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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차, 구미에서 김천까지

20250208 토요일 구미역~샛별 LPG 충전소 14km

by 일곱째별 Mar 17. 2025


한국옵티칼 고용 승계로 향하는 

가자국회로희망 뚜벅이 1


2일 차 : 2025년 2월 8일 토요일 구미역~샛별 LPG 충전소 14km     


새벽에 일어나 대전역에서 구미행 기차를 탔다. 이날은 성심당 튀소 더블 세트 두 개, 도합 네 상자를 양손 가득 들고 갔다. 두 상자는 옵티칼 고공과 지상의 조합원들에게, 두 상자는 희망 뚜벅이들에게. 


오전 10시, 햇볕이 드리웠지만 여전히 영하 10도 안팎인 구미역에서부터 털모자에 털목도리로 중무장한 40여 명이 걸었다. 박문진은 파카를 두 개나 껴입고 패딩 바지를, 김진숙은 파카에 한진중공업 작업복 바지를, 둘 다 권투 글러브만 한 장갑을 낀 채. 

한참을 걷다가 박문진이 내게 전했다. 김진숙이 매번 성심당 빵을 들고 오는 나를 걱정한다고. 겉으로는 대전역을 지나치는 적이 항상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3년 전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칩거하던 담양으로 박문진 당신이 보내준 풍성한 간식 상자를 기억한다고. 나는 은혜를 되로 받으면 말로 갚는다고 되뇌었다.      


   


구미 시내를 빠져나와 논을 지났다. 1차 희망 뚜벅이 때는 선두를 지키던 차해도 동지가 맨 뒤에서 걷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옵티칼과 각 지역 단체에서 인도하도록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배현석 옵티칼 조합원이 항상 선두에서 걷고 있었다. 차도와 인도를 번갈아 걷다 보면 신호에 막힐 때가 있다. 한번은 차도 사람도 없는 갓길 1차선 도로 신호등 빨간 불에서 선두가 멈춰 선 적이 있다. 순간 몽골 이주 청년 故 강태완이 떠올랐다. 


다섯 살 때 엄마 따라 몽골에서 한국으로 와서 26년간 국적을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추방당할까 봐 신호등 빨간불에 건넌 적도 한번 없었다는 태완과 그 엄마. 그렇게 착하게 살다가 인구감소지역에서 5년 근무하면 한국 국적을 준다고 해서 김제에 취업했는데 8개월 만에 특수장비차량에 끼어 산재로 사망한 청년. 

배현석은 이주노동자도 불법체류자도 아닌데 그리도 준법정신 강한 시민이었다. 그렇게 바르게 살려고 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실껏 써먹고 해고하는 일본 회사 니토덴코.


좌측 배현석


김진숙과 박문진 지도위원

 

11시 10분, 김천시에 진입하자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다. 간식으로 바나나가 등장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와 허기진 뚜벅이들에게 필요한 공급이었다.      


11시 50분,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모두 공원 의자에 앉거나 서서 준비해 온 빵과 김밥을 먹는데 김진숙만 보온병의 호박죽을 드셨다. 어찌 공수했나 궁금했는데 박문진이 준비해 오셨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발지까지 오기도 바쁜 통에 친구가 좋아하는 죽까지 데워 오다니 대단한 우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11월 희망 뚜벅이 때 녹색당 나무가 ‘김 지도 드린다’고 호박죽을 바리바리 챙겨 온 게 떠올랐다.      


성심당 부추빵을 먹으며 함께 서서 식사하던 이들 중 이십 대 뚜벅이도 대전에서만 파는 성심당 빵을 사 왔음을 알았다. 직행 기차가 없어 대전역에서 갈아타고 왔다는 그이는 남태령 대첩 당시 참가자였다. 지난해 12월 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0시간 이상 대치했을 때, 농민이 경찰에게 폭행당하는 걸 영상으로 본 청년 여성층이 자발적으로 집결해 함께 밤을 새워 마침내 서울 입성을 이루어냈던 역사적 사건. 그 남태령 대첩의 용사였다.      

의사 한 분이 다가오셨다. 김동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진료사업국장이었다. 박문진 동지가 양말을 내렸는데 발등 위 발목 부분이 부어 있었다. 속에 신은 짧은 발가락 양말목이 운동화 압박과 맞닿는 지점이었다. 의사가 현장에서 해 줄 수 있는 의술은 파스를 붙여주는 것뿐이었지만, 대신 뱅쇼라는 내복 음료를 준비해 왔다. 덕분에 박문진 동지가 뱅쇼를 좋아함을 알게 되었다. 부은 발목에 파스를 붙이고도 박문진의 화창한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식사 후 걸으면서 최현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스물일곱 살이던 2005년에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입사했다. 화재 발생할 때까지 17년째 근무 중이었다. 사고 전까지는 평탄하게 잘 다녔다. 현장직이었는데 조장으로 조원 관리하고, 반장으로 판 공정 사원 관리를 했다. 2022년에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장이 되었다.      


  “회사는 불탄 공장을 철거하려고 해요. 우리가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으니까. 그러다 작년 1월 8일에 소현숙 조합원이 지회로 나오는데 인부들이 많이 있어서 물어보니까 철거하려고 왔다고 해서 급하게 박정혜·소현숙 동지가 고공에 올라가게 되었어요. (일터에서) 정혜는 조장, 현숙이는 조원이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고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회사는 계속 구미시청을 압박하고 있어요. 1월 8일 저녁에 시청에서는 공장해체계획 승인을 해 줍니다. 사측 변호사들은 그 근거를 가지고 재판부에 다시 공장철거방해금지 가처분 결정 요청을 합니다. 

1월 10일에 부지 내 공장철거를 방해하지 마라, 조합사무실을 인도해라, 이 모든 행위를 위반했을 때는 노조 200만 원, 지회 200만 원, 조합원 각각 50만 원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결정문이 왔어요. 

회사는 1월 17일부터 계속 쳐들어와서 노조 사무실 비워달라, 공장 비워달라면서 31일까지 채증을 해 가죠. 그리고는 재판부에 단체이행강제금 집행 신청을 해서 조합원에게 추심 명령이 떨어져서 통장에 압류가 들어오고,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강제경매 개시가 들어왔어요. 강제경매를 중단시키기 위해 현금 공탁을 걸어 중지된 상태예요.”     


“공탁금은 얼마였어요?”     


“1인당 550만 원씩, 총 5500만 원 공탁금은 금속노조 조합원 1인당 2,000원과 민주노총 조합원들 1인당 1,000원 모금으로 충당됐어요. 이렇게 1차 위기를 겪고 잠잠하다 싶었는데 2차로 집행 이행신청을 또 해요. 2월 1일부터 3월 18일까지 채증한 걸로 2차 간접강제이행금 집행신청했는데 재판부에서 불허가해 줍니다. 그러자 회사는 1차 결과로 고공 동지 대상 3차 공장철거방해금지 간접강제이행금 집행신청을 해요. 법원에서도 (고공 동지들이) 공장 안에 있기 때문에 내용이 적합해서 신청이 받아들여졌어요. 그런데 사회적 여론이 심각해서 회사에서도 추심 명령까지 안 하고 있는 거지요.”     


그는 희망 뚜벅이로 걷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고 했다. 


“2022년에 노동조합 활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노동조합 잘 몰랐어요. 회사가 2003년 11월에 구미산단에 입주했어요. (토지 50년간 무상 임대, 각종 원자재 수입 관세, 법인세 감면 등 혜택을 받고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1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중견기업이라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니토덴코는 글로벌기업으로 전 세계에 88개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데(4개 계열사, 32,800명 직원 고용), 한국에는 처음에 평택 공장 한국니토옵티칼(주 고객 삼성, LG디스플레이), 판매법인으로 서울 한국니토덴코 자회사,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주 고객 LG디스플레이)가 있습니다. (LCD용 편광필름 공급망 최상위에는 애플이 있는데, 니토덴코는 원재료를 각 자회사에 판매하여 추가 이익을 남기고 있었어요.)


2016년 11월 25일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어요. 당시 2017년 인수합병 준비 중이었어요. 그래서 평택 공장 직원이 구미에 내려와서 같이 근무했었어요. 그런데 평택과 저희(구미) 월급 체계가 달랐어요. 우리는 1년에 10원이 오르는 임금 호봉체계였어요. 그래서 노조가 생겼는데, 니토덴코는 노조가 생기자 인수합병 계획을 무산시키고 적응 기간으로 왔던 직원들을 영향받을까 봐 모두 평택으로 복귀시켰어요. 그러면서 인수합병도 무산되었어요.      


그 시기에 2018년부터 한국옵티칼에 있는 물량을 중국으로 빼돌리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회사가 어렵다고 해요. 적자라면서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이라는 고통 분담을 강요해요.


2019년 구조조정(1차에서 563명 중 316명, 2차에서 236명 중 149명 각 희망퇴직)을 하면서 (2021년) 조합원 수가 500여 명에서 56명으로 1/10로 확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후공정에서는 핵심적인 사업을 했어요. 56명이 일하면서도 2021년에는 3700억 원이라는 매출액, 순이익 260억 원을 올렸어요. 그런데도 회사는 항상 노사관계 악화되면 폐업하겠다고 했어요. 


2021년, 2022년에는 니토가 후공정 생산 라인을 중국에 배치했는데 코로나 19로 중국 공장이 봉쇄되니까 4월부터 구미(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신규 채용을 했어요. 경력직이 4~50명, 신규 채용이 50명. 그래서 조합원이 150명 정도 되면서 안정적 정상적인 구도로 갔어요. 그러다 (10월 4일) 화재가 발생한 거죠.”     


“화재 원인은요?”     


“마킹기에서 스파크가 발생돼서 화재가 확산됐어요. 그러니까 니토는 이참에 다 정리하려고 하는 거죠. 

2022년 11~12월, 청산 결정 후 1차 구조조정, 2차 구조조정, 세 번째까지. (210명 중 193명 희망퇴직, 희망퇴직을 거부한 17명 집단 해고, 현재 7명 고용 승계 투쟁) 니토는 인권 경영한다고 하는데 희망위로금으로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9년 차까지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기본급(약 150만 원)의 17개월. 10년 차는 18개월 치였어요. 

회사에 평택으로 고용 승계해 달라고 하니까 단칼에 잘라버렸어요. 저는 이 고용 승계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실질적으로 저희 공장에서 일하던 비조합원들을 중국, 서울, 일본에 전환 배치했었어요. 2016년에도 평택에서 구미로 전환 배치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유는 노조 혐오뿐이었어요.”


이것이 더욱 확실시되는 것은 니토덴코가 화재 이후 보험금 1,300억 원도 챙겼으면서 공장은 폐쇄하고 평택에서라도 일하겠다는 직원 해고 이후 평택 공장에 30명을 신규 채용했기 때문이다. 구미 물량을 가져가 평택 인력이 부족한데 경력직인 구미 공장 직원 고용 승계는 거부한 것이다. 

니토덴코는 지속해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불법을 선동하는 집단으로 공격, 중국으로의 물량 배정·폐업 위협 등을 통해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 시도, 고용 승계 투쟁 이후 손해배상, 가압류 등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을 했다.      


나는 그동안 구미에서 평택으로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구미와 평택 간 거리 문제였다. 고용 승계가 되면 살던 터전을 옮겨야 하니까. 그런데 그 질문을 하기도 전에 지회장이 먼저 말을 했다.      


“그동안 조합원들은 구조조정도 임금 삭감도 했어요. 실제로 (처음에) 회사에서 고용 승계를 받아들였어도 평택까지 이사 갔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고용 승계되면 전원 갈 거예요.”      


2025년 2월 8일 기준, 2022년 10월 4일 화재 발생 859일. 

2023년 2월 1일 해고된 지 738일. 

남은 사람은 7명. 그들은 타협 대신 존엄을 선택했다.      


<노동과 세계> 20224년 2월 7일 자에 따르면, 외투기업(외국인 투자기업)의 먹튀란 ‘한국 정부로부터 각종 조세 감면과 특례 등의 세제 혜택은 물론 국·공유 토지 제공과 입지 지원을 포함한 인프라 지원, 임대료 감면 등 현금성 지원을 받은 외투기업이 기업으로서의 의무를 져야 할 때는 한국의 법체계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책임과 규제를 빠져나가는 행위'를 일컫는다. 일방적인 해고와 (위장) 폐업과 청산, 노조 탄압, 기술 탈취와 부동산 투기 등의 피해는 국내 노동자와 지역사회에게 돌아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금속노조 소속 한국산연지회, 한국게이츠지회, 한국지엠지부, 쌍용자동차지부, 한국와이퍼분회, 사무금융노조 A캐피털지부 등이 그 예다. 그리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도 본사인 니토덴코는 일방적인 청산 통보를 강행했고 먹튀 시도가 진행 중이다. 이에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노동자들이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느 먹튀 기업과는 다르게 니토는 아직 평택 공장이 있고 신규 사원 채용도 했다.      

지난해 12월 ‘외투기업 규제를 위한 패키지법안’이 발의됐다. 패키지법안은 근로기준법·상법·채무자회생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을 통해 정리해고 과정에서 과반수 노조 동의를 요건으로 하도록 하고, ‘먹튀 자본’을 방지하기 위해 폐업 등에 노조 동의를 포함 노동자의 참여권·동의권을 제도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김천 동·남촌을 지날 때였다. 


“다섯 시에 퇴근해서 다섯 시 반에 전화를 받았어요. 바로 이 근처였어요. 돌아가니까 이미 화재 진압이 불가한 상황이었어요. 인명 피해는 없었어요. 그날 부사장이 일본에 실적 발표를 하고 돌아와서 2023년 모델을 위한 신규 설비도 투자하고 신규 채용까지 다 하기로 해서 잘해 보자고 했는데…….”     


칼바람 맞으며 한 시간여 열심히 설명하던 최현환 지회장의 붉게 언 얼굴이 순간 착잡해 보였다. 2005년에 입사해서 2016년에 노조가 생기고 2022년 금속노조 12기 임원 선거에 들어가서 당선돼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가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다른 사업장에 연대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연대 오는 동지들이 이해가 안 됐어요. ‘이걸 받아도 돼? 대가 없이?’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잖아요. 그러다 저도 다른 사업장 가보면 연대 동지들이 또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아~ 다 이어져 있구나. 느껴졌어요.”     


연대란 공감에서 나오는 것. 다들 비슷비슷한 사연으로 투쟁하고 있고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은 조합원 일곱 명 중 다섯 명이 기혼인데 그중 세 명에게 초등학생 자녀가 있어요. 다섯 살이었던 제 딸이 올해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그사이 자라는 모습을 못 봤어요.”     


40대 젊은 지회장의 얼굴에 무거운 아버지의 무게가 서렸다. 2022년 10월 4일 갑작스러운 화재 발생 이후 희망퇴직 대신 고용 승계를 요구하다 4개월 만에 해고되고 2024년 1월 8일에 고공 투쟁이 시작되었다. 막막하고 외롭게 고군분투하다 320일째 되는 날이었다.     


“(작년 1차 희망 뚜벅이 때) 옵티칼 조합원들도 몰랐어요. 첫날 일본에 있었는데 페북을 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지도위원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고공 동지들을 위해 오시는 게 고맙고 미안했어요.”      


그렇게 천군만마처럼 시작된 희망 뚜벅이가 부산에서 구미 공장까지 열흘간 160km를 걷고, 2025년 2월 7일부터 다시 구미 공장에서 시작한 2차 뚜벅이 이틀 차가 어느덧 김천시 샛별 LPG 충전소에서 끝났다. 40여 명이 마무리를 했다.      


금속노조 차를 타고 다시 구미역으로 왔다. 멀리서 온 남태령 동지에게 잔치국수와 김밥을 사주고 대전역에서 함께 내렸다. 나는 20분 거리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그이는 두어 시간 후 상행선 기차를 타기 위해 소제동 카페로 갔다.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고 주말마다 기차를 갈아타며 먼 길 희망 뚜벅이에 연대하러 오는 2030 젊은 말벌 동지들에게 참 고마웠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레드와인 한 병과 레드향을 샀다. 그리고 와인에 레드향과 유기농 토막 계피와 올리브잎과 팔각과 정향과 마스코바도 설탕을 넣고 끓였다. 겨울밤 노곤한 피로가 새빨간 뱅쇼 향으로 사르르 풀렸다.     


2일 차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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