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는 운명이란 뜻으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곤 했다. 생각해 보면 역마살이 나를 표현하는 말 중에게 하나일 것 같기도 하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학구를 벗어나 인근학교를 두고 학교를 멀리 다녔다.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처음 말한 분은 어릴 때부터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셨다. 고등학교 과제를 위해 바느질을 하려고 실을 끼웠는데 길게 끼운 실의 길이를 보고 할아버지는 ‘너는 역마살이 있어 집을 떠나 많이 돌아다니겠다,’ 하셨다. 그때는 그 뜻을 잘 몰랐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말씀이 떠오르니 신기할 노릇이다.
교직발령이 나기전 6개월동안 가게된 첫 직장도 서울에서 인천으로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녔다. 임용 발령이 나서 24년을 살던 서울을 떠나 당진에 왔다. 첫 학교 발령지에는 결혼과 출산으로 5년을 근무했지만 그 이후에는 한 학교 만기인 5년을 채우지 않고 2년이나 3년이 되면 학교를 옮겨 다녔다. 그래서 옮겨다닌 학교가 다른 사람의 2배쯤 된다. 근무지는 큰 학교, 작은 학교, 시내학교, 시골학교, 일반학교와 특수학교등 각각 다른 환경이 있는 학교들이다. 학교에서 맡는 업무도 나만큼 골고루 맡아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특수교사니 특수 업무는 기본이고 교무, 연구, 방과후학교, 체육, 보건, 다문화, 홍보, 진로교육, 환경, 교원단체등 크고 작은 업무들을 자의든 타의든 골고루 경험해 보았다. 그 덕분에 업무와 연관 있어 일반학생들과 더 가까워질 수도 있었고, 학교표창과 개인표창을 받기도 하는 등 보람 있는 일들도 있었다. 근무지가 다양하다 보니 같이 근무한 선생님들도 많았다. 슬프게도 안면인식장애와 기억력의 한계로 얼굴과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아 우연히 만나게 되면 기억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직장만큼 집도 이사를 수시로 다녔다. 아이들도 우리 집만큼 이사를 많이 다닌 집은 자기들 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다. 5번의 아파트와 2번의 단독주택, 2번의 상가주택이고 당진을 사방팔방으로 이동하며 움직였다. 이사를 다니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쁜 사정과 좋기를 바라는 사정이 있었다. 새로 이사 가는 집에서의 첫 밤은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며 오래 머무르게 되길 바랐으나 3년이 되면 이사를 해야 할 이유가 생기곤 했다.
결혼 후 시댁에서 같이 살다가 갑자기 분가를 하게 되어 급하게 구한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이었다. 아파트 같지 않게 집에 들어가면 어딘가 떨어져 있는 섬같이 조용한 집이었으나 3세, 2살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며 오르내리기에는 힘들었다. 남편이 서울로 일하러 가게 되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눈물로 5층을 오르내렸던 힘든 집이었다. 1년 만에 길 건너 1층 아파트로 옮겼다. 1층은 5층까지의 입주민들의 출퇴근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많이 났으며 비가 오면 지하의 습도가 많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1층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를 몸으로 실감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어 공장을 짓고 집도 짓게 되어 첫 단독주택에서 살게 되었다. 3년 동안 살았지만 추억이 많은 집이었다. 그림 같은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았으며 진돗개도 키우고 여름이면 해바라기 꽃과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철봉과 미끄럼틀을 만들었고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하였다. 가을이 되면 꿩소리가 났고 겨울에는 주변 비닐하우스에서 바로 딴 싱싱한 딸기를 사서 먹었다. 남편의 사업은 사양사업이라 바로 어려워졌으며 추억이 많은 주택은 정리하고 아파트로 다시 이사하게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몇 번의 아파트를 거치고 두 번째 단독주택으로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남편은 평생 살집이라며 집을 빙 둘러 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말라죽으면 또 심고 또 심었다. 작은 잔디밭에 잔디보다 잡초가 먼저 크고 빨리 자리 잡았다. 풀이 무서운지 그때 알았다. 새들은 크고 작은 소리로 저마다의 노래를 불러 아침잠을 깨워주었고, 계절마다 피는 꽃을 보며 ‘우리 집에도 이런 예쁜 꽃이 피다니 놀라워라’ 하며 감탄하였다. 시골집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일 어려운 것은 마을 가운데 있는 집이라 주변에 할머니들은 농사일을 하시는데 마을에서 가장 어린 내가 주말에 꽃을 보거나 커피를 마신다고 실외에서 한가롭게 쉬기에는 눈치가 많이 보였다. 시내와도 떨어져 있다 보니 과자라도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고 치매 있으신 뒷집 할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우리 집이 자기 땅을 침범했다고 매번 화를 냈다.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시댁과 연관이 있는 집을 사야겠다며 계약을 하고 와서 좋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한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정착을 못하고 늘 돌아다니는 삶이었던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이 익숙해지면 지루해서 떠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기는 것도 있었다. 이제 나이를 먹다 보니 익숙함이 좋기도 하지면 아직도 지루함은 참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5년을 지나고 있다. 여기서 노년을 함께 할 수 있을지는 좀 자신이 없다. 또다시 단독주택의 좋았던 기억을 생각하며 꿈꾸고 있는데 가족 모두 반대하여 혼자서 꿈꾸고 있다. 꿈꾸면 이루어진다는데 나의 마지막 집은 어디가 될지,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어떤 삶이 펼쳐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