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종일 마음이 무거웠어요. 고래학교 선생님들을 부추겨 지식샘터 교사연구회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날이었습니다.
돌아보니 나는 참 실패를 두려워했던 사람이었어요. 실패는 뭔가 엄청난 손해로 느껴졌어요. 일단 망신이 그리 싫었습니다. 그동안의 나의 수고와 공들인 시간들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고, 특히나 젊은 시절에는 '쯧쯧, 그럼 그렇지!' 하는 듯 한 시선들이 너무 싫었습니다. 가족들과 나의 친구들, 나의 지인들과 직장동료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나를 생각할까 싶었어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 뭘 해도 운이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도전을 위해 연필 한 자루라도 더 샀고, 가고 싶은 모임에도 못 갔죠. 그런데 꿈은 '와르르' 쉽게도 무너집니다.
실패의 무게감과 창피감에 나는 나의 도전을 꼭꼭 숨기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결과가 나오기까지 숨기는 거죠. 한 살 더 먹을수록 실패의 무게도 그만큼 커져서, 늘 실패의 두려움에 압도되어 점점 더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갔어요. 자기계발의 힘이랄까? 감사일기의 힘이랄까요? 어쨌거나 나의 내면근육이 단단해졌나 봐요.
올해 나는 3년째 매년 1월이면 써 오던 버킷리스트에 '실패이력서 10개'라고 딱 적었더라고요. 적고 덮어 두었는데 4월 경에 다시 버킷리스트를 열어서 자세히 보니, 내가 글쎄 실패이력서 10개를 올해의 버킷리스트로 적어 둔 거 있죠?
'이런 신기한 일이 또 있을까요?'
지식샘터 교사연구회를 신청하는 동안 고래학교 선생님은 온라인 협업으로 신청서식 10장을 함께 작성했어요.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짜고, 서로의 역할을 모두 해 내야 했습니다. 바쁜 선생님들의 스케줄을 알지만 늦게 내는 분들께는 여러 번 호출하여 싫은 내색을 뿜어야 했어요. 일정에 맞게 신청서를 제출해야 그나마 실패의 기회도 있는 거였으니까요.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들이 착착 협조해 주시고, 제대로 된 보고서가 만들어지니 욕심이 슬슬 올랐어요. 좀 더 잘해 내고 싶어서 선생님들께 이런저런 자료를 자꾸 요구했죠. 마감 하루 전날 신청서를 업로드하고 그리 기분이 좋더라고요. 뿌듯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특히 얼굴 한 번 맞대지 않고 톡과 문서공유로만 모든 협업을 끝낸 뿌듯함이 있었어요. 그만큼 고래학교 선생님들의 케미가 그러니까 협조가 잘 되었습니다. 제안하고 신청서를 마무리하는 업무를 담당한 저로서는 어찌 뿌듯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나요?
'아쉽게도 탈락되었습니다.'
결과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라오는 날 50번은 공지사항을 클릭한 거 같아요. 이제나 올라올까 저제나 올라올까 두근두근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고래학교 교사연구회를 대표해서 올린 서류는 없었어요. 탈락입니다. 사실 선정된 이름을 보니 너무 쟁쟁해서 오늘 조금 쭈그려 들었어요.
'망신을 일단 극복해야 했어요.'
도전하려면, 실패이력서를 10개 쓰려면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망신살입니다. 아! 망신에 초연해야 도전할 수 있구나 깨달았어요. 작년 가을 교사연구년 2차 면접까지 치르고 탈락하면서 내 안에는 두 가지 마음이 전투 중이었어요. 망신스러우니 다시는 하지 말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는 했으니 수고했어! 사실 이전의 저라면 부끄러움에 압도되어 며칠은 고개를 못 들고 다녔을 거예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꾸었나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해 낸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해 내일을 기록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온라인 지인들에게는 나름 유행입니다. 버킷리스트와 버킷리스트를 달성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 말입니다. 나도 2년째 한 해의 나의 실행을 돌아보는 일을 해 왔는데, 돌아보고 기록하여 블로그에 남기는 일을 반복하면 할수록 내공이 쌓이는 것 같아요. 첫 해에는 한 해를 돌아보는 것 자체도 어려웠어요. 12월에 어떻게 1월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요? 그러나 둘째 해에는 스스로 12월을 생각하며 수시로 기록해 나간 것 같습니다. 월별로 이 번달 나의 실행(성공과 실패 모두)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어떤 물론 에는 잊어버리기도 했죠. 기록하는 일이 3년 차에 접어들자 나는 좀 더 용기를 내어 실패의 기록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실패이력서 10개 만들기'라고 버킷리스트에 당당히 올려 보았어요.
적을 때는 몰랐는데 이 11글자가 큰 힘을 발휘했어요. 지식샘터 교사연구회 모집 공고글을 보면서 바로 고래학교 선생님들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덥석 제안했고 신청했고, 그리고 탈락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전처럼 부끄러움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어요. 버킷리스트에 '실패이력서 10개 만들기'를 적은 후 일어난 변화입니다.
물론 기록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실행하는 습관이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