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며
브런치 작가에 처음 당선(당선이라 하기엔 좀 거창한 감이 있지만 ^^;)되었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평소 에세이는커녕 일기도 잘 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브런치 '작가'라니. 작가가 이렇게 순식간에 되어버릴 수 있는 건가? 그 '작가'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보낸 슬픔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가기 전에,
하루가 더 지나서 아버지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바래지기 전에,
느끼고 있던 생생한 감정이 사그라들기 전에
무엇인가를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글로 쓴다는 건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어 구체화한다는 것이더군요. 감정을 추스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로 뱉고 감정을 채우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던 거 같아요.
생각해 보면, 살면서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된 2가지 일은 탄생과 죽음인 거 같습니다.
과거 목표를 한번 이룬 상태에서,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려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항상 머릿속에는 행복에 대한 갈망과 어떻게 그걸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쉬지 않고 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보고 있을 때면, 그냥 마냥 내 새끼가 귀엽고 신기해 보이더군요. 그게 행복이라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간에는 우울감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울감을 점점 느끼지 않게 되니 그 상태가 자연스럽게 유지되었습니다. 행복이란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거 같습니다. 남들 보기에 꽤 괜찮은 회사에 다니며,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뛰어난 동료들과 과제를 풀어나가는 시간들. 거기서 싹트는 동료애와 보람.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15년의 정도를 보내다 퇴직하고 그다음을 도모하는 삶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요. 그다음은 한참 뒤의 일이라 지금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을 거 같고요.
근데 무엇인가 더 있을 거 같았습니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고, 일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더 설레고 싶은데 그 일이 무엇인지 몰라서 답답했습니다.
마침 재직 중이던 스타트업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6개월간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말이 휴직이었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자기 탐구를 했던 거 같아요. 매일 루틴을 만들어 새벽에 일어나 캘린더를 채웠습니다. 근데 결국 그 두근거리는 일이라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육아휴직이 끝나면 컨설팅으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죠.
아이의 탄생이 간접적으로 저를 다시 태어나게 했듯,
아버지의 죽음은 간접적으로나마 저에게 죽음을 경험하게 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건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사소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제 자신이 마치 끝도 없이 펼쳐진 흰 백지에 찍힌,
작은 점처럼 느껴졌습니다.
돈이 있었지만 내심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쌓아온 괜찮은 커리어를 놓기는 불안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아무것도 놓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더 손에 들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상주 완장을 차고 의자에 앉아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그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단순해져 버렸습니다.
그냥 세상에 제가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전 그때서야 주변이 아닌 나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을 수 없었거든요.
아버지를 모신 지 190일이 다 되어 갑니다. 세상 모든 사물들이 시린 흑백 영상처럼 슬퍼 보였었는데, 어느덧 지금은 다시 웃을 수 있고, 그런 매일이 당연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무슨 일이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제서야 알 거 같습니다.
집 방구석에 작게 공방을 만들고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안식년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 시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을 수도 있고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뭘 하고 있든
이제는 행복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생활을 더 단순하게, 하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문장은 질리도록 식상하지만,
그만큼 행복을 잘 표현하는 말도 없는 거 같습니다.
글 읽으시는 모두 행복한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민석 드림
아빠 생일 축하해. 그날 보러갈게.
(8월 27일은 아버지의 생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