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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함 Aug 11. 2023

10분의 마을

보건실에서 만나요(4)

보건실에 처치가 필요한 사람들이 밀려오면, 일정한 리듬을 타게 된다. 제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은 10분, 이 사이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많은 인원을 적절히 분류해 수업을 할 수 있는 학생은 수업을 하도록 하고, 수업을 할 수 없는 학생은 그 외에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렇게 급박한 조건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 땅에서 농경을 기반으로 사회를 구성한 민족의 내면에 새겨진 DNA가 표현되는데, 바로 노동요다.

 

"무슨~~ 일로~! 왔니?~!"

"손가락이 베였어요"

"에헤이~ 어쩌다가?"

"가방에서 책 꺼내다가 그랬어요."

"소독, 하고 밴드, 붙이면 될까~?"

"네 좋아요."


나름 함께 주거니 받거니 같이 불러주는 5, 6학년 학생들과 이런 일정하고 약간 일방적인 운율로 문진을 하면서 노동의 흥을 돋우는데, 가끔 삑사리가 난다.


"무슨~~ 일로~! 왔니?~!"

"그냥요."

"예?"

"친구랑 그냥 같이 왔어요."

"... 왜.......?"


한껏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리던 보건실 소리꾼은 예정에 없던 문답에 덜떨어진 아마추어 티를 숨기지 못하고 '그냥'이라는 답가그냥 나가떨어졌다.


그냥, 그냥같이 순간 사람의 생각을 희석시키는 단어가 또 있을까? 어쩐지 자음 첫 두 글자인 'ㄱ'과 'ㄴ'이 나란히 붙어 만들어진 단어라는 것조차 그냥 같다.


여하튼 이렇게 그냥의 질문에 그냥 말리면 그때부터 정률에 따라 움직이던 컨베이어 벨트가 뫼비우스의 띠가 되고 만다. 다음 순서가 없어진다는 거다. 상세하게 채록하여 기록을 남길 순 없지만, 보통 왜 자신이 친구와 보건실에 방문을 했는지 그 친구와 무슨 관계인지, 같이 언제 뭘 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친한지, 이전 수업 시간에는 무엇을 했는지 등등을 기깔나게 한 곡조 뽑아내면 옆에서 둥글게 학생들이 몰려와서 마치 추임새를 넣듯 나도 그랬는데, 나는 안 그랬는데 하며 거침없이 개인정보를 서로 공유한다. 그러면 보건교사는 빼앗긴 마이크를 돌려받을 타이밍을 놓친 채 보건실 천장에서 아득히 울려 퍼지는 수업 종소리를 듣게 되고야 만다.


처음에는 이런 악보도 없는 얼렁뚱땅 보건실이 짜증이 났다. 그냥 온 학생이 수업 듣기 싫어서 보건실 방문 사유 없이 그냥 와서는 떠들어대다가 수업 종 치고 교실로 수업시간 몇 분 까먹으며 돌아가는 것 같고, 그것 때문에 결국 처치받지 못하고 멀리서 눈치만 보다가 교실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 것도 짜증 났다. 게다가 노련미가 없는 내 모습은 한심했다.


그러저러하 학생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다. 그냥 왔다는 말에 대해  좀 더 의연하게, 그냥 보건실에 오는 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그렇구나~' '그럼 그냥 교실로 가 보실까~' 하고 대답해 봤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그냥 교실로 갔다. 일처리의 알고리즘에 '그냥'이라는 요소도 포함하니 다시 정률적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뭔가 무의미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 자신이 자동응답기인지, 보건교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을 때, 이번에는 학생이 아니라 내가 삑사리를 냈다.


"무슨~~ 일로~! 왔니?~!"

"친구가 아픈데 선생님이 같이 가도 된다고 해서 같이 왔어요"

"아~ 보호자~?"

"네?"

"아니야? 그럼 병문안?"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보건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우리 서로는 모두 다 이 대화가 재미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환자뿐만이 아니라 '보호자' 및 '병문안' 역시 보건실 방문의 합당한 사유가 된다는 소문이 5, 6학년 학생 사이에 퍼지기에는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방문객은 늘어났고 환자가 아닌 학생들은 보건교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자기는 보호자다, 병문안을 온 것이다 하며 앞다투어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그냥 왔을 때와 비교해서 행동이 그렇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도 보건교사의 입장으로서는 학생들이 보건실에 그냥 온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방문 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심신에 이로웠다. 


이유가 없는 것보다 이유가 있는 게 더 평화로운 보건교사에게 그런 일상이 연장되었다. 그러던 중 다시 학생이 삑사리를 내는 일이 생겼다.


보건실에는 안정실이 있다. 처치 후 바로 수업을 하러 갈 수 없는 학생들이 안정을 취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필요에 따라 잠시 쉬었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그날도 학생 한 명이 안정실 침대에 누워 쉬게 되었다. 학생을 침대에 히고 나오자 다른 학생이 쟤는 왜 침대에 눕냐고 물어봤다.


안정실에는 침대가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그냥'침대에 눕고 싶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학생도 그런 건가 싶어 뾰족해지려는 마음을 참았다. 그리고 저 친구가 아픈 건 개인정보라서 말해 줄 수가 없는데 물어보는 이유가 뭐냐고 되물었다.


"아, 친구 동생이라서요. 병문안 오라고 해야겠다."


내가 맛으로 먹고 재미로 뱉은 수박씨에 싹이 트는 걸 보면 이런 기분일까? 이런 건 삑사리가 아니라 버스킹이나 스캣 같은 거 아닐까?? 보건교사는 그만 또다시 아마추어의 티를 퍽퍽 내면서 감동을 숨기지 못했다. 선생님이 환자한테 병문안 받냐고 물어보고 올게!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자주 생겼다. 학교 내에서 학생 사이에 학연지연혈연으로 연결된 인맥고리가 파발마나 봉화처럼 보건실에 방문하거나 안정을 취하고 있는 환자의 소식을 각 학급에 어딘가에 있는 보호자와 병문안객들에게 전달되곤 했다. 가끔 두 사람 사이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아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면 그 연결고리가 마치 인간사의 신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보건실은 가끔은 요양호자를 위한 정숙을 요청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보호자와 병문안객으로 북덕북덕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냥 화는 나지 않는다.


 

요새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유행이다. 마을마다 살고 있는 구성원이야 다양하겠지만 단 한 명의 아이와 어른들만 사는 마을은 흔치 않을 것 같다.

마을에는 한 아이와, 어른들과, 그리고 아이들이 산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면 아이들도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 자라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끔 같이 온 친구들에게 보호자로 왔냐고 물을 때 보호자는 어른이 하는 거고 자기는 어린이라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때 법으로는 그렇긴 하지만 학교 보건실에 친구가 같이 와 주는 건 서로 도와주고 보호하는 일이라고 알려준다. 뭔가 쑥스러운 듯 몸을 배배 꼰다. 나도 그렇게 락스타에서 마을 주민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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