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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이층집 정원일기 4

by 일곱째별

유월이 되었다.

코로나 19 격리해제가 시행되었다.

2년 만에 복간한 <녹색평론>이 배달되었다. <녹색평론>을 받아들자 왠지 정지되었던 시스템이 다시 가동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건 회귀인지도 모르겠다. 일 년 넘게 풀지 못했던 짐을 풀었다.

강재훈 선생님의 <지율스님의 경> 사진작품을 들여놓았다.

작년 7월에 광주에서 보고 올해 6월에 들여놓았으니 일 년이 걸린 셈이다.

선생님을 만난 지 6년 반. 선생님 작품 중 하나를 소장한다면 <지율스님의 경>이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작품 두 점을 벽에 거니 집안이 꽉 찼다. 사진이 담고 있는 의미와 기운이 그러했다. 길담서원 서원지기 소년님의 글씨와 지율스님의 내성천 사진이 한쪽 벽에서 생동감을 상승시킨다.


이 집에 왔을 때 작은 방에 못 하나가 박혀있었다. 그 못에 달력을 걸었다. 내 헤어디자이너의 작품 <BLUE>였다. 사진이 오기 전까지 이 집의 유일한 예술작품이었다. 사진을 걸면서 작은 방에 내 유일한 유화를 걸었다. 블루와 그린이 맞은편 벽면을 차지한 지도의 복잡함을 차분하게 한다. 그간 내 두 발로 걸어다녔던 많고 많은 지역들이다.


작은 방에서 주말에 체크해 놓은 공책 40권 남짓 들어있는 가방을 현관 앞에 가져다 놓았다.

다음날인 종강일에 학생들의 필사와 습작 공책을 무겁게 들고 강의실로 갔다.

학생들에게 공책을 돌려준 후 편지지를 나눠주고 편지를 쓰도록 했다.

한 주 전에 한 학생으로부터 손편지를 받아 감동했지만, 그건 미리 생각해 둔 것이었다.

대상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인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한 학기 동안에 무얼 배웠는지, 또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쓰라는 것일지라도 편지의 형태일 수밖에 없다.


혼자 쓰고 마는 게 아닌 글쓰기를 할 때는 주최 측 의도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까지 남은 학생이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꿈치로 보아 매우 심각하고 진중하게 쓰는 것으로 보였다. 마침내 그 학생이 종이를 냈다. 그 종이에는 시 한 편이 쓰여 있었다.


한 학기 동안 여섯 권의 책을 읽게 했다. 그중 다섯 권이 시집이었다. 그 학생은 내 가르침을 가장 잘 체화시켰다. 낮엔 학교에서 밤엔 일터에서 주독야경하면서도 과제를 안 하거나 늦게 낸 적이 거의 없는 학생이었다. 그 시는 읽음과 동시에 내 눈에 눈물이 고이게 했다.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가는 그 학생을 쳐다보았다. 그 학생도 눈물을 훔치면서 나갔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로.


아무리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려고 해도 똑같지는 않다.

과제와 발표를 완벽하게 하는 학생, 30분 정도 일찍 오는 학생, 미리 와서 내가 수업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켜주던 학생, 공모전에서 입상한 학생, 일찌감치 취업한 학생 등등 여러 학생이 있지만, 일 년 동안 지켜본 바로는 꾸준히 열심히 하면서 실력이 느는 학생이 제일 예쁘다. 그런데 마음을 주면 그만큼 따라오는 학생이 있는 반면, 방심하고 처지는 학생도 있었다.


가르쳐주면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배워도 쉽게 자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과 글. 그 틀을 깨는 건 참으로 어렵다. 그 학생은 그 틀을 깼다. 훌륭한 학생이다. 내가 마음을 많이 주었던 어떤 학생들보다 그 학생이 마지막으로 나를 제일 감동시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에 상대의 마음에 남는 방법. 그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주는 것이다.


몇 년간의 내 떠돌이 생활을 정착하게 만든 학생들. 이 업계에서 첫사랑이라면 맞을까?

참 많이 생각하고 아꼈다. 열심히 가르쳐서 이번 학기에도 공모전 수상작이 많았다.

이제 그 학생들을 보내야 한다. 세상으로 사회로.

다행히 나는 정년이 없는 프리랜서라 언제든지 비슷한 사회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종강 후 200km 자전거순례를 하고 왔다.

학생들에게 소개했던 수라갯벌 현장을 다녀왔고,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해 이름 없이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이틀 후 수료식과 함께 두 학기 모든 과정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말은 한 마디,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긴 문자 한 통이 왔다. 지난봄 공모전에서 입상했던 학생이었다.

‘엄청난 열정으로 1년 동안 다양한 수업을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로 시작되는 문자였다. 원하던 분야 정규직에 합격했다고, 나와 학교에서의 순간들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나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영향력을 미치는 실력 있고 인간적인 자신이 되겠다고 쓰여 있었다.


'따뜻하고 인간적'이라니, '존경하는'보다 훨씬 좋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내 진심을 알아주고 반응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서울시민에서 타 도시로 전입한 지 석 달 만에 모르는 편지가 와서 반가운 마음에 뜯어봤더니, 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온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안내문이었다. 그리곤 얼마 후 전화도 왔다. 생활이 곤란한 경우에 복지제도를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겸임교수는 방학 때 수입이 없다. 학기 중 수입도 학생들 아르바이트 수준이지만 그래도 작가에겐 고소득에 속한다.

그 알량한 강사료로 특강을 각 과목 별로 두 번이나 유치했다. 학생들에게 최고 만남의 기회를 주기 위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방학에는 계절학기를 맡지 않았다. 학기 중엔 학생들에게 열정을 쏟느라 작품활동을 못 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초여름이다. 벌써 햇살이 따가워 맨살이 아프지만 그래도 여름엔 여름만의 치솟는 생명력이 있다. 그 기운과 더불어 나도 싱싱하게 살아보련다.

종강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프랑스 자수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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