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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석 Aug 03. 2024

우울증은 유전일까

강남에 집을 사고 우울증에 걸린 이유

우여곡절 끝에 반포를 매수할 순 없었지만(정책적인 이유가 있었다),

대치동의 우선미 중 '우'의 대형 평수를 매수했다.


잠깐이나마 젊은 나이에 많은 걸 이룬 거 같았다.


우리 가족은 과거 모든 재산을 잃었지만, 내 손으로 다시 원상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10여 년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들뜬 마음에 주말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사고 싶은 것을 샀다. 은행에서는 나에게 VIP 등급을 줬고, 더 이상 줄을 서지 않고 은행업무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간의 시간이 지났다.

뭔가 이상했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아버지의 우울증이 사라지고,

어머니는 예전처럼 웃을 수 있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 속에서 행복할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아파트 등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속엔 행복감이 차오르기보다는 공허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력감과 함께 우울감마저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발 끝에서 에너지가 한 올 한 올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쯤 되니 걱정이 되었다.


우울증의 원인 중 유전적인 기질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규칙적인 운동으로 감정을 유지시키려는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우울감을 겪게 되니 아버지의 우울증이 혹시나 나에게 유전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이 시절 나의 공허함을 아무도 이해해 줄 리 없었다.




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기로 했다. 다시 나를 극한 상황에 밀어 넣었다.


완벽하게 자리 잡았던 스타트업을 퇴사하고, 다시 회계법인으로 돌아가 컨설팅을 시작했다. 심지어 중간의 짧은 공백기간 동안 강남의 빌딩중개법인에서 잠시 일을 해 보기도 했다. 충격적 이면서 동시에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껏 내가 일했던 환경이 정말 좋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회계법인은 나에게 간지 나는 명함과 높은 연봉을 주었지만 행복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집을 팔고 빌딩을 사보기도 했다. 강남의 집을 산다는 것 자체가 목표로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매도하고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꼬마빌딩을 매수했다. 하지만 빌딩을 쳐다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었다. 게다가 빌딩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은 내 생활을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아트컬렉팅을 배워 미술작품을 사 모으기도 했다. 사실 아트컬렉팅을 시작한 계기는 투자 목적이었다. 미술 시장의 사이클이 올 것 같았다. 코인시장과 주식시장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부동산을 사고, 그 이후 미술 시장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득 수준과 함께 문화 수준도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갤러리를 다니다 보니 미술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표정이 행복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아트컬렉팅 수업을 들으며 배우기 시작했다. 집의 벽이 미술작품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지만, 컬렉팅이 소중한 취미가 될 수 있을지언정 컬렉팅만으로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었다.


집에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들여 음악 감상에 빠져보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음악을 드디어 제대로 들을 수 있다니. 더 투명한 소리를 듣기 위해 정보의 바다를 끝도 없이 헤매었다. 집 한편에 스피커, 소스기기, 앰프가 수시로 바뀌었다. 오디오용 선재의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전깃줄 하나로 음의 색이 변화하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곧 시들해지며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하고 시스템도 자리를 잡았다.




우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목표는 오로지 돈이었고, 그 목표를 달성한 순간 내 인생의 방향성을 상실했던 거 같았다.


행복을 논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엔 뻔한 이야기라며 웃어넘겼었지만, 직접 겪게 되니 이 문장만큼 행복을 잘 설명해 주는 문장도 없는 거 같다.


미래의 특정 상태를 행복의 조건으로 설정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에는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목표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본인의 가치에 맞는 적합한 목표를 찾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면, 방황하게 되고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적어도 난 그랬다.


따라서 행복의 조건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시점의 '점'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흘러가는 시간들을 행복감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아주 잠깐의 순간만을 목표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행복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아들 수호가 세상에 나왔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회계를 공부한 사람만 공감할 수 있겠지만, 난 행복을 생각할 때면 대차대조표(B/S)와 손익계산서(P/S)의 개념을 떠올린다. 대차대조표는 12월 31일 그 순간 회사의 상태, 즉 Spot의 개념이다. 손익계산서는 1년 동안 자금이 들어오고 나간 흐름, 즉 Flow의 개념이다.


행복은 손익계산서처럼 추구하자


웃기지만 이 문장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 되었다.



연재가 하루 늦어졌습니다.
어린이집 방학이다 보니 요일을 착각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 버렸네요....

육아하시는 분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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