역에서 사겠다고 한참 인파를 헤집고 다녔다. 참고로 나는 국제적으로 검증된 길치다. 좋은 점이라면 길을 잃는 일정도는 늘 일어나는 일이어서 웬만하면 당황하지 않는다는 거.. 나쁜 점이라면 같은 이유로 한 번에 길을 잃지 않고 찾아가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여튼 어디 가면 교통카드를 판다는 한국 블로그 글이 있어서 그 글과 역무원과의 영어와 일본어, 손짓발짓이 혼재된 의사소통 끝에 오피스를 간신히 찾아갔으나, 마침내 찾아낸 판매처에서는 실물카드가 떨어졌으니 모바일로 발급받으라고..(폰 기종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일단 불안한 마음으로 나중에 숙소에 가서 시도해보니 모바일 발급이 매우 간단했다.) 아무튼 복잡한 도쿄역을 뒤로 하고 숙소를 향해 캐리어를 끌었다.


도쿄는 처음이라 모 씨의 말대로 도쿄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숙소로 골랐다. 대신 창밖은 벽 뷰.

소테츠 프레사 인(Sotetsu Fresa Inn)이라는 체인점이다. 어차피 잠만 잘 거라 가성비 숙소를 골랐는데, 깨끗하고 조용해서 만족했다. 방이 좁았지만 도쿄는 대체로 다 그렇다고 들었다.

도쿄역 근처에도 여러 곳이 있었는데 나는 니혼바시라는 지명이 어쩐지 익숙해서 그쪽으로 잡았다. 나중에 내가 니혼바시를 어디서 들었는지 알고 푸핫 웃었다. 니혼바시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속의 천재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근무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신참자'에 "어째서 자네같은 형사가 니혼바시 관할서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거지?" 대충 이런 식으로, 즉 변두리라는 맥락으로 등장한다. (사정이 있어서 좌천당했다.) 아이고. 어째 거리가 점점 한산해지더라니. 물론 도쿄역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니까 정말 변두리는 아니다. 지하철역도 가까워서 3박 동안 나는 꽤 잘 지냈다. (참고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린의 날개'에도 니혼바시 다리가 등장한다)


짐을 대강 풀고나니 놀랍게도 그럭저럭 저녁시간이 다 되어갔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움직였는데 바로 옆 나라에 오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너무 일찍 일어난 것, 김포-하네다가 아니라 인천-나리타행이었던 것, 도쿄역에서 미아가 된 것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첫 날이 벌써 끝나간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일단 먹자


충격을 받았으면 밥을 먹어야지.

요시노야에 왔다. 우리나라의 한솥도시락 정도에 해당하는 체인점이라 해서 한 번 쯤은 와보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일본에서의 첫 끼.


저 밥은 나름 새로 나온 메뉴인지 크게 광고를 하고 있었다. 보리밥에 오크라, 마,간장으로 양념한 고기. 자리마다 비치된 생강을 얹었다. 여름메뉴답고 식감이 색다른 것이 좋았다. 일본 식당에는 숟가락이 없는 곳도 많다지만 요시노야에는 있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없었으면 저 미끌미끌한 마를 어떻게 먹었을지 모르겠다.


돈지루도 따로 주문했다. 핸드폰으로 식당게임할 때 늘 돈지루가 궁금했다. 할머니가 혼자 식당을 꾸려가면서 손님들한테 요리를 만들어 내어주고 돈을 받는 일본 게임인데 중간중간 손님들의 인생 스토리가 나온다. 요리는 식당 레벨이 올라갈수록 다양하고 고급화되는데, 돈지루는 거의 초반부터 계속 나오는 기본 메뉴였던 것 같다.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할머니가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적당히 요리를 만들어두면 손님이 그 중에서 주문을 하는 식이라 할머니에게 메뉴 선택권이 있는데, 나는 항상 돈지루나 김, 계란, 에다마메, 보리차 같은 기본 메뉴가 끌려서 손님들에게 강제로 소박한 식사를 먹였다.

게임 이름은 ‘추억의 식당 이야기’였다

식사가 꽤 든든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저녁이지만 밖에 돌아다녀 볼 힘이 생겼다. 멀리 갈 수는 없어서 긴자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가 본다.




집 - 인천공항 - 나리타공항 - 도쿄역 -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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