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집 정원일기 15
날아오른 그 순간,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호소다 마모루 감독, 2006년)가 떠올랐다.
그날은 여름 내내 찐더위에 시달리며 예정한 곳에 가려고 할 때마다 장마에 태풍이 휩쓰는 요상한 날씨에 지친 날이었다. 시름시름하던 내게 뷔도가 와 주었다.
뷔도와 함께 처음으로 주행을 하려고 해거름에 길을 나섰다.
상행하던 길에 이미 어두워졌고 하행하던 길이었다. 내 자전거 뷔나의 전조등이 앞에 달리는 뷔도를 감싸 비추고 내려오는데 시간이 정지한 듯 먹먹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었을까? 얼마 내려가지도 않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왼손으로 브레이크 레버를 꽉 잡았다. 순식간에 자전거가 급정거하며 내 몸이 앞으로 붕 날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떠올랐다. 중력을 어길 수 없던 내 몸이 땅에 떨어진 찰나 정신을 잃은 듯했다.
잠시 후 어떤 남자가 119를 부르라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 정도인가?'
의식은 들었으나 눈을 뜰 수도 꼼짝할 수도 없었다. 온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차들 두 대가 중앙선을 넘어 옆으로 지나갔다. 왼쪽 얼굴부터 양 손바닥과 팔꿈치와 무릎이 아팠다. 간신히 눈을 뜨고 일어나 보도블록으로 기어가 앉았다. 반팔에 반바지에 장갑도 끼지 않았으니 맨살이 나온 부분은 거의 살갗이 벗겨져 피가 나고 있었다.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어서 머리가 깨지진 않았다.
뷔나도 나처럼 엉망이었다. 전조등은 이음새가 깨졌고 후미등은 분해됐다. 안장도 뒤쪽이 찢어졌다.
뷔도 주인의 도움으로 약국에 갔더니 진물을 빨아들이는 두꺼운 피복재를 주었다. 큼직하게 네 군데 상처에 피복재를 접착테이프로 붙였다. 심야가 되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아프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낮이 되니 두통은 사라졌다.
접착이 시원치 않아 다른 약국에 가서 두오덤과 멍을 풀어주는 연고를 사왔다. 그리곤 요즘 거의 가지 않던 마트에 갔다. 본능적으로 살려면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신호였다. 내가 고른 식품은 오렌지주스와 요플레와 유산균음료와 치즈와 토마토와 자두와 키위였다. 복숭아는 비싸서 사지 못했다. 단백질인 치즈만 빼고 비타민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재생에 필요한 영양소였다.
무더위에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로 땀이 나니 샤워를 해야 하는데 관절마다 테이프가 붙어 있으니 요령이 필요했다. 팔다리 관절이 구부러지니 군데군데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인형 팔다리 조립하듯 꺾이는 내 몸이 신비로웠다.
이틀 후 상처 주변의 얇은 살갗이 접착테이프 때문에 벗겨져 또 다른 상처가 생기기 시작하자 다른 피복재를 붙였다. 면적이 작아지고 방수가 되니 고양이 샤워에 머리도 감을 수 있었다.
나는 자꾸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떠올라 유튜브에서 애니메이션 축소판을 보았다.
마코토는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왼쪽 브레이크 선이 끊어진 걸 안다.
그랬다. 예전에는 왼쪽 레버를 잡으면 뒷바퀴 브레이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오른쪽 레버가 뒤 브레이크가 되었다. 유럽에서 자전거가 들어오면서 반대로 바뀐 듯하다. 아마 나는 급박한 순간에 몸에 익은 예전 버릇이 나왔을 것이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었거나 들었는데 세상에는 한 번 배우면 절대 잊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수영과 운전과 사랑(아마도 성관계). 자전거 주행도 운전에 들어가니 나는 예전에 습득한 기술을 잊지 않았나 보다.
다시 애니메이션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등장인물은 마코토와 치아키와 고스케. 여자 한 명에 남자 둘. 주인공은 여자인 마코토. 어느 날 과학실에서 타임리프를 경험한 마코토는 자잘한 일에 시간을 되돌린다. 그러다 마지막 한 번이 남았을 때 치아키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그런 치아키에게 달려가겠다는 마코토.
내게 미래를 약속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달려가겠지. 아니, 내겐 미래를 약속하는 사람보다 당장 아프면 안아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현재의 사람이 필요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중력을 거슬러 자전거에서 붕 떠오르던 그 순간이 놀라면서도 황홀했다. 그 상태로 사라진다 해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그건 떨어지면 얼마나 크게 다칠지 예상하기 때문이었을까?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거기서 정지하고 싶기도 하다. 싹 사라지고 싶은 순간. 그 중 행복한 순간에 사라지고 싶은 기분. 나는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던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뷔도에게 내 불빛을 비춰 어둠으로부터 보호해 주던 그 순간 행복했다. 그러나 잠시의 행복에 이렇게 큰 대가가 따르는 줄 미처 몰랐다.
최근에 리현이 물은 적 있다.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무얼 하고 싶어?”
“난 전 세계의 핵발전소를 다 없어지게 하고 싶어.”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응”
누군가와 남은 생 알콩달콩 사랑하며 사는 게 꿈이라고 밥 먹듯 말하면서도 그런 질문에 나는 자동으로 대의를 생각한다.
핵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겠다는 일본의 만화영화를 이야기하는 게 겸연쩍지만, 문화란 그렇게 잠재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오는 요소라 어쩔 수 없다. 내게는 일본인 친구도 있다. 일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일본이 하는 부조리한 짓을 싫어하는 것이다.
2023년 8월 12일 토요일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국민행동 10만 명 집회가 서울에서 있는 날이다.
멍든 얼굴에 팔다리가 성치 않은 나는 못 갔지만, 오후 6시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냈다. 생명을 지키려는 염원으로 일본의 만행을 반드시 막아내기 바란다.
이 일기로 이층집 정원일기는 당분간 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