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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차, 평택역~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

20250223 일 평택역~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 17km

by 일곱째별 Mar 18. 2025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향하는

가자, 국회로! 희망 뚜벅이 2부     


17일 차 :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평택역~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 17km     


두 주 만에 희망 뚜벅이를 하러 09:37 평택역에 내렸다. 만반의 준비 차 역내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뒤에서 반갑게 인사하며 어깨를 안았다. 김진숙 동지였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다리 어떠세요?”

“묻지 마세요.”     


화장실 입구로 휑하니 들어가는 모습 뒤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시나 기다렸어요.”      


‘기다렸어요’가 ‘궁금했어요’ 였는지, ‘했어요’ 였는지, 어쨌든 내 마음에는 ‘기다렸어요’로 들렸다. 나 역시 두 주 동안 기다리던 희망 뚜벅이였다.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과 최현환 지회장


이날은 평택역에서 한국니토옵티칼 평택 공장까지 가는 날이라 자그마치 160여 명이 모였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엄마도 이한빛 PD 부모님도 오셨다. 새까맣게 그을린 김진숙·박문진 두 분 표정이 더 밝아보였다. 출발했다. 김진숙 옆에는 말벌 동지들이 나란히 걸었다.      




그새 선두에 선 이들 몇몇이 양 끝 뾰족한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 작품이라고 했다. 그날도 그이가 왔다. 장영식 사진작가와 신유아 활동가 둘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나타나 사진을 찍었다.      


“까마귀인 줄 알았어.”     


누군가 하는 말에 저만치 마른 논을 바라보니 멀리 신유아가 보였다.



그이는 자신의 차량을 타고 앞질러 가서 촬영 지점을 정하고 뚜벅이들을 연신 촬영했다. 다양한 각도로 맹렬히 사진을 찍던 그이는 가로등 받침대 위에서 기다렸다가 동덕여대 동지들이 구호 적힌 띠를 들어 보이자 찰칵! 그리고 내려오면서,      


“아~ 다 찍어주고 싶은데……”     


그 애정 어린 말에 그이가 왜 그렇게 동분서주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이는 각종 SNS로 사진에 거부감이 없는 세대인 말벌 동지 등 희망 뚜벅이들을 전부 주인공처럼 찍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출발 전에 사진 촬영을 원치 않는 사람을 확인해 스티커를 붙인 뚜벅이만 제외하고.      




뾰족 털모자 외 두 주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금속노조 충남세종지역본부에서 제공한 간식 차량이었다. 겨울바람 맞으며 걷는 희망 뚜벅이에서 제일 필요한 건 따뜻한 물이었다. 그런데 그 트럭엔 온수와 귤과 초코바 등 간식이 있었다. 세종지역본부 측에서 뚜벅이들이 나흘에 귤 스무 상자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귤을 더 사달라고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민주노총 김진희 경기도 본부장과 기륭전자 출신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투쟁 유흥희 집행위원장이 기꺼이 신용카드를 내주었다.      


귤 사드릴게요

  

한편 초반에 뛰어다니던 나는 두 주 만에 걸으니 다리가 적응을 못 해 천근만근이었고 점점 뒤처지다 점심시간 즈음엔 아예 대열 끝자락에서 간신히 발을 떼고 있었다. 그때 신유아 활동가의 차가 코너를 돌더니 내 옆에 섰다. 장영식 사진작가도 타고 있었다.     

“타요.”

“괜찮아요.”

“타요.”      

두 동지가 모두 권했다. 챙겨줌이 고마웠다. 동시에 섬광처럼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진과 뚜벅이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사진은 나 말고도 찍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더 잘 찍는다. 내게는 걷기가 우선이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김진숙·박문진 두 분이 걷고 있는데 나도 똑같이 걷고 싶었다.      


희망 뚜벅이는 이 날 최초로 평택로컬푸드 종합센터 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꿀잠에서 카레라이스를 준비했다. 선두와 후미가 10분 정도 차이가 났다더니, 식당은 이미 만석이었는데도 대기 줄이 길었다. 종이컵에 받은 백미 밥에 비해 카레가 적었다.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김진숙 동지가 다 드셨다고 박문진 동지 맞은 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잠시 후 카레가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진행하던 사람들은 컵라면으로 식사를 했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김소연 운영위원장도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어머, 어떡해요. 라면으로 식사를 하시고.”

“라면이 해장엔 최고예요.”     

호탕한 웃음으로 답하는 그이는 2008년 기륭전자 투쟁 때 94일을 단식했었다. 이후 자나 깨나 건강을 챙겨야 할 사람이었다.      



밥을 다 먹고 박문진 동지에게 후지산이 그려진 과자를 드렸다. (일본 방사능 오염 지도 상 그 회사 지역은 아직 표시가 없다.)     


“동지들과 같이 먹을게요.”     


예상했다. 그런데 어쩐지 민망해서 얼굴이 굳어졌다. 한 학기에 15주 강의시수만큼 받는 급여에서 월세 빼고 일 년 동안 알뜰살뜰 모아서 후지산 근처에 사는 25년 지기 일본인 친구를 처음으로 만나러 간 길이었다. 일부러 니토덴코 본사가 있는 오사카를 경유하는 두세 시간 동안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조이야기 전단이라도 돌리겠다고 일본어판을 챙겨갔다.      


때마침 오사카에는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식당과 가게에서 계산할 때 전단지를 주고는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나눠주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나중에는 성금함에 가진 잔돈을 몽땅 털어 넣으면서 전단을 전했다. 일종의 교환이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2024년 9월 13일 오사카유니온네트워크에 가입하고 본사인 일본 니토덴코에 단체교섭요구서를 전달했으나 본사는 답변을 거부했다. 그래서 2025년 1월 31일 오사카노동위원회에서 사측과 1차 대면 조사를 실시했다. 사측에선 법무법인 대리인이 출석했다. 3월 18일이 2차 대면조사다.

이에 1월 20일부터 3월 28일까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와 민주노총 경북본부 투쟁사업장 담당국장 중심으로 오사카 본사와 이바라키시에 위치한 니토덴코 연구소 앞과 공급망 최상위층에 있는 애플 매장 앞(신사이바시)과 니토덴코가 후원하는 감바오사카 축구단 경기장 앞에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공급망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원정투쟁 중이었다.      


관광은 필요 없다고, 당신의 집과 정원과 후지산만 보면 된다는 내 말에 친구는 후지산이 보이는 식당과 차 박물관에 데려갔다. 그리고 기념품 가게로 안내했다.      

“제가 돈을 낼 테니 기념품을 사세요.”     


관광도 아닌데 기념품이라니? 생각도 안 해봤다. 갑자기 선물할 사람이 누가 있나 머릿속을 헤집어보니 딱 두 사람이 떠올랐다. 박문진과 김진숙. 그때 알았다. 나는 지극히 현재를 사는 사람임을. 희망 뚜벅이 하다가 갔으니 동지애만 가득함을. 일본에 가서도 오늘은 어떻게 걷고 있을까, 다리는 아프지 않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음을. 곧이어 차해도와 장영식 이름이 연달아 맴돌았다. 그러나 남의 돈으로 염치없이 네 개나 집어들 순 없었다. 그래서 말차로 유명한 회사 제품이라는, 나는 먹어보지도 못한 과자를 두 상자 고이 가져와 건네면서도 네 개를 드리지 못함이, 왠지 두 사람만 우대하는 듯 보일까 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었다.      


지난 늦가을 희망 뚜벅이 후 안부 문자 중에 내가 전체 일정을 다 함께 걷지 못함과 험난한 세월을 살아내 오신 선배들 삶에 대한 막연한 미안함을 비친 듯하다. 하도 뭔가를 바로바로 지우고 비워서 답문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박문진의 답은 가슴에 묵직하게 남았다.      


‘우리는 알려지기라도 했지, 이름도 없이 투쟁하신 많은 분들이 계세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성품. 그게 몸에 배어 나눔과 베풂이 자연스러운 보인 박문진. 그러니 필리핀에서 중증장애아동을 돌보고 성치 않은 발목과 무릎으로 고공 농성자 둘을 내려오게 하기 위해 부산부터 서울까지 500km 이상을 걷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두 사람만을 위한 무언가를 중단했다. 마스크팩도 10개들이를. 홍삼 스틱도 다섯 개를. 그렇게 보인의 품이 나를 넓혔다.


식후 힘찬 뚜벅이


식사 후 걷다가 지난가을 1차 희망 뚜벅이 때 함께했던 이들을 만났다. 강원도 태백에서 온 교사와 지혜복 교사의 동지였다. 나는 선생님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이의 흥 넘치는 노래가 시작되었다. 노래에 맞춰 바람이 불고 바람 따라 깃발이 흘렀다.


어디선가 철새 한 무리가 대열 위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토건자본과 정치권이 신공항을 짓겠다고 발악하는 수라갯벌이 떠올랐다. 잘 있니? 갯벌아, 새들아


노래 따라 바람 따라


얼마를 가다 유흥희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장의 운동화 끈이 풀렸다. 롱패딩으로 숙이기가 쉽지 않던 차에 옆에 가던 누군가가 끈을 묶어 주었다. 유흥희 역시 기륭전자 투쟁 때 67일 단식자. 신발 끈이 아니라 튼튼한 밥줄이라도 묶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연대란 함께 멈춰주는 것, 동지란 풀린 끈을 묶어주는 사람. 그렇게 인권네트워크 바람의 명숙도 연주하는 멜로디언 동지 옆에 잠시 함께 앉아주었다.      




그렇게 밀어주고 끌어주며 희망 뚜벅이들은 함께 평택 한국니토옵티칼 공장 앞에 도착했다.      


평택 공장으로

  

15시 35분,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일곱 명이 열린 문을 지나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구미에서처럼 일할 수 있을 듯한, 일하고 싶은 평택 공장. 그 앞에서 희망 뚜벅이 집중 문화제를 시작했다.

먼저 민중의례를 하고 박문진 동지가 발언했다.      


“동지들 반갑습니다.

구미 옵티칼에서 희망 뚜벅이 첫 출발하는 날은 야속하게도 우주최강 한파와 눈바람이 오늘같이 휘몰아쳤습니다. 눈조차 뜨기 힘들었고 몸도 자주 휘청거렸습니다. 희망 뚜벅이들을 시험하는 것 같았고 우리들의 혹독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을 독하게 다잡는 첫날이었습니다. 그 돌풍에 나부끼는 말벌들의 기발한 깃발들도 위태로웠습니다. 이 미친 바람에 곧 접겠지라고 바라보며 걸었지만, 그 깃발은 오히려 끝까지 뚜벅이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많이 관료화되어 있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면 웬만한 조직은 모두 깃발을 접었을 것입니다. 윤석열 계엄 이후 광장과 남태령, 한강진에서 노동자 투쟁 현장까지 2030 여성 청년들의 함성은 꺾이지 않았고 늘 중심에서 깃발이 되었습니다.     

계산하지 않는 연대, 몸을 사라지 않는 연대, 면접을 앞두고도 투쟁 사업자에 정장을 들고 다니며 자신의 안위를 버리는 연대, 세종호텔, 희망 뚜벅이, 거통고(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를 오가며 아르바이트비 받은 돈으로 교통비와 숙박비, 심지어 뚜벅이들의 간식까지 챙겨 와 선배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헌신적인 연대, 말벌들의 연대 투쟁은 우리에게 멋진 죽비가 되기도 하고, 조직의 지침 없이도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연대의 길을 열 수 있다는 용기를 혼자서도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영혼 없이 의무 방어적으로 정형화된 우리들의 투쟁,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업을 하고자 힘썼던 기획들이 이젠 점점 파업하는 노조가 이상하고 귀찮아지고 적당히 타협하는 방식의 전술들. 우리 이러다 다 죽습니다. 일본 노조처럼 될까 봐 굉장히 두렵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말벌들의 투쟁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았고 그것은 관료화된 기존 활동가들의 심장을 불리는 북소리로 점점 커지고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동지들, 열린 강장에서 세대 간의 소통과 연대로, 파업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조건 없는 연대 투쟁, 연대 투쟁이라는 열정적인 귀한 이름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그래서 700일이 넘는 투쟁을 하고 있는 옵티칼 동지들과 고공에서 1년이 넘도록 투쟁하는 우리 박정혜, 소현숙 동지가 이 평택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꼭 복직시킵시다.

위험하게 고공에서 투쟁하고 있는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와 간부들을 꼭 복직시킵시다.

지혜복 동지, 거통고 동지들 그리고 장기투쟁 사업장들에서 사업장들이 꼭 승리하도록 합시다.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을 파괴시켜 일상의 생활조차도 숨통을 조여 오는 사회, 가진 자들만 더 배 불리는 사회를 이제는 우리가 파괴시켜 노동이, 노동자가 존경받는 차별 없는 사회를 바꿉시다.      

여기까지 걷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길을 나서니 많은 길동무가 생기는 것처럼 투쟁을 시작하면 연대 동지들이 생깁니다. 총파업을 하겠다,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을 항상 민주노총 간부들은 합니다만 굉장히 공허합니다.      

진돗개는 짖지 않고 사람을 문다고 합니다. 우리 민주노총도 입이 먼저가 아니고 현장으로 돌아가서 내 문제가 아닌 타 노조의 투쟁, 사회 정치적인 투쟁을 조직해서 확실하게 자본과 정치인들을 단박에 물어 우리 것을 되찾아 봅시다. 동지를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투쟁 속에 동지 있고 동지 속에 승리 있다”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잠시 후 세종호텔 노조 사무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세종대학교 재단 대양학원이 운영하는 세종호텔은 2021년 코로나 19에 따른 경영위기를 이유로 구조조정에 돌입해 전환배치·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조 조합원 12명은 해고됐다. 노조와 노동자들은 세종호텔이 2023년부터 흑자로 전환돼 해고가 부당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이유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중노위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정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2025년 2월 13일 새벽 5시,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장이 호텔 앞 지하차도 입구 교통시설 구조물에 올라 농성에 돌입했다. 이날이 열하루째였다.      


세종호텔 노조 사무장은 사람이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지하차도 구조물에 지부장이 있고, 영하 9도에 아래에는 말벌 동지들이 천막과 비닐로 엄호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도 왔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만났지만, 결코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복직 투쟁은 노동자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희망 뚜벅이 160명이 출발했는데 문화제 참석 인원은 200여 명이 되었다. 거기에는 박준과 최도은과 임정득 민중가요 가수가 와있었다. 투쟁 현장마다에서 만나는 박준의 기타와 노래에서 지난 유성기업, 파인텍, 콜택지회 투쟁이 떠올랐다. 세종보 가동중단을 위한 천막 농성 투쟁에서 만났던 최도은은 2022년 옵티칼 노조에 최현환이 지회장 될 때부터 왔었다며, 지회장과 배현석 조합원의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신곡 ‘고용승계 책임져라’와 대표곡 불나비를 불렀다.      



박준
최도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조합원들이 앞으로 나왔다.

최현환 지회장은 “그 언제보다 오늘이 정말 행복합니다. 바로 동지들과 함께 저희가 고용 승계를 위해서 들어갈 이 공장까지 함께 구미에서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박정혜 서현숙 동지가 함께 동지들과 다시 이 자리에서 승리 보고 대회를 할 그날이 상상이 됩니다. (하략)”     


이지영 사무장은 “현장으로는 저희 일곱 명이 들어가겠지만 우리 동지들과 다 같이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고용 승계해서 현장으로 사원증 걸고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배현석 조합원은 “함께해 주시는 소중한 걸음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곧 고용 승계돼서 여기 옆에 보이는 공장에서 동지들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날이 올 거라고 믿고 그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이희은 조합원은 “오늘 아침에 평택역에서 같이 출발을 했는데 제가 자꾸 뒤에 처지더라고요. 그렇지만 힘을 잃지 않고 연대동지들과 저희 동지들이 함께 걸어가서 힘이 넘쳤습니다. 같이 이 자리에 같이 오게 돼서 너무 좋고요. 열심히 투쟁하고 끝까지 고용 승계되는 날까지 할 테니까 그 길에 같이 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정나영 조합원은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고용 승계 쟁취해서 꼭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고공의 소현숙 조합원은 “희망 뚜벅이는 멈추지 않고 국회로 가서 니토덴코의 만행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는 쓰다가 버리는 부품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알게 하겠습니다.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고용 승계를 쟁취하겠습니다.”     


역시 고공의 박정혜 수석 부지회장은 “저희는 일본 기업 니코덴코에 맞서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413일째 고공 농성 중에 있습니다. (중략)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수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한 투쟁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확신과 더 열심히 싸워주고 동기 부여를 주시는 많은 동지분들과 말벌 동지들, 옵티칼 투쟁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조합원


문화제는 마무리되었다. 노래도 하지 않는데 응원하러 온 가수 임정득은 새로 나온 음반과 악보집을 선물해 주고, 내 빠듯한 기차 시간에 맞춰 평택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


다음날은 월요일로 희망 뚜벅이 하루 쉬는 날이었다.

임정득 3집 <가능의 미래> CD를 종일 들었다. 악보 반 사진 반인 임정득 악보집은 노순택 작가의 사진집이기도 했다. 사진으로 하는 연대였다.


임정득 3집에는 조영관 시인의 시가 가사인 노래들이 있었다. 2017년 2월 제7회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수혜식에 임정득이 초대가수로 왔었다. 이후 임정득은 유성기업 투쟁부터 화성 아리셀 참사 희망버스까지 현장에서 종종 만나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그이를 볼 때마다 나는 초심을 상기했다.

마지막 곡인 10번 ‘산산이 부서져라’는 조영관의 시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를 노래로 만든 곡이었다. 앨범의 그 가사 옆에 조약돌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맑고 고운 사람을 보면 저는 노래하고 싶어져요.

언니는 늘 고맙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제게도 정득이 그래요.’


임정득 3집 가능의 미래


이날 뚜벅이는 쉬었어도 꿈에 김진숙 동지가 나왔으니 나는 하루도 희망 뚜벅이와 함께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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