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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수 Jun 05. 2024

4화

'당신은 자신을 연마하십니까?'


4강이 끝나고 다시 나는 교수님이 던지신 질문 앞에 섭니다. 다윗이야기로 매번 다른 강의를 펼쳐 주셨습니다. 성서의 다윗이야기를 매 강의마다 다른 강의내용으로 새로운 이야기로 새로운 감동과 새로운 질문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내가 아는 다윗이야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내가 아는 다윗이야기는 그저 약관의 청년 다윗이 거인이고 노련한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놀라운 대반전의 서사시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해석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내적싸움 혹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승화시켜 주시는 해석에 전율이 있었습니다. 늘 우리는 남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남의 성공 스토리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다윗의 드라마틱한 승리에 관심이 많았고 성서도 잘 모르는 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마치 내가 다윗이 되어 용감하고 드라마틱하게 골리앗을 물리치는 전사로 감정이입하는 것을 더욱 즐깁니다. 그래서 골리앗은 반드시 제3자 이어야 했고 그가 나의 내면의 극복해야 할, 혹은 건너가야 할 그 무엇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죠. 


성서가 어떻게 해석이 되어야 마땅한지는 나는 잘 모릅니다. 다만 그 이야기가 나에게로 질문이 되어 돌아올 때 나는 더욱 긴장되고 나에게 더더욱 집중이 되면서 나를 깊이 성찰할 수 있게 됩니다. 내 안에 극복해야 할 자아가 한 번도 그렇게 골리앗처럼 거대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골리앗을 물리치는 사명을 가진 내 안의 자아가 그렇게 어리고 한 번도 전투에 나선 적 없는 목동 양치기였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내 안의 자기극복의 스토리가 이렇게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고, 그런 생각을 하도록 자극해 주신 강의에 경탄과 존경을 드립니다. 


삶 속에서 무엇인가에 도전할 때 늘 외부를 향해 있었어요. 즉 외부의 거대한 이유들을 찾아 나를 설득해 댔죠. '이것 때문에 난 못해! 이것 때문에 내 일은 아니야! 이게 못마땅해!' 이것들은 모두 외부에서 찾은 것들의 총집합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내 안의 골리앗을 찾으려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내 안의 골리앗을 만나려 시도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뭘까 생각하니 내가 외부의 적(이유)를 떠올리는 것이 더 쉽고 유리했나 보다 싶습니다. 항상 이 사회 탓을 하고, 이 나라 탓을 하고, 이 시대 탓을 하면 그게 더 쉬웠고 사실 충분한 이유도 많이 제공해 주었어요. 늘 이유가 있었어요. 내가 도전하지 않고 회피해야 할 이유가 늘 많이 있었습니다. 쉽게 이유를 제공해 주었어요. 


내 안의 골리앗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 내가 나를 '연마'한다? 사실 질문을 제 마음대로 해석하다 보니 질문이 잘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나를 극복하기 위해 연마한다?' 그런 걸까요? 혹은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저 진짜 나의 소의명분, 사의명분을 찾는 '연마'라던가,  찾기 위한 도구로서의 '연마'일 수 있겠지요? 


궁금하고 이해가 쉽게 가지 않는 부분을 장황하게 글로 써 보았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무엇을 연마했는지 오늘 말씀드리려 합니다. 잘 정리가 되지 않는 이 부분을 쓰려합니다.


늘 나는 연마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만나 그들을 설득하는 것을 연마합니다. 그들을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그들을 마음으로 말로 이끄는 것을 연마합니다. 직업이기도 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매일 연마했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때로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서, 때로는 나에게 주어진 책무이니까 그랬어요. 나는 늘 초등학교 학생들을 이끄는 것을 연마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이끄는 것보다는 스무 명 남짓 무리를 이끄는 방법을 연마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연마가 요즘 온라인에서 단톡방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고 유용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온라인 단톡방은 마치 어린아이들을 다루듯 단호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자유롭게 격려해야 하기도 하거든요. 어린아이들 무리를 이끌며 상처 없이 리드하는 방법을 연마했던 것 같습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방법이 늘 아이들에게 필요했어요.


대학시절 그림을 10년 넘게 그리다가 둘째를 낳으면서 중단했어요. 그리고 다시 작년부터 그림(한국 채색화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매일 무엇인가를 잘 완성하기 위해 들여다본다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독특한 경험 같아요. 어떤 그림은 6개월에 걸쳐서 완성시키기도 했습니다. 빨리 하는 그림은 1주일에 완성하기도 했고요. 특히나 완성을 위해 오래 들여다보는 과정은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그림은 스케치하는 순간과 완성하여 낙관을 찍는 순간, 싸인을 올리는 순간이 있는데, 그 사이의 과정은 설명이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극복하는 것이 연마이기도 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게 힘들어 포기하기도 해요. 사실 뭔가 잡히는 결과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막말로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차라리 싸인을 마치는 순간과 스케치하는 순간은 의미가 명확하고 얻는 기쁨도 명확한데 그 사잇 과정은 절대 미스터리 같아요. 무엇을 연마했느냐 물으시니 그 사잇과정을 연마한 것 같아요. 안갯속을 건너가는 수련이라고 할까요. 별것도 아닌데 수련이라는 단어를 붙이니 민망합니다. 


2019년 코로나 때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카카오톡도 읽지 않던 제가 누구보다 빠르게 답장하고 늘 카카오톡을 읽습니다. 온라인 교사성장학교 고래학교라는 곳에 나의 멘토가 있었거든요. 새벽기상하고 글 쓰는 것을 그분께 배웠어요. 새벽에 일어나 인증하고, 글을 쓰고 인증하는 일입니다. 늘 이불속에서 밍기적거리는 하루를 시작했었는데 그때 맑은 아침시간에 글 쓰는 것을 배웠고 오늘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블로그를 쓰다가 어떤 검색을 하는 과정에 교수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고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분이 블로그에 이렇게 글을 남겨 주시는구나!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곳에 계셔 주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유튜브까지 올려 주시니 너무 좋았어요. 어쨌거나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고, 좋은 분들을 글로 혹은 모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새벽시간을 글 쓰고 요즘은 그림도 그립니다. 돌아보면 새벽시간에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집중하는 법을 연마한 것 같아요. 그리고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나를 알리는 sns 블로그와 인스타 브런치 이런 것들을 활용하는 방법도 이 기간 많이 연습했습니다. 특히나 선생님들이 모인 온라인 교사성장학교 고래학교에서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멘토 선생님을 따라 했고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무언가를 따라 한다고 해요. 신기한 일이지요. 습관챌린지를 하는 오픈톡방도 운영해 봅니다. 밴드도 운영해 보고요. 이곳 온라인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아버지를 모시면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연마한 것 같아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운명이 다음 세대를 잇는 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특히나 결혼도 안 하고 출산율도 낮은 것은 이 운명을 문명이 많이 지배해서 그런가 봐요. 


나를 돌아보는 질문 감사합니다. '나는 무엇을 연마했는가?' 돌아보았습니다. 글쓰기도 코로나 기간 꾸준히 썼고, 2024년 6월에 교수님의 '자기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만날 운명이 있었는지 블로그를 했고 글쓰기를 했네요. 이 둘이 아니면 어떻게 교수님을 만날 수 있는 운명이 되었겠나 싶어요. 사실 온라인 글쓰기 강의를 해 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유튜브 들으며 갈급함을 채웠어요. 나를 연마하다 보니 교수님의 직강을 듣는 행운이 주어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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