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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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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25. 2024

동거 스무하룻날

콩이 쾌유 일지-날벼락 후에 드는 만감


06시에 일어났지만 다시 잠을 청해 08시대에 일어났다.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쓸데없이 시간을 보냈다.

뭔가가 시간을 잡아 끄는 이상한 아침이었다.


콩이 배변 산책을 위해 느리적 느리적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마침내 중문 커튼을 젖혔다.

아.......

거기엔 상상할 수 없던 장면이 벌어져 있었다.

낡은 이불 위 종이 패드는 샛노란 오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으론 시커먼 똥 덩어리가 동글동글 열 덩이도 넘게 아주 많이 널려 있었다.


어제 두 번이나 산책하며 소변을 보았고, 대변도 이틀 전에 보았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그러고 보니 어제 잠들려고 중문 커튼을 친 후 낑낑대는 콩이 소리가 들렸는데 열어보지 않았다.

버릇 잘 못 들까 봐. 그리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아니면 어제 새로 집에 들인 노송나무 때문에 흥분해서 잠시 정신을 못 차린 거였는지, 축배로 마신 370ml 맥주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멀티플레이어였다. 한 번 외출하면 두세 가지 일을 보고 들어와야 하루를 알차게 보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TV 프로그램 작가를 하면서 라디오 프로그램 원고도 썼고 그러면서 잡지에 프리랜서로 피쳐기사나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세탁기를 돌리면서 청소를 해야 시간을 두 배로 쓰는 듯했다. 그런데 고작 노송나무 하나 때문에?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나는 경계에 민감했다. 열성과 정성을 다 쏟지만 내 영역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그게 아무리 사랑하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랑의 정도와 상관없이 나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어제도 그랬다. 피곤하기도 했고 흥분하기도 했지만 잠들기 직전 시간만큼은 콩이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콩이는 동거 후 한 번도 저지른 적 없던, 심지어 퇴원 후 48시간이나 소변을 참던 그 능력은 어디로 사라지고 제 이불에 용변을 보는 만행을 저질렀을까? 그런데 콩이라고 그러고 싶었을까?

서둘러 똥을 변기에 넣고 소변에 펑 젖은 패드를 넣으려고 비닐봉투를 찾아 다용도실로 갔다. 모아놓은 비닐 중 적당한 걸 찾은 게 하필 서울에서 가져온 영양센터 봉투였다. 그곳은 여기선 설명할 수 없는 결정적 장소였다. 말로 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으로 비닐봉투에 소변 패드를 구겨 넣어 입구를 묶었다.

그리곤 오른 팔로는 콩이를 안고 왼손으론 낡은 이불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마당 수돗가 양동이에 낡은 이불을 넣고 물을 틀어 채웠다. 그 후 평소 코스대로 산책을 하며 소변을 보게 했다. 콩이는 밤새 그렇게 많이 싸고는 대변을 또 보았다. 도대체 그동안 매일 대변보지 않던 콩이 위장에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잠시 후 집에 돌아와 콩이 목줄을 수도에 걸어놓고, 적셨던 이불의 물을 따라버리고 정원을 가로질러 빨랫줄 아래 의자를 놓고 물 먹어 무거운 이불을 줄에 걸쳐 널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콩이에게 돌아와 털을 빗겨주었다.

콩이를 안고 다시 올라왔다. 현관에 깔아놓았던 매트 한 장에 물을 뿌려 닦았다. 보이진 않지만 공기가 움직이면 날리던 털이 물기에 사로잡혔다.

낡은 이불이 있던 자리에 후배가 사 보내준 천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새 종이 매트를 깔고 그 앞으로도 두 장을 더 깔아주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 모든 일을 소리 없이 처리했다. 제 거처에 똥오줌 범벅을 해 놓은 콩이에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고 야단도 치지 않았다. 콩이는 잘못이 없다.

커튼을 열었을 때 맨 앞에는 콩이 사료 급여 후 늘 뽀득뽀득 닦아놓던 밥그릇이 먹고 난 후 그대로 마른 물그릇과 나란히 있었다. 그걸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분명히 전날 밤에 일정을 어길 만큼 불규칙한 심리상태였다. 장시간 외출을 했고, 그러기 위해 콩이에게 통조림을 한 캔 주고 갔다.


개는 사는 곳에 용변을 보지 않는다. 풍수지리설에도 나와있다. 목줄이 묶여 있는 개를 수맥이 흐르는 곳에 두면 처음에는 빙글빙글 돌지만 나중에 체념하면 엎드린다고.

콩이는 짧은 목줄에 매여있다. 비좁은 현관에 갇혀 있지 않다면 제 이부자리에 용변을 볼 리 만무하다. 영역 표시가 분명해서 아무리 소변이 마려워도 내 변 냄새가 나는 욕실에서는 용변을 보지 않던 개다. 제 자리에 속수무책으로 용변을 본 다음부터 콩이는 얼마나 무기력했을까? 치매 노인을 모실 때 이런 기분일까? 무력하기 짝이 없는 노부모를 간병할 때 느끼는 심정.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을 떠날 수 없는 상황. 나만 바라보는 힘없는 노인. 부모자식으로 얽힌 끊을 수 없는 인연.


내가 어리고 젊었을 때 다 치렀던 그 일들을 친구들은 지금 겪고 있다. 늘 대기 상황. 그나마 자매형제가 여럿이면 돌아가면서 돌보고, 때론 아예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동거하는 경우도 있다. 내 부모가 아픈데 남의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나는 어릴 때 겪었던 상실감이나 슬픔과 똑같은 간병과 지금 너희들의 힘듦을 비교할 수 없다고, 그래도 너희 50년 넘게 부모님 팔구십 살까지 살아 계시지 않느냐고,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콩이의 실수 아닌 실수로 오늘 아침 여러 무거운 기억과 생각이 줄줄이 따라 올라온다.

무겁고 처지고 서글프다.    


콩이는 아무 말 없는 나를 살핀다. 상처에 소독약을 뿌려주는데도 가만히 있는다. 깨끗한 자리 위에서 사료를 혼자 고개 숙여 먹고는 조금 남긴다. 나는 그 남은 것을 손으로 집어 입에 대준다. 끝까지 다 먹는다. 다 먹고는 내 무릎에 제 얼굴을 댄다.

미안해서인지 뭘 표현하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콩이가 나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병든 부모를 버릴 수 없는 대부분 자식의 마음처럼 나도 똥오줌 범벅을 해 놓은 콩이를 한 톨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일 년 삼 개월 보고 스무날 함께 산 남의 개도 이런데 하물며 낳고 길러주신 부모임에랴.......


집안을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는다. 아주 오랜만에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뭔가로 나를 달래줘야 할 듯했다. 그래도 꼬리꼬리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모르던 날보다 알고 지낸 날이 더 오랜 내 특별하고 소중한 친구가 생일 전날 선물로 준 페라가모 향수를 이 방 저 방 뿌렸다. 한동안 떠났던 서울로 다시 돌아와 살 때 지금은 사라진, 함박 스테이크를 아주 잘하던 팔판동 레스토랑에서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 주면서 만나던 자리에서 받은 선물이었다.

배가 침몰하기 전이었고 내 삶도 적당히 일반적으로 괜찮은 궤도에 올라가 살던 때였다. 그 레스토랑은 위치도 이상했고 넓지도 않았지만 올 화이트였던 벽과 테이블 세팅이 좋았었다. 당시에는 그 장소에 어울릴만한 사람들을 만났었고 그들을 모두 그곳으로 데려가 식사했었다. 졸업식 때 짜장면을 먹는 대신 그곳에 가서 함박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었다. 그때 그곳에서 받은 강하고 인공적인 향이 지금은 필요하다. 콩이의 똥오줌 냄새로부터, 이 울적함으로부터 나를 억지로 향기롭게 만들려면.


지금의 내 삶은 그때와는 아주 동떨어져,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엉뚱한 마을에서 모르는 개와 함께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늘 풀어놓던 개는 나와 함께 산책하다 사고가 났고 그래서 지금 수술 후 회복 기간에 온종일 나만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그 개 한 마리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자리에 똥오줌 범벅을 만든 나.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그 기함할 만한 일로 그간의 내 노력과 정성이 허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면서 불과 몇 초만에 벌어진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때의 거절, 거부, 몸부림과 실언이 오늘을 있게 하지는 않았을까.

다 나 때문이다. 다 내 잘못이다. 다 나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다. 그 모든 걸 싸안고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내려놓자. 내려놓자. 다 내려놓자.

아무리 열심히 성심껏 살았어도 지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살 지 아무도 몰랐고 나조차도 모르지 않았는가.

다만 개털이 잔뜩 묻은 낡은 이불을 내가 깔고 잘 수 없듯이 나와 개는 다르고 내 사랑도 해 줄 수 있는 선까지 만이다. 콩이를 아무리 사랑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그냥 넘어가야 한다. 그 애도 그러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진공청소기가 있는 집은 모를 것이다. 물걸레질을 하면 알게 되는 바닥이 얼마나 더러운지. 이틀 전에 닦았는데도 걸레가 새까맣다. 어제 미세먼지가 많아 더 했을 것이다. 욕실에서 걸레를 비누칠해 빨고 나왔다. 그런데 콩이가 거실 안 발매트 위에 올라와 있다. 깜짝 놀라 공구함을 가져와 콩이 엉덩이를 밀고 문턱에 올려놓았다. 저 녀석이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점점 내 영역으로 침범해 오는 녀석을 허용할 수 없다. 발매트를 손빨래했다.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개털이 손에 가득 잡힌다. 다행이다. 알게 되어서. 이 집은 20일 만에 개털이 점령했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곳곳에 개털이 붙어 있을 것이다. 더욱더 깔끔을 떨어야겠다.


14:15 오전에 이틀 전 남은 찬밥 볶아 먹고는 출출해서 냉동실에서 초코파이를 꺼냈다. 그걸 보고 혓바닥으로 입맛을 다시는 콩이. 아기나 개나 과자 포장지 부스럭 소리는 어찌 그리 잘 알까? 그래서 콩이에게도 칫솔 간식을 주었다.


15시와 16시 사이였을까? 이 집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송나무와 함께. 기분을 끌어 올려보려고 애를 썼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다. 내가 그렇게 되지도 않게 絃을 치며 노래 부를 때는 콩이가 잠만 자더니 노래를 그치니까 일어났다.


18시가 넘어 콩이 배변 산책을 나갔다. 가로수 옆 자귀나무까지 갔다가는 "그만~." 하자 콩이가 알아들었는지 오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왔던 길을 다시 와서 집 앞을 지나 옆집 쪽으로 갔다가 배수구 망에서 돌아오는 길이 최근 코스다.

그런데 맞은편 산을 낀 길 전원주택 쪽에서 크고 시커먼 개가 나왔다. 콩이를 물었던 개라고 생각했다.  

우선 콩이를 안았다. 나와 개의 눈이 마주쳤다. 내 눈에서 무언가를 느꼈을까? 개는 내쪽으로 오지 않고 산길을 따라 슬슬 윗동네 쪽으로 갔다. 옆 면을 보니 빨간 목줄이 눈에 띄었다.


나는 콩이를 한쪽에 끼고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112. 신고해도 출동하는 사이 개는 사라질 게 뻔했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한 주 전 감자 캐느라 사람 많던 주말도 아닌, 지금 나는 혼자 아닌가.

신호가 가자 바로 받았다. 주소와 상황을 설명했다. 신고를 하고 휴대폰 때문에 비척비척 콩이를 불편하게 안고 2층으로 올라왔다. 콩이를 현관 안에 내려놓고 물과 사료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나갔다. 휴대폰에 전화와 문자가 서너 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2024.05.28. 13:58:54에 접수, 출동 (전에 온 문자 아래 이번 것이 왔다.)

2024.06.25. 18:35:30에 접수, 출동 ( 근 한 달 만이다.)


오후 6:36

[119 구조출동] 소방차량이 귀하께서 신고하신 장소로 출동하였습니다.


오후 6:39

지구대가 출동하여 18:54 현장도착 예정입니다.

긴급한 경우 010-0000-0000로 연락 바랍니다.


발열 증상이 있거나 현장에 자가격리자가 있는 경우 사전 고지 바랍니다.


***


18:55 119 구조대원들 세 명이 먼저 와서 개가 간 쪽을 알려주었다. 그중 한 명이 장총을 들고 있었다.

이 동네 들개 출현 신고가 몇 번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내가 가리켜준 쪽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 옆집 아저씨가 나왔다. 그 개가 하루 두 번씩 이쪽으로 다닌다고 했다. 빠르다고도.


잠시 후 경찰차가 왔다.  

경찰이 내리더니 얼마나 놀라셨냐고 먼저 물어준다. 고마웠다.

그런 개는 사람도 무니 조심하라고 한다.

나는 소방대원의 장총이 마음에 걸렸다.

"개를 죽이나요?"

그럴까 봐 걱정이 되었다.

경찰은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만 딱 부러지게 답하지 못했다.

"보호시설로 보내는 거 아닌가요?"

재차 물었다. 아마 그럴 거라고 했다.


정신 없는데 단수 안내원이 와서 안내문을 준다. 모레 밤부터 물이 나오지 않는단다.  


얼마 후 119 구조대원들이 돌아왔다. 역시나 개를 잡지 못했다. 아니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119 구조대원들은 시청에 문의해서 포획틀을 놓도록 하라고 했다. 개가 마취총에 맞아도 산으로 도망가 버리면 못 잡고, 잠들었다가 마취가 풀리면 다시 돌아다닌다고 했다. 게다가 목줄 있는 개는 마취총 쏘기도 어렵다고 한다. 만약 주인이 나타나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라고.

"마취총을 맞고 죽기도 하나요?"

그럴 때도 있다고 한다.

목줄 있던 개. 그 개 잘못이 아니다. 키우다 버린 인간이 잘못했다.  


경찰도 소방구조대원도 다음에 다시 신고하라고 했다.  

"죄송해서요."

자꾸 신고하는 게 좋을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지난주에 봤을 때도 안 하고 넘어갔다.


씨끌벅적하던 모두가 떠났다.

이 집은 울타리도 없고 대문도 없다. 그 개가 이 집 안까지 와도 막아줄 아무것도 없다.

만약 콩이가 다 나아서 다시 1층 앞 개집에 살 때 그 개가 나타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2층에 올라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콩이는 밥그릇에 부어준 사료를 안 먹다가 내가 손으로 주니 다 먹었다. 내 손바닥 핥는 재미에 먹나 보다. 다 먹고도 계속 핥는다. 다 마른 낡은 이불을 걷어와 다시 깔아주었다.

19시.


이 동네는 다들 대문 없이 산다. 공용문에도 비밀번호가 있던 서울에 살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주거 형태다. 집주인은 주차랑 부재 시 콩이 밥을 이웃에게 맡기느라 대문은 생각지도 못하실 것이다.

그 개 또는 함께 다니던 개까지도 잡히지 않는다면 콩이 완쾌 후에도 걱정이다. 그 전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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