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서를 내고 수능을 봤다.

왜 나는 교사가 되었는가?

by Kayla

깔끔하게 답이 떨어지는 수학이 좋았다. 단정하게 풀이과정을 써 내려가는 과정도 좋았다. 나는 공부를 하다가 힘들면 수학문제를 풀었다. 그런 나를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해를 못 했다.

그런 내가 문과를 선택했다.


고1 담임선생님이 말하기를 수학 점수가 높으니 나중에 교차지원을 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공부한 노력 대비 잘 나오는 과목이 과학, 수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진로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그리고 고2, 교차지원이 막혔다.

매번 정권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가는 교육정책이었지만 그 나이에 내가 그걸 알리는 만무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당한 진로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수능 공부는 시작도 안 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충분하다고 믿었다.)


당시 가족 중에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이 두 분이나 계셨고 나에게 학교는 그만큼 친숙하고 가까운 곳이었다. 사회에서 적절하게 인정받는 것 같고, 또 당시에는 교대가 인기였으니 초등교사라는 직업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수능 결과를 보니 교대를 갈 수가 없었다. 거의 만점에 가까웠던 과탐 점수를 버리지 못하고 나는 일반 공대에 원서를 썼다. 그나마도 몇 개 없는 교차지원이 가능한 학교를 찾아서 말이다.


대학생 라이프는 정말 달콤했다. 공대생으로 일 년을 잘 놀았고 다음 일 년을 방황했고 남자 동기들은 군대를, 여자 동기들은 어학연수를 떠나던 그 시기에 나는 자퇴서를 냈다.


-자퇴하고 어디 가려고?

-교대 가려고요.


학과장님은 안경을 살짝 내리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교수님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를 말리시고 싶으셨을까. 답답한 소리 한다고 속으로 한심하게 생각하셨을까. 모르겠다. 그냥 그때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수능을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뭐든 중상이면 된다 주의로 살아왔고 그 무엇도 최선을 다해 뭘 한 적이 없었다. 아니 힘들기 전까지만 노력했다는 것이 정학한 표현이겠다. 적당히 노력하면 웬만한 결과는 나왔다.


그렇게 교대도 들어갔다.


입학식날 교대 총장님이 말씀하셨다.

-학부모님들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이제 교대에 들어왔으니 다 된 겁니다. 졸업하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 잘 살 수 있습니다. (생략)


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었다. 교대에 입학한 첫 해 겨울 우리는 투쟁을 했고, 새해를 강의실에서 맞이했다. 그런 투쟁을 난 두 번이나 해야 했다. 뽑아야 할 교사수를 턱없이 줄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십이지신을 뽑는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교대 입학 수능컷 점수도 최고점을 찍을 무렵이었지만 임용고사 경쟁률도 최고를 찍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된 초등교사. 그 앞길은 꽃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순진한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리얼 교직 생활은 영화, 드라마, 뉴스와는 전혀 달랐다. 당시 공대 친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 연봉을 억을 찍는데 난 월급도 적으면서 왜 이리 하루하루가 피곤한 건지 힘듦의 연속이었다.


평생직장을 골라 왔지만 이제 와서 다른 길을 기웃거리는 처지라니.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교실라이프를 글로 기록해보려 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