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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구미공장에서 다시 출발

2차 희망 뚜벅이 20250207 구미한국옵티칼하이테크~구미역 12km

by 일곱째별 Mar 17. 2025


한국옵티칼 고용 승계로 향하는 

가자국회로희망 뚜벅이 1          


1일 차 : 2025년 2월 7일 금요일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구미역 12km     


“언제든 걸으시면 함께 할게요.”     


지난해 12월 1일, 희망 뚜벅이 마지막 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에게 약속한 지 고작 두 달 일주일. 매우 이른 약속 수행이었다. 

11월 22일 부산 호포역에서부터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까지 열흘간 160km 걸은 뚜벅이들이 다시 걷는다고 했다. 이번에는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본사에서부터 서울 국회의사당 지나 광화문까지. 지난번의 두 배 넘는 23일, 중간에 휴일 이틀 제하면 21일 동안 350km였다. 그중 나는 9일 142km를 걸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다소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희망 뚜벅이 출발할 때마다 낭독했던 <평등약속>에 근거해서 호칭은 되도록 동지로 통일한다. 그중 다수 언급되는 분은 호칭을 생략하기로 한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긴장이 돼 오히려 숙면하지 못한다. 2025년 2월 7일 새벽 한 시 넘어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잠시 후 자지러지는 소리가 휴대전화기에서 울렸다. 기상청 지진 경보였다.      


02:35 충북 충주시 북서쪽 22km 지역 M4.2 지진/낙하물, 여진주의      


지진은 점점 해안도 아닌 내륙까지 파고들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가 걱정이다. 다시 잠들었지만 세 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났다. 여섯 시 반쯤 집을 나섰다. 

세상은 묵직한 침묵 속에 새하얗고 도타운 눈으로 덮여있었다. 자동차 유리창에 7~8cm 쌓인 눈을 긁어내고 시동을 걸었다. 스노타이어도 없는데 눈길을 헤치고 대전역까지 가야 했다. 눈 쌓인 국도 지나 고속도로를 타고 50여 분, 주차 후 도보 20분. 대전역 성심당에서 튀김 소보로와 부추빵 세트를 사서 8시 6분 무궁화호에 올랐다. 

저 멀리 산으로부터 눈발이 바람을 타고 하얗게 휘몰아쳤다. 잠시 후 기차가 스르르 멈췄다. 가뜩이나 느린 기차가 안전점검을 위해 정차했단다. 9시 30분에 픽업 차량에 탑승해야 하는데 예정대로 9시 25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조급해졌다.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고 차편을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친절한 차량 동승 설명이었다. 집행부의 세심한 수고가 느껴졌다.      


구미역에서 대구에서 온 참가자와 함께 포항에서 온 참가자의 렌터카에 탔다. 눈 구경하기 힘든 대구에도 눈이 왔다고 했다. 포항에서 대구까지 나오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단다. (나중에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운전자는 정보라 작가였다) 참가자 모두 여간 고생하면서 모이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각 10시에 기자회견은 시작되었다. 부랴부랴 도착해 보니 문정현 신부님의 반가운 모습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장 옥상에 박정혜, 소현숙 두 형상도 오롯했다. 하은(고태은) 활동가의 사회로 문정현 신부님의 여는 발언, 장창열 금속노조위원장 투쟁사, 양기환 백기완노나메기 전 기획위원장 연대사, 최현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장 희망 뚜벅이 발언, 고공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발언이 이어졌다.      


  “2022년 눈 내리는 겨울에 시작한 고용 승계 투쟁이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이 과정에서 항상 옆에서 함께 싸워준 분들이 있기에 고용 승계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희망 뚜벅이를 마칠 땐 지상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회견기자회견


고공의 두 사람에게 인사하는 김진숙 지도위원고공의 두 사람에게 인사하는 김진숙 지도위원

    

그래야지. 희망 뚜벅이를 마칠 때쯤이면 땅 위에서 만나야지. 그러려고 걷는 거지. 그렇게 고공에 두 사람을 남겨둔 채 희망 뚜벅이는 겨울 한복판으로 출발했다. 맨 앞에는 옵티칼 조합원과 금속노조원이 그 뒤에는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이(이하 동지 혹은 생략).      


눈 쌓인 도로 위를 걷기 시작하자 지난 뚜벅이 때 배추와 무를 선물하시고 구미까지 트럭을 태워주신 차용택 함양 농부, 손소희 성주군 소성리 주민 등 낯익은 분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낯익은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하 동지 혹은 생략)에게 물었다.      


  “희망 뚜벅이 첫날부터 눈이 오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낭만이 있네요. 대구는 눈 보기 어렵거든요.”     


내공이란 이런 건가. 박문진의 답변은 관세음보살 같았다. 햇살은 쨍하니 밝았지만, 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두꺼운 패딩에 둔탁해진 몸으로 얼어가는 눈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자면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선두에서 강호노예해방전선‘하오문’과 ‘영남대학교 민주학생연대’ 깃발을 들고 걷는 2030의 생기는 발랄했다. 하지만 낙동강 바람은 매운 겨울 맛 좀 보란 듯 온몸을 후려쳤다. 뒤집어쓰고 양 허리에 줄을 묶은 앞뒤‘한국옵티칼 고용승계 국회가 나서라!-박정혜·소현숙 이겨서 땅을 딛도록’ 몸자보는 산호대교 위에서 낙하산처럼 부풀어 펄럭이고 김진숙은 한겨울에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브런치 글 이미지 4


브런치 글 이미지 5


어느 순간 김진숙이 박문진의 부채와 장갑을 들고 있었다. 내가 대신 건네받아 기다렸다. 휴식시간이 없기에 중간에 화장실 한 번 가면 훌쩍 뒤처지고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2019년 12월, 영남대 의료원 고공에 있던 박문진을 내려오게 하기 위해 부채를 들고 부산에서부터 111km 걸어가 붙은 김진숙의 별명 부채요정을 떠올리며, 기다리는 동안 부채에 쓰인 문구를 읽어보았다.      


노동자민중들도 충분히 쉬고 웃고 춤추는 세상을 만들자


브런치 글 이미지 6


8.2km 걸어 양지공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쉬었다. 찰떡 100개와 생수가 나누어졌다. 점심시간이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서서 냉수에 떡을 먹다니 급체하지 않으면 다행인 지경이었다. 

그렇게 구미역까지 희망 뚜벅이 첫날 72명이 12km를 걸었다. 쉬고 웃고 춤추기엔 첫날부터 험난했지만, 이날 희망 뚜벅이 홍보팀에서 스티커와 용지를 제작해 나눠주어 연대에 신선한 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듯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박문진과 김진숙 지도위원박문진과 김진숙 지도위원


브런치 글 이미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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