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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Oct 12. 2021

호야등 (火屋燈, ほや燈)

그 겨울의 일상

겨울 오후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갈 때면 창고 앞에 하나 둘 호야등을 가져다 둔다. 크기와 색이 제각 기인 호야등은 모두 아홉 개다. 이제부터 일은 시작된다.


호야등은 등잔과는 다르게 기름 넣은 곳과 불이 타는 곳이 분리되어 있고 심지 높이를 조절하는 손잡이와 불이 타는 화실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람에 강하고 빛이 밝다. 또한 그을음이 없다.


석유를 사용하여 빛이 밝고 일정하고 편리하지만, 호야등도 비쌀뿐더러 석유 값이 만만치 않아 대부분에 집에서는 아직도 옛날 등잔을 많이 사용한다. 


걸레를 물에 깨끗이 빨아두고 마른걸레도 준비하고 석유 한말짜리 통도 꺼내오고 양철 펌프와 깔때기도 준비한다. 먼저 할 일은 호야등 유리를 꺼내는 것이다.


유리를 꺼내서 물걸레로 그을음을 깨끗이 닦아내고 마른걸레로 물기를 제거해야 얼룩이 없이 불이 잘 비친다. 이렇게 아홉 개의 유리를 모두 닦다 보면 한참이 걸리고 꾀가 생긴다.


갈수록 둥근 유리가 우윳빛에 가까워진다.  마지막 꺼는 거의 불투명에 가깝지만 괜찮다. 이것들에도 놓이는 위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석유통을 열고 양철 펌프를 넣고 호야등 기름통에 깔때기를 꼽고 석유를 적당량씩 넣는다. 너무 많이 넣으면 옮길 때 넘치기 일쑤이다.


또 조금이라도 흘리면 고약한 석유냄새가 상당히 오래가서 식구들에 타박을 받기 십상이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필요하다. 하나하나에 기름을 넣고 기름에 충분히 젖은 심지를 올렸다 내려본다.


심지 윗부분이 검은색 타다만 부분을 잘 정리해야 불이 고르고 그을음이 생기지 않는다. 심지 가위로 고르게 정리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 기름이 심지를 흠뻑 젖게 한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펌프를 빼고 깔때기와 석유통을 제자리에 두고 젖은 걸레에 손을 닦고 마른 수건으로 손에 물기를 말린다.


유리를 호야등에 차례로 넣고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여 유리가 좌우로 잘 고정되었는지 확인하다. 늘어선 호야등을 마루 앞 토방에 옮겨 일렬로 세워놓는다.


부엌에 가 성냥을 가져와 차례로 불을 붙인다. 성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선 동작이 간결해야 한다. 모든 호야등의 유리를 위로 올려놓고 불 붙이기 좋게 한다.


성냥을 하나 켜면 세 개 정도는 붙여야 하기에 이번에는 재빠른 동작이 필요하다. 먼저 세 개를 붙여 할머니방, 안방, 할아버지 사랑방에 가져다 놓는다.


두 번째 성냥으로 붙인 불은 형제들 방과 누이들 방 부엌 차례이다. 세 번째는 다시 부엌, 머슴 방, 칙간 앞이다. 유리를 닦을 때 제일 마지막으로 닦은 게 칙간 것이었다. 누구도 유심히 보지 않으니 괜찮다.


부엌에 두 개 놓는 이유는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이다. 하나는 밥 솥단지 위이고 하나는 반찬 만드는 찬깡 위가 제 자리이다. 이 두 개의 불빛으로 오늘 저녁밥상이 준비될 것이다.


연기가 가득한 정게를 밝혀줄 불까지 준비되었으니 마무리만 하면 된다. 다시 창고 앞으로 가서 물걸레와 마른걸레의 그을음을 깨끗이 빨아서 담벼락 한켠에 널어 말려둔다.


마지막으로 방을 돌며 호야등 불 크기가 적당한지 그을음은 안 나는지 확인한다. 그을음이 많이 나면 냄새도 안 좋고 건강에도 안 좋지만 더 큰일은 내일 일이 많아진다.


물걸레와 마른걸레로 될 것을 유리를 물에 담가 불려서 지푸라기로 박박 닦아내야 한다. 한겨울 찬물에 손을 담그는 것은 매우 유쾌하지 않다.


모든 일이 끝났으니 부엌으로 가 불 때는 엄마 옆에서 헛 비땅질을 하며 군것질거리를 내놓으라는 심통을 부리면 엄마는 광에 가서 고구마나 가래떡 두 어개를 꺼내와 숯불 위에 올려주신다. 활짝 웃으며 엄마 젖가슴을 만지면 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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