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다 Jul 24. 2024

일본은 처음이라

“그래서, 도쿄 가서 뭐할 건데?”

“음… 글쎄….”

“다음 주 출발 아냐?”

“그렇지…..”


도쿄에 간다. 다른 선택지를 먼저 떠올렸지만 여름휴가를 짧게 나눠쓰면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일본에 아직 한 번도 못 가봐서 이제는 한 번 가보자 싶기도 했다. 여름이니까 북쪽으로 홋카이도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가는 일본여행이라 수도에 먼저 가 볼까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이유 없이 정한 곳이다 보니 도쿄에 가서 어디에 갈지를 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겨우 3박 4일로 옆나라 다녀오는데 은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금 가면 더워서 제대로 구경도 못할 텐데…” 괜찮아, 나 더위 많이 안 타.

“혼자 가면 위험하지 않아?” 괜찮아, 밤에 안 돌아다니고 위험한 데 안 가고 조심할게.

“말이 안 통해서 다니기 어렵지 않겠어?” 괜찮아, 영어하면 된다는데? 어설픈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낫단 말도 있고.

“혼자 가면 심심하지 않아?” 괜찮아, 나 원래 혼자서도 잘 놀아. 근데...음, 심심..하긴 할 수 있겠다.


미디어에서 하도 많이 접하다 보니 안 가봤지만 가본 것 같은 곳, 도쿄.  스카이트리나 디즈니랜드는 궁금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도쿄는 너무나 설레는 여행지일텐데, 나는 워낙 도쿄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가기로 해놓고도 큰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도쿄는 뭐가 있는 곳이지?


나에게 도쿄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학을 나와 재즈카페를 운영하다가 야구경기를 보며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곳.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울고 웃고 사건을 해결하는 곳.

한자와 나오키가 무더운 여름에도 양복 자켓까지 챙겨입고 가방을 들고 땀흘리며 뛰어다니던 곳.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카카오웹툰 ‘아오링 도쿄’에서 ‘누구나 자유롭고, 다들 조용하고, 모든 것이 한 사람 분량으로 포장되어 있는 곳‘이라고, 담담한 문체로 먹먹하게 그려냈던 곳.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학교나 재즈카페를 찾아가보기엔 이미 너무 유명한 관광 스팟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 나온 하루키 신작을 아직 안 읽어서 왠지 그 뒤로 미루고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특별히 찾아서 보고 싶을 만큼 인상깊은 도쿄의 장소는 없었다. 한자와 나오키도 마찬가지. 아오링 도쿄에 나온 숙소나 공원에는 상당히 가보고 싶었지만, 왠지 그건 완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로 첫 방문에 하기보다는 이미 도쿄를 좀더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기에 적절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은 것은 결국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도 뾰족한 계획이 없는 나. 호캉스도 아닌데 이게 맞나..?


확실하게 정해진 일정은 팀랩 플래닛 방문, 쇼핑 목록은 동전파스뿐.


그 외에는 이거다! 싶은 곳 없이 여러 가지 후보만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구글맵에 큰 의미없이 찍어둔 장소만 늘어가고, 설상가상으로 괜한 고집도 부렸다. 일본이야 안 가본 사람이 드물다보니 어디 가면 좋을지 추천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선의로 알려준 정보에 휩쓸려서는 의무감에 추천해준 곳을 죄다 찍고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상상갔던 것이다. 일정에 추천받은 곳을 하나둘씩 끼워넣다가 패키지 여행처럼 급하게 돌아다니는.


결국 이런 나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일정의 절반 정도는 아예 어떻게 보낼지 안 정했다. 심심하면 심심한 대로 있다 오지 뭐.


그렇게 다가온 출발 전날. 나름대로 쇼핑을 해오겠다는 야심에 차서 작은 캐리어를 반 정도 채웠다. 도쿄에 내가 기대하는 게 꼭 그 정도 크기였다. 아무도 기내용임을 의심하지 않을 자그마한 가방의 절반 정도. 동전파스와, 어쨌든 다들 도쿄에 가면 쇼핑을 해야 한다고 하므로, 그 외 무언가를 채워 보겠다는. 아, 쇼핑 목록에 우메보시가 추가되어 동전파스와 우메보시로 늘어났다.


신발은 크록스 한 켤레로 버티기로 하고, 날씨가 비가 온다는 건지 폭염이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양우산을 챙겼다. 덥다고 난리인 주변 지인들의 목소리에 평소에 쓰지도 않는 밀짚모자며 넥밴드 선풍기를 후보로 챙겨두고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모두 치워버렸다. “꼭 안 가져가도 되겠..지?”라는 나의 자신없는 질문에 딱히 근거는 없어보이지만 자신감만은 넘치는 모 씨의 “절대 필요 없지.”란 답을 믿으며.


휑뎅그렁한 캐리어를 잠그고, 따로 물건을 쉽게 꺼낼 수 있게 메고 갈 가벼운 가방 하나를 챙겨 여권을 넣어두었다. 여권만 잘 챙기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된다. 이제 자자. 다섯 시간 뒤에는 일어나야 해.


자, 떠나보실까. 엣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