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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석 Aug 09. 2024

아버지를 보내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정도인가. 차에서 운전하며 아내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조만간 돌아가실 것 같아"


왜냐면 과거에도 죽음을 택하시려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엔 어머니와 같이 계셔서 몸싸움을 하며 말리시던 중 지나가던 쿠팡맨이 도움을 줘 기적적으로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아버지는 당시 상황을 기억 못 한다고 했지만 진실은 당사자만 알 뿐이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안 좋아지고 있었다. 특히 잠을 못 주무시는 날이면 몸을 떠시며 괴로워하는 증상이 더 심해지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침에 우리 집으로 와 수호를 봐주시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돌보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같이 오시라고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해 드렸지만, 처음 몇 번 오시더니 힘들다며 결국 발걸음이 뜸해지셨다.


그렇다면 언제든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막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을 예감했던 거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구정 연휴에 가족이 모였을 때, 평소 같았으면 잔소리를 잔뜩 했었겠지만 불만들을 삭히고 가만히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경찰의 전화를 받자마자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그렇게.

힘든 삶 끝에서 죽음을 선택하셨다.




한 사람의 삶이란 참 허망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살아가며 잠시나마 겪는 성공도,

추구하는 성장도, 돈도 실패도,

그게 뭐든 간에.

지나가는 일이고 언젠간 잊힐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하루를 후회 없이 열심히 사는 것뿐인 거 같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별명이 '장충동 타잔'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동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난꾸러기 타잔이었나 보다. 노는 걸 워낙 좋아해서 성적이 안 좋으셨다가 할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공부를 해 경기고와 서울대를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 석사 후 의료업계 영업에서 전설을 만드신 분. 어렸을 시절 아버지와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서울대 밴드부 보컬이었셨던 아버지는 정말 노래방에서 타잔처럼 뛰며 신명 나게 노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이 그렇게 정신질환으로 오랜 기간 고생하시고 돌아가셨다.


우린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저 오늘 할 일을 해 내는 것뿐이지 않을까.


삶이란 항상 행복할 수도 없으니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기쁘구나 슬프구나 하며 지나치지만 않게 감정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핸드폰을 정리하던 중 본인의 장지를 알아보고 계심을 발견했다. 하늘이 도우셨던 것인지 그 많고 많은 장지들 중 알아보셨던 곳과 내가 장례식장에서 경황없이 결정했던 곳이 같았다.


원하시는 장소에 모시게 된 거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은 참 작은 것에 감정이 움직이는 존재인 것 같다.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았던 사실은 '성인이 된 후 아버지와의 교류가 정말 없었구나'라는 점이다. 난 무너져버린 집을 일으켜 세우는 것 만을 목표로 삶을 살아왔다. 우울증은 블랙홀처럼 주위 사람들의 에너지를 앗아가기 때문에 아버지와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했던 거 같기도 하다. 이기적일 수 있지만 난 나의 에너지에 집중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라도 살기 위해서. 나라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렸을 때 아버지와의 기억이 더 선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지금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생각 봐야 할 일이다.


뒤늦게나마 '있을 때 잘해야지'라는 말이 와닿는다.

글 보시는 분들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시길 소원한다.




육아휴직을 한 지 3개월이 지났고 이후 퇴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많은 직장 동료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방문해 주었다. 회사의 부대표인 레오는 식장이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도착해서 같이 방석을 깔아주고 향을 피워 주었다. 대표인 울프와 회사 동료들은 늦게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혼식 손님은 부모님 손님이고, 장례식 손님은 자녀들의 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난 몇 평 되지 않은 장례식장의 의자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며 아버지의 삶의 흔적과, 나의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새삼 지금까지 쌓아왔던 인연들이 감사했고, 그분들과의 추억을 더듬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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