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취미부자 아직도 도전 중입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칭 취미부자다.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악기도 이것저것 배우고 관심 있는 것이 생기면 배워보고자 여기저기 다녔다. 중요한 것은 관심분야가 넓었던 것이지 배웠다고 해서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한 우물을 판 것처럼 오래 했고 비록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것은 피아노다. 초등학교 내내 피아노를 배웠고 성당에서 반주자로 오랫동안 봉사하다 보니 미사 전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 칠 수 있다. 영광스럽게도 솔뫼성지에서 반주를 하게 될 기회가 있어 성당에 있는 파이프오르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순례 오신 분들이 미사를 드리는데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과 성가를 부르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고 있다. 오르간에 대한 전문적인 소양이 부족해 늘 아쉬움이 남기는 하다.
건반악기를 하다 보니 직장인밴드에서 키보드를 맡아 여기저기 떠돌았다. 특수학교 근무할 때 음악에 관심 있는 교사들을 모아 밴드를 만들었다. 처음 밴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2년 동안 즐겁게 활동했다. ‘우리끼리 재미있게’가 목표여서 서로 연주에 대한 불만 없이 연습했고 학생들과 교직원을 관객으로 한 교내 행사의 찬조공연으로 부담 없이 연주했었다. 그러다 열정 넘치는 직장인밴드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교사밴드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직장인밴드다 보니 밤 8시에 시작해 12시가 넘게 연습하고, 연주에 대한 완성도를 위해 서로의 연주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했다. 먼 지역까지 외부 공연도 다녀야 했고 친목을 위한 시간도 많이 있었다. 연습 시간도 밤늦게까지 길지만 그 외 친목 시간이 있다 보니 남편과 갈등이 자주 생겼다. 그리고 기타 중심 밴드팀이다 보니 키보드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 공연을 본 남편은 ‘키보드 소리 하나도 안 들리는데 키보드가 왜 필요하다니?’라며 뭐 하러 열심히 하냐고 타박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참석하고 연습하고 연주했는데 음악의 조화와 균형 없는 밴드 속에 가족과의 갈등을 두고 계속 지속하는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밴드 사람들은 그만두는 나를 엄청 아쉬워하며 붙잡으려 했다.
근무지를 옮겨 교내 직장인밴드와도 헤어지고 음악활동은 접게 되었다. ‘이제 음악밴드와는 인연이 다했구나’ 하던 차에 새로 이동한 근무지에서 신기한 일이 있었다. 그 학교에 잠시 쉬고 있는 교내밴드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밴드활동을 했었다고 하니 열렬히 환영했다. 작년까지 연주했던 곡을 들어보니 내가 들어보지 못했거나 오래된 기억에 남아있는 70년 80년대의 음악을 연주했었다고 해서 좀 실망스러웠지만 멤버들이 서로 응원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 악기를 오래 연주했던 분들이라 새로운 곡을 맞춰보아도 연주곡이 완성도 있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팀이 재미있는 것이 교장, 교감선생님이 주축이고 나이대가 50대로 높다는 것이다. 아마 젊은이들은 이 구성조합이 부담스러워 들어오기 힘들 것 같았다.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떨칠 이런 밴드팀을 학교에서 다시 만나다니 내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몇 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음악이 완성되어 연주무대를 찾고 있을 정도이다.
건반악기 이외에 초보적인 연주를 할 수 있는 악기들은 오카리나, 기타, 우쿨렐레, 국악으로 사물놀이 악기가 있다. 생초보를 벗어난 수준으로 혼자서 즐길만한 초보 실력이다. 혼자서 가끔 생각날 때 하다 보니 초보실력 늘 그 자리이다. 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지속하기가 어려워 그만두니 많은 연습 시간을 갖지 못하고 꾸준히가 되지 않아 좀 아쉽기는 하다. 특히 기타가 늘 아쉽다. 20대에 배운 실력이 퇴보하여 이제 코드도 늘 확인하면서 쳐야 해서 기타 잘 치는 사람이 늘 부럽기만 하다.
악기 이외에는 몇 가지의 취미생활이 있다. 재봉에 관심 있어 재봉강좌를 수강해 식탁보, 에코가방, 통장지갑, 티슈케이스, 베개커버등 생활소품을 만들었다. 그러다 옷 만드는 강좌까지 수강해 보었다. 티셔츠, 치마, 바지, 원피스, 조끼등 내가 만든 나만의 옷이 완성되었는데 대충대충 하고 꼼꼼하지 못한 성격으로 완성도가 떨어져 집에서만 입을 소중한 기념품이 되었다.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 집에서 꺼내 입고 뿌듯해하고 있다. 수강했던 기관의 방침상 2회 이상 강좌를 계속할 수 없어 그만두다 보니 관심이 시들해지고 그때 만든 소중한 기념품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 때 요리에 관심이 많았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있어 먹어보지 않은 새로운 요리를 해주려고 시도해 보았었다. 그 당시에 이름도 생소한 빠에야, 필라프나 짜장면, 짬뽕, 탕수육, 피자, 아귀찜 등 식당에서 먹어본 음식을 집에서도 비숫한 맛으로 만들어 보았다. 좀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요리강좌도 들어보았다. 수업에서 만든 요리를 집에서도 만들어보며 아이들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도 색다른 요리를 먹어보고 ‘맛있어 엄마’ 해주었고 배운 보람도 있었다. 쿠키도 굽고 빵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건강을 생각해 설탕도 줄이고 기름도 줄여서 만들다 보니 달콤한 맛이 반으로 줄어들어 아이들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모양도 파는 것만큼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나만의 만족으로 가끔씩 만들기를 지속했다. 그런데 아이들도 독립하고 식구가 없어 먹을 사람이 없으니 요리가 시들해지고 점점 간단하게 식사준비를 하게 되니 나만의 방식으로 돌아가 요리는 예전과 똑같아졌다.
손재주는 없지만 꼼지락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는 반짝이는 비즈공예가 좋아 보였다. 비즈구슬을 비롯한 다양한 부자재를 구입하여 반지, 목걸이, 귀걸이, 열쇠고리등 작고 예쁜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내가 착용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다. 내가 액세서리 착용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비즈공예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취미들을 돌아보니 무언가 배우고 해 보려는 열정이 많은 삶이었던 것 같다. 배우는 동안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 굴곡 있는 삶에 취미생활은 비타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취미들 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아있는 취미는 기타와 우쿨렐레다. 나에게 남아있는 열정을 끌어모아 기타에 집중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새로 무언가를 배우려는데 두려움이 있다. 기능을 익히는지 시간이 더 많이 걸려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아직 배우고자 하는 용기가 생겼다. 오늘 가야금 강습 공지가 있어 살짝 망설이다 신청해 버렸다. 가야금도 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