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집 정원일기 12
눈을 뜨니 거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며칠째 라디오를 틀고 잔다. 불안하거나 무섭거나겠지. 아침에 일어났다가 또 잤다. 밖이 밝았다. 비가 그친 줄 알고 커튼을 젖히고 멀리 밭에 물 고인 고랑을 보니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고 있었다. 이슬비였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도 이미 정오가 지나 어제처럼 버터에 다진 맛살과 양파와 대파와 마지막 토마토를 볶다가 달걀 한 알을 깨뜨려 넣고 에그 스크램블을 했다. 어질러진 테이블 위에 간신히 매트를 깔고 접시에 얹은 에그 스크램블을 먹으며 생각했다.
‘비는 언제 그칠까? 난 언제쯤 밥을 할까?’
빵 한 조각이 있으면 좋겠는데 식빵 떨어진 지 오래다. 나가지도 않을 거면서 근처 유기농 빵집을 찾아보았다. 없었다. 믹스커피에 유통기한 지난 유기농 우유를 부어 밀크커피를 마셨다.
안부 문자가 왔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은 빗줄기를 가르고 전파를 타고 전달된다.
비가 그쳤다. 서둘러 내려갔다.
콩이가 하얘진 모습으로 꼬리를 흔들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손에 간식과 미용기구가 들린 것을 보고 콩이는 간식만 먹고 전원을 켜니 집으로 쏙 들어갔다. 나오라고 부르면 나오고 조금 밀면 들어가기를 여러 번. “아이~ 예쁘다.”를 연발하며 제법 균일하게 몸통 털을 밀어주었다. 습하고 더운 여름 나기엔 털이 많고 길지만 어쩌면 털이 촘촘하고 길어 모기가 심장사상충을 옮기지 못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미용을 하고는 상으로 산책을 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제, 길에 사람이 없을 테니 집에서 입던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갔었다. 오늘도 그 연속으로 짧은 바지 차림으로 나갔다.
모처럼 하늘이 파란색을 보여주었다. 마음이 펴졌다.
하늘 속에 커다란 회색 새 한 마리가 있다. 구름새.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오자 집주인이 계셨다.
콩이 털이 이상하다고 긴 게 좋다고 하셨다. 그럼 나는 앞으로 콩이 미용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인이 해 달라고 미용기까지 주셨는데 말이다.
내가 오고 콩이는 동네에서 ‘배신자’라고 욕을 먹는다. 그동안 밥 주던 이웃을 아는 척도 안 하고 나만 따른다는 이유였다. 주인도 같은 이유로 가끔 서운하실 것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맡겼다가 그 둘이 긴밀해지면 그 무언가에 소유권을 행사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콩이를 보며 걱정했다. 내가 가면 어떡하나 하고. 남원 귀정사 산동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콩이의 주인은 집주인이다. 소유권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내게 소유권이 없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지나친 책임감이 있어 자신의 욕구보다 남을 더 챙기면서 살았다. 이제는 과도한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어차피 나는 계약 기간이 차면 떠날 사람이다. 지금 콩이가 나만 바라보는 게 나중에 내가 없을 때 그 애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텃밭이 엉망이다. 웃자란 상추는 쓰러져 있고 쑥갓도 꽃도 보지 못한 채 쇠어서 쓰러졌다. 가지는 작고 얼마 없는 방울토마토는 터져서 떨어졌다. 고추만 멀쩡하다. 잠깐 사이 시든 상추와 쑥갓을 뽑아서 바깥으로 던지는데 낮인데도 모기가 다리를 마구 물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다리가 난리다. 역시 시골에서 짧은 바지는 적합하지 않다.
고추를 따오니 비로소 밥을 먹고 싶어졌다. 고추를 먹기 위해 밥을 지었다. 갓 지은 검은콩밥에 밭에서 따온 고추를 뒷집에서 주신 딸기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비타민 C가 몸에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비를 머금은 끝물 상추도 연하고 아삭했다. 텃밭을 만들어주신 주인께 감사한다.
초저녁이 되면 마음이 바쁘다. 밤이 되면 꼼짝 못 하기 때문이다. 콩이와 또 산책을 나갔다.
낮의 핫팬츠가 신경 쓰여 원피스에 긴 로브를 걸쳐 입었다. 이번에 콩이는 집 옆 산을 돌아 고급 전원주택 단지로 갔다. 나는 보통 콩이가 가자는 대로 가는 편이라 맨 꼭대기 집까지 올라갔다. 전에 만난 적 있던 저택 주인이 마침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비 피해를 물었더니 공사를 잘해서 없다고 한다. 청주 오송 참사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너무 참혹해서 비가 그만 오고 캐나다 산불지역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뉴욕까지 뿌옇다더라고 말하고 잘 지내시라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후회가 올라왔다. 말이 너무 많았다. 상대가 원치 않는 정보는 잘난 척이 될 수 있다. 여기는 낯선 곳이고 나는 타지인이다.
콩이가 목말라하는 듯해 집에 묶어두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평소에 가는 마을 가운데 농로로.
주황색 도는 노란빛 금계국이 모진 비바람에도 서 있었다. 예뻐서 몇 송이 꺾고 싶었다.
‘나랑 같이 집에 갈 사람, 아니 꽃?’
마음으로 물어보며 꽃들을 보는데 자세히 눈길 주는 꽃마다 나비와 벌이 앉아있었다. 그래, 꽃에겐 이곳이 더 좋지. 저만치 갔다고 돌아오는 길에 땅에 누운 꽃이 보였다. 밟히게 두느니 데려가자고 꽃을 꺾었다. 두 송이 꺾고는 누워서도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꽃 입장이 되어보니 더는 꺾을 수 없었다.
금계국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원주 토지문화관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 여느 때처럼 초저녁 산책하던 어느 날, 새로 파마를 해서 꼬불꼬불하고 새까만 머리로 길가 금계국 옆에 서 계시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 토지문화관에 오는 작가 중 매일 성황당 옆 나무를 찾아오는 작가는 처음이라며, 첫눈에 나를 며느리 삼고 싶어 하셨던 할머니. 할머니와 처음 해 본 깨 농사. 이후로 난 매일 산책길에 내가 심은 깨 사진을 찍었었다.
작년 가을, 원주에 문학 강의가 있을 때 찾아뵙고 2년 전 사진을 드렸더니 (눈이 안 좋아) 사진 보지도 않으신다고 하셨던 할머니. 그때 만둣국을 끓여 주고 싶어 하셨는데 바빠서 못 먹고 왔다.
3년 전에 두 달 만났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원주가 내 첫 번째 방이기도 하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농촌에서 할머니와 살고 싶던 내 꿈에 맨 처음 나타난 사람이기도 하고, 항상 나를 반가워하시고 맛있는 걸 주시며 잘해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집 밥을 먹고 그네를 타며 커피를 마셨다. 곧 아흔 살이 되실 할머니를 또 뵐 수 있을까. 언젠가 다시 토지문화관에 가게 되면 그땐 뵐 수 있겠지.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시길 바란다.
이 동네에는 주민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산책할 때 마주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남녀커플을 둘이나 보았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이들은 부부로 보였다. 손을 잡고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하던 옛날도 아니고 젊은이들은 정류장이건 길거리건 아무 데서나 껴안고 뽀뽀도 하는 세상에 손잡고 가는 사이가 부부여야지 손잡고 가면 이상한 사이가 부부란 건 참 이상한 사회 통념이다.
성욕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식욕이 없듯 성욕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밥을 먹는 게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식욕과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듯 성적인 행위 역시 본능적인 성욕과 더불어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한다면 가까이 있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이에 성욕이 배제된다면 그건 특이한 관계다. 마찬가지로 사랑하지도 않는데 육체적 관계를 하는 것 역시 내게는 있을 수 없다.
언젠가 관지가 내 손은 ‘순결한 손’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 하고나 잡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콩이를 쓰다듬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몸은 매우 정직하다. 나는 몸의 감각을 믿는다.
영귤차를 타서 긴 컵에 따랐는데 책을 읽다가 독서대를 미는 바람에 컵이 쓰러져 차가 쏟아졌다. 뒤에 있던 색연필이 젖었다. 색연필을 수건에 들어내고 케이스를 닦았다. 색연필이 마르자 48개를 번호순대로 차곡차곡 넣었다. 그 번호란 게 1~48이 아니고 901~1084라 순서대로 맞추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다 맞추고 나서 조화를 본다. 내가 생각하는 흐름과는 조금 다르다. 색상 전문가들의 배치는 숫자 순서대로가 아닌가 보다. 그래도 내 식대로 정리하고 케이스 뚜껑을 닫아보니 초저녁에 농로에서 본 꽃과 나비가 그려져 있다. 전세계 누구나 생각하는 그 꽃이 산책로에 있고 지금은 그 꽃이 핀 7월이다. 장마가 너무 길다.
낮에 호우피해 안부를 물어본 청주 친구에게서 밤 늦게 괜찮다는 답이 왔다. 둘 다 알고 있을 그 피해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매일 안녕을 묻는 나날이다.
전주만 들어도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음악들이 있다. 아바 ABBA의 안단테 Andante도 그중 하나다.
한낮의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시간은 훌쩍 30여 년 전으로 돌아갔다.
나와 함께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보세요, 부디
날 부드럽게 만져주세요, 어느 여름날 저녁의 산들바람처럼
여유를 가져보세요, 천천히 해보세요
느리게 느리게
그냥 그 감정이 자라도록 해 주세요
당신 손가락들로 부드럽고 가볍게 해 보세요
당신 몸을 밤의 벨벳이 되도록 해보세요
내 영혼을 만져주세요, 당신은 방법을 알잖아요
느리게 느리게
이제 나와 천천히 가요
나는 당신의 음악
나는 당신의 노래
~
고등학교 때 중창으로 부른 노래 중 아바 노래가 있었다. 그때는 하도 어려 이 내용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 들어보니 대낮에 듣기엔 낯 뜨거운 내용이었다. 아마 ‘안단테’가 후보에서 제외된 건 가사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처럼 해가 나 얼른 제일 큰 코펠에 물을 데워 내려갔다. 드디어 콩이를 목욕시켰다. 처음엔 이리저리 도망가던 콩이도 샴푸로 거품을 내고 배까지 북북 긁어주니 가만히 있었다. 배에서 털에 뭉쳐있는 뾰족한 열매를 두 개나 뜯어냈다. 헹군 다음 마른 수건으로 벅벅 문질러 물기를 말려주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집 앞으로 나가보니 트럭이 와 있었다. 주문한지 12일 만에 마침내 책장이 온 것이다.
생각해 둔 곳에 책장을 놓자 약간 흔들렸다. 배달기사가 다리를 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럼 디자인이 망가져서 안 된다고 했다. 기사는 책장의 반값도 넘는 배달비를 받아 갔다. 여기는 수도권이 아니니까.
택배 상자에 담겼던 책들을 거실 책장으로 옮기는데 신이 나기는커녕 아쉬웠다. 해남으로 도반이 보내주었던 와인과 홍차와 사과와 커피가 담겼던 박스에는 특별히 아끼는 책들이 담겨있었다. 그 책들은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다녔다. 자동차에선 누워서 여러 정원들에선 서서.
아홉 칸의 책장 중 제일 가운데는 독서 모임에서 어렵게 읽었던 원서와 한글판을 두었다. 대부분 블랙이라 통일감이 있어 흡족했다. 그 왼쪽엔 문학잡지와 녹색평론을, 오른쪽엔 탈핵 관련 책들과 성경과 그림 도구를, 아래엔 사진 관련, 위와 그 오른쪽엔 택배 상자에 있던 소설과 옛날 시집과 에세이와 이론서를, 왼쪽 맨 위엔 신간 시집과 희곡과 에세이를, 맨 아래엔 대출도서와 그림책 두 권과 커피와 방송 관련을, 오른쪽 맨 아래는 시디플레이어와 시디를.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책들은 벽 한 면을 메웠다. 하지만 기나긴 떠돌이 생활에 내 짐은 최소한으로 줄었다. 책도 꼭 갖고 다닐 것들에서 최근 공부하는 것들 조금이 늘었을 뿐이다. 책꽂이가 생겼으니 함께 독서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
하느리듀가 가고 다훈이가 오더니 다훈이가 가고 계훈이가 왔다. 모두 뷔나의 친구들이다.
드디어 밥을 하고 돼지목살도 굽고 가지전과 김치전도 했다. 딱히 맛있는 것은 없었지만 모처럼 성찬을 누렸다. ‘게 눈 속의 연꽃’은 없다. 하지만 내겐 다섯 개의 흑백 눈이 있다. 그 판엔 승부보다 치열한 양보와 소소한 행복이 있다. 그 옆엔 잔잔한 숲이 펼쳐졌다. 7월의 소원인 탈핵신문 읽기와 녹색평론 읽기를 했다. 백석의 '가즈랑집'과 '통영'과 '국수'와 '미명계'도 읽었다. 습기에 너덜대던 독서대 한지가 팽팽해 졌다. 꿈꾸던 2인용 소파는 아니지만 1인용 장의자가 생겼다. 내 소원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거친 비에도 넘실대는 개울에도 늠름하게 서 있는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뷔나에게도 1000 루멘 밝은 전조등이 생겼다. 이제 우리는 어두워도 달릴 수 있다.
콩이와 초저녁 산책을 하는데 송전탑 있는 산 쪽 위로 무지개 꼬리가 섰다. 주인은 이제 비가 그치려나 보다고 하시며 딸기잼을 한 병 주셨다. 보리수 잼 이야기 이후 잼이 먹고 싶었는데 화들짝 좋고 고마웠다. 처음 보는 마을 분이 콩이가 전에는 꼬리도 흔들고 하더니 요즘은 본 척도 안 한다고 하신다. 나는 콩이 사랑을 독차지해서 좋지만 콩이가 이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마을 분들은 서운해하신다. 콩이는 사랑을 나눠주지 않는다. 간절히 나만 바란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날 지나치지 마
날 보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