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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석 Nov 17. 2024

[프롤로그] 퇴사 후 모자 공방을 시작하는 이유

가오나시 인형

가오나시 인형을 보고 가치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다니.

난 정말 진지진지 열매를 잡쉈다.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가치 있는 일


하필 왜 모자를 만드냐면 이야기가 길지만.

한마디로 줄이자면.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럼 왜 모자를 만드는 게 가치 있는 일이었을까?




탈모로 삭발을 하면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당사자는 생각지도 못하는 불이익을 겪게 된다.

제일 큰 건 커리어에 제한이 생긴다는 것.


삭발한 사람이 취직하는 건 안 그래도 어려운데,

금융권에 신입으로 취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실험도 해봤다.

‘삭발 상태로 면접보기 vs. 가발 쓰고 면접보기’


결과는 가발 쓴 곳은 안전빵 합격.

다른 곳은 벗고 들어간 순간부터 탈락.


합격해서 들어간 은행에선 

내가 답답해서 가발을 벗는다고 하니

안된다고 하며 더 좋은 가발을 쓰라고 했다.

근데 다들 그걸 아시려나 모르겠다.


전체가 아닌 부분 가발을 쓰려면

머리가 안 빠진 부분인 뒤랑 옆머리를 기르고

머리가 빠진 앞과 정수리 부분에 가발을 붙이는 건데,

그러려면 잘 붙게 하기 위해선

머리가 없어진 부분만 면도기로 밀어야 한다.


한마디로 ‘사.무.라.이’가 되는 거다.

내 성격에 그러고 사느니 

그냥 삭발을 한 상태에서 절로 들어갔을 거다.

그리고 거기서 주지스님의 야망을 키웠겠지.


모발이식을 하라고?

뒤에 있는 머리를 떼어서 위에 심는 건데

떼어낸 부분은 흉터가 남는다.


그럼 나중에라도 삭발은 못할 거고

탈모가 더 진행되면 심은 부분만 남아서

귀뚜라미 더듬이 처럼 되는 슬픈 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선택은 삭발이었다.

일사병과 뇌졸중의 위험으로 모자를 많이 쓰긴 해야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고,

은행을 뛰쳐나온 후 회계법인을 다니고 

스타트업을 다니고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한국의 문화로 인해

외모로 하고 싶은 일에 제한을 받았다는 건,

한동안 꽤나 트라우마로 남았다.


외국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친구들은 그런 문화는 존재할 리 없다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왜 이 이야기가 구구절절 나오냐면…




와이프에게 나를 왜 만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대답이 가관이었다.


소개팅 첫자리에 나왔는데

머리를 민 인간이 모자도 안 쓰고 나왔는데

그 인간이 신기하게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재밌게 이야기를 했다는 거다.


그게 신기해서 ‘이 사람이랑 만나면 심심하진 않겠네’

라고 생각하고 결국 결혼을 했다는 것이지.

아. 그래서 요즘도 정말 심심하지 않은 삶을 안겨주고 있..


아무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생에 개 같은 일도 많고, 불이익과 불평등.

때로는 폭력적인 비합리성이 흐르고도 넘치지만,


삶은 원래 그런 것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나를 잃지 않고 

길을 찾으면 

우리는 결국 그걸 찾아낼 거란 거다.


센이 그랬듯이.

내가 그랬듯이.


뭐 모자를 만드는 데 이런 거창한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난 뭘 하든 언제나 다른 이유를 원했다.


모자가 좋아서 만든다거나,

소재와 핏에 많이 신경 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그런 거 같다.

그런 건 그냥 숨 쉬는 거처럼 당연한 거다.


다시 돌아와서 내가 생각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의 가치는

일과 행동을 통해서.

‘나’ 이니까 말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거다.

그게 머리에 올라가는 조그만 걸 만드는 일이라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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