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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수 May 22. 2024

2화

나의 피리는? 나의 돌멩이는?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무엇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을까요? 오늘 ‘자기 치유의 글쓰기’ 둘째 날 강의를 들으며 나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성서 이야기를 잘 모르다 보니 틀린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다윗이 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었는가? 다윗이 왜 사울왕에게 크게 인정받았고 결국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영웅이 될 수 있었던가? 이러한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윗은 한 번 양떼를 치러 가면 6개월여 동안 밤하늘과 넓은 목초지와 양들과 함께 외로운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고독하고 적막한 시간 동안 다윗은 불만을 품고 지긋지긋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여 끝없이 수련했다고 생각됩니다. 조약돌을 던지는 기술을 매일 연마했고, 피리로 양떼를 안정시켰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통을 감수하며 수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다윗에게 취미 이상의 그 무엇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명으로 인식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윗의 피리는 사울왕의 탈출하여 방황하는 영혼을 고치는 경지였고, 그의 조약돌 활용 실력은 결국 골리앗을 쓰러뜨릴 경지였습니다. 강의에서 나눈 바 마에스트로의 경지입니다. 게다가 다윗은 그 수련의 장소인 양떼의 목축지 인적없이 적막한 그곳을 지긋지긋해하지 않고, 그곳을 좋아했고 즐겼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형들은 모두 집으로 모였지만,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늘 그 아이는 그랬듯, 당연히…오지 않고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에 걸맞게 양떼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헌신했고, 양떼를 치는 일은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피리를 불며 양떼를 이끌고, 조약돌로 맹수를 단 번에 제압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 그러니까 요샛말로 로또 맞을 기회가 왔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다윗에게만은 로또 맞을 일보다 더 즐겁고 더 귀하고 더 뜨거운 일이 양떼를 모는 일이었나 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한편으로 몰입이라는 키워드로 유튜브 검색을 여럿 한 적이 있었는데, 몰입의 경지에 이르면 도파민이라는 것이 분비되고 뇌는 최고의 활성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고로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딴 일 기웃거릴 새가 없는 거죠. 다윗은 몰입이라는 것을 했나 봅니다. 자신의 일에 최고로 몰입했고 창조적으로 피리를 연마했고 조약돌로 철저히 대비하는 다윗은 그야말로 탁월했다는 것이 저절로 인정이 되네요. 사무엘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다윗이 보화처럼 귀함을 알고 그에게 결국 기름 부음을 했나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일을 꾸준히 성실히 할 뿐만 아니라 탁월함으로 즐기며 몰입하여 한다면 비견할 자가 없을 텐데 바로 다윗이 비견할 바 없이 훌륭했나 봅니다.


나는 무엇으로 비견할 바 없는 보물을 갖고 있을까요? 내가 연마한 것은 무엇인가요?


2020년 1월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7시 반이면 아이들 아침식사를 준비완료하고 어설픈 치장을 하고 출근준비를 마쳐야 했기에 빠르게 글을 쓰는 훈련을 했습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2000자를 쓰는 힘’이라는 얇은 책을 만났고 바로 실천했습니다. 2000자 글쓰기 100일 챌린지를 했어요. 스스로와 약속했고 몇몇 온라인에서 만난 이웃들과 함께 썼습니다. 그것도 속도를 붙이려고 10분 타이머를 돌리고 쓰기 시작했어요. 물론 10분으로 2000자는 언감생심이었지만, 글쓰기 속도는 많이 늘었습니다. 글이 길고 장황하다는 피드백을 받은 후로는, 짧고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문장을 일단 짧게 쓰려고 했어요. 한 문장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썼던 나는, 이후 문장을 짧게 읽기 쉽게 고치는 과정도 오래 연습했습니다. 요즘 다시 길게 쓰는 버릇이 나오기는 하네요. 마에스트로는 언감생심이지만 나름대로 다윗의 조약돌이나 피리를 떠올리니 내가 연마한 글쓰기 연습이 떠오릅니다.


한편 고등학교 시절 당시 입시반을 지도하시던 미술선생님께서 미술서클을 운영하셨는데 한 소녀가 가입할 수 있느냐며 노크를 했어요. 바로 저 입니다. 뭔가 끌림이 있었고 끌리는 대로 발을 옮기고 계산 없이 신청했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입시미술을 하는 학생들이었어요. 취미로 들어간 학생은 저 말고 몇 명 있었는지 기억은 흐리지만 거의 없었어요. 가을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아그립파나 수채화가 아닌 ‘지점토로 만든 신발’ 두 켤레를 전시한 학생은 저뿐이었거든요. 그만큼 실력이 비교되니 다른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미대는 환쟁이가 가는 곳이라는 아버지 말씀과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현실에 언감생심 꿈꾸어 본 적도 없었는데, 반수 해서 들어간 서울교대가 전공과를 나누어 모집한다는 거예요. 미술교육과에 들어가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요. 주로 3, 4학년 때 열심히 그렸던 것 같아요. 


학과실에서 급여를 주는 조교를 모집한다기에 돈도 아쉬웠지만 전공 화실에 오래 머물 이유도 만들 수 있어 얼른 신청했고, 교수님의 조교일은 별것도 없었어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다른 학생보다 오래 머무르면 되었고 교수님의 이런저런 일을 가끔 도와드리면 되었어요. 일대일 레슨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기에 더 좋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자꾸 칭찬을 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잘하나 보다 기운이 나서 더 열심히 그렸고, 교대에 없던 대학원이 생긴 1기 모집 때 당연히 지원했고 현재 제가 지도를 받는 서계원 교수(당시는 선생님이셨고, 대학원 1기 동기였던)님도 만났습니다. 연후회라는 교사들의 채색화 모임이 있었고 매년 작품을 내다가 작은 비용을 내면 할 수 있는 지역 문화관을 대관하여 개인전도 열었어요.


그러다 둘째까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난 일주일 후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시면서 육아와 간병으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돌아보면 이 때도 자신을 연마하는 일,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말았어야 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아쉬워요. 어쨌거나 10년 이상의 시간을 나는 생계를 위한 교사의 일과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 육아와 홀아버지 간병으로 길고 긴 터널 속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코로나 19를 겪었고, 전 국민이 멈춤 한다는 사실에 나는 야비하지만 조금은 위안을 받았어요. 나는 10년 전부터 강제 멈춤을 선택해야 했는데, 전 세계인이 피치 못하게 멈춤을 선택해야 하는 일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운명이란 것이 그렇구나 싶었고 그 운명에 많이 순응하여 들끓던 억한 심정도 많이 가라앉을 그 무렵, 코로나 19로 재택근무하면서 많이 답답했던 것 같아요. 똥머리 찔끔 묶고, 앞섭에 밥풀 묻은 줄도 모르고 신발을 간신히 짝짝이를 모면하고 출퇴근 하고, 시장과 병원을 오가며 살던 시절도 어느새 강제 멈춤이 되었어요. 병원은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일단 잘 안 가게 되었습니다. 시장도 카페도 하물며 출근도 강제로 멈추어 주자 나는 오히려 내심 좋았는지도 몰라요. 좋다는 표현보다 너무나 간절하게 필요했던 멈춤이었습니다. 강제로 한가로워졌습니다.


온라인을 기웃거렸고 온라인 교사성장학교 고래학교에서 1년 회원을 모집한다기에 덥석 가입을 했고, 그곳에서 리더이신 선생님께서 매일 몽롱쓰기라고 하여 자기검열 없는 글쓰기를 알려 주셨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따라 썼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아버지는 결국 코로나 시국에 운을 다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나의 집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다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나의 대학원 첫 동기이자, 멘토이신 서계원 선생님은 10년 동안 매년 두 세 차례 나에게 다이얼을 돌렸고, 나는 10년을 전화를 모질게 받지 않았어요. 사실 받을 틈도 없었어요. 무심코 전화를 받았고 다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인지 10년을 피해도 소용없고 다시 돌아와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내가 갈고닦은 재능이라면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떠올라요.


내가 머무는 곳은 가정이고, 학교인데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펼치는 그런 곳은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국어와 수학 그리고 반나절의 삶을 제공하는 그런 곳이 초등학교입니다. 나는 다윗처럼 나의 취미 나의 연마로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지켜주거나 가르치는데 잘 활용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요즘 4년을 연마한 글쓰기가 국어시간 학생들을 좀 더 집중시킨다는 느낌입니다. 피리를 불 줄 안다면, 그 시간 학생들을 위해 피리를 불어 주고 싶네요.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나 떠들음 없이 양떼의 영혼을 움직이는 다윗의 피리실력이 부럽습니다. 나도 그런 실력을 연마했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요. 내가 연마했던 글쓰기와 그림도 다윗의 피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직장일이다 보니 특별히 취미의 전당에 올리지는 않았는데, 그곳에서 내가 연마한 것은 무엇인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나만의 피리소리와 나만의 조약돌을 내가 갖고 있나 돌아보기도 합니다. 특별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프고 힘든 아이들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나의 피리소리 거나 조약돌일까요? 그것이 특별히 탁월하게 생각되어지지는 않는데 그것은 그 누구도 몰라야 하는 은밀한 일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오직 아이와 선생님 사이의 은밀한 주고받음으로 한 해가 지나며 잊혀야 하고 오직 반짝이는 아이의 눈 빛에서만 여운이 남아있을 뿐이니까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그리고 아이의 상처를 바라보는 마음! 저의 취미? 특기? 이런 것들을 교수님의 질문으로 찾아보았습니다. 특별히 상처를 바라볼 줄 아는 나의 안목을 어딘가에서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글쓰기 과제였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언저리에서 저는 언제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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