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을 열어젖힌다.
점심시간. 도서부 부원 두세 명이 반납된 도서를 이동 카트에 옮겨 담고 있었다. 언제나 깔끔하고 청결한 도서관. 도서관 안은 율리아샘의 허락 없이는 먼지 하나도 바닥에 내려앉을 수 없다.
“안녕하세요.”
“어서와.”
‘지금 여기가 황금보다 비싸다, 학생 그림일기, 노트 필기로 전과목 부시기, 신 중독의 세대, 학교 밖의 친구들……’ 처음 보는 책들이 접수 데스크에 잔뜩 놓여 있다. 새로 들어온 도서들에 바코드를 붙이고 있는 율리아샘.
“새 책이네요.”
“얼마 전에 주문했어.”
“찾고 싶은 책이 있는데…….”
“어떤 거?”
“언록트2008.”
힐끗 율리아샘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누구도 찾을 수도 없다고 들어서요…… 제가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오래 전에 이곳에서 읽은 적은 있지.”
“어디서요?”
“……글쎄. 그 책이 날 찾아왔어.”
“책이?”
“정말 그랬어. 책이 두 발로 나를 찾아왔어. 책 때문에 내가 변한 건 처음이었는데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그 책 한 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발이 달렸구나.”
“물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율리아샘…….”
“마리.”
“네?”
“네가 그 책을 정말 원하면 책이 널 찾아낼거야.”
율리아샘이 나를 보며 웃었다.
“책에서 길을 잃어봐.”
나는 천천히 책장 쪽으로 걸어갔다. 숲속 나무처럼 천장까지 빽빽하게 책장이 솟아올라 있었다. 눈앞에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이 뻗어 있었다. 오로지 책으로만 채워져 있는, 활자들만 숨 쉬는 적막하고 고독한 곳. 몸이 좀 떨려왔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데 누군가 내 팔을 붙잡았다.
내게 쪽지를 전해주었던 그 아이. 가슴패에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전서. 전서가 걱정스러운 듯 내 얼굴을 살폈다.
“도서부 부원이긴 하지만 저도 저 끝까지 가본 적은 없어요.”
“그렇구나.”
“선배…… 괜찮아요?”
“약간?”
“선배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탁?”
“네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나중에 하면 안 될까. 나 지금 좀…….”
“저랑…… 신발 좀 바꿔 신어주실래요?”
“신발?”
전서가 신고 있는 신발은 아직 새것이었다. 야자수 이파리로 엮어 만든 듯한 진녹색의 운동화였다.
“됐어. 새 거 같은데.”
“꼭 찾아달라는 의미에서 드리고 싶어요. 선배에게 꼭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전서는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내 발앞에 가져다놓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슬리퍼를 벗고 진녹색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게 딱 맞는 운동화였다.
“편해요?”
“응. 완전 딱맞아.”
“역시 제게 아니었어요. 걸으면서 어찌나 발이 아프던지. 애초부터 얘는 선배 거였어요. 주인을 이제야 찾은 거예요.”
내가 알기 전부터 내 것이었던 같은…… 진녹색 운동화를 신고 나는 책들의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이정표가 보였다. 종교, 스포츠, 심리, 문학, 역사, 과학, 경제, 의학, 예술, 정치……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막막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초입부터 막혀버렸다. 삼십 분째 이정표 주변만 계속 돌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러고 있으면 대체 오늘 안에 찾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누구든 붙잡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저었다. 다리에 그만 힘이 풀리고 말았다.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묻고 있었다. 누군가 이켠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지친거야?”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유가였다. 유가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유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먼길 가는데 배웅은 해야할 것 같아서. 에프알제트티 2에서 사라졌다는 제보가 있어.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정보야. 그것이 이 책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야.”
“고마워.”
“별로.”
“이거 끝나면…… 사마귀 동성이랑 우리 다 같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먹자.”
“…….”
유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 안 되면 나중에라도.”
“……너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응?”
“난 이기든 지든 상관 없었어. 애초부터. 우리…… 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어차피 졸업하면 다 헤어질거니까.”
“…….”
“평생 사과라는 건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데 내가 너한테 미안해야 하는 거니?”
“아니.”
다행이라는 듯이 유가가 희미하게 웃는다.
“꼭 찾길 바래.”
“고마워.”
“……그런 말은 하지마, 안 해도 돼. 난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런 일은 아예 만들기도 싫어. 평생 고맙고 미안한 관계가 아니라면 의미 없는 것 같아서…….”
“편한대로…… 근데 유가.”
“어?”
“만약 네가 고맙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은 평생 볼 사람이니?”
“……아마? ”
“그래.”
1896년 몽골 어느 시골 마을에 살았던 18살 네오에 관한 얘기야. 네오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어. 네오의 아버지는 네오가 완전히 시력을 잃으면 집에서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어. 눈먼 사람들은 마을 안에 있는 큰 성에 갇혀 살아야 했거든. 왜냐면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 이름도 없는 눈먼 여인이 시골 마을을 찾아왔어. 그 여인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사람들 앞에서 살려 달라며 울부짖었어. 네오도 그곳에 있었어. 아직은 구경꾼으로 말야. 드디어 수건이 벗겨지고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어. 처참했어. 여인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어. 문둥병 때문에 얼굴에 있는 살점들이 떨어져나가고 있었어. 얼굴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어. 다들 여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돌렸어. 여인은 성에 보내져 천천히 죽어갈 운명이었어. 네오는 그 여인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어. 그 여인의 눈처럼 아름다운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네오는 생각했어. 문둥병 여인이 성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렸어.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 숲속으로 사라진 그 여인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네오 뿐이었어. 은하수가 숲속에 쏟아지던 날. 나무와 꽃이 별이 되던 날. 네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어. 네오는 그 여인이 사라진 길을 따라갔어. 네오 역시 마을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어.
나는 네오를 찾는 심정으로 도서관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에프알제트티 2 코너로 발길을 돌려 걸어간다.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주변이 어두워졌다.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개미보다 더 느린 속도로 나는 한참을 걸어갔다. 멀리…… 바닥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분명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인 것 같았다. 별쿠키를 입에 넣으며 동성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가 제일 방해를 덜 받는 곳이라서.”
“먹어. 편하게.”
“너는 여기서 뭐해?”
“아. 그게 있잖아 동성아. 어떤 여인이 눈이 안 보여. 근데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거야…… 그 여인이 어디로 갔을 것 같아?”
“어디로 안 갈 것 같은데?”
“뭐?”
“안 보인다면서. 그냥 숲이 인도해주는 길로 갈 것 같은데? 더군다나 처음 가는 길이면…… 너 이거 좀 먹을래?”
“…….”
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동성이를 쏘아보았다.
“왜?”
“그거 맛없지. 넌 꼭 맛없으면 주더라.”
동성이 별 쿠키를 한가득 내 손에 쥐어준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누군가의 이야기를 찾는 건 마치 별 하나를 찾아내는 거랑 같은 거라고.”
“여기서 별을 어떻게 보냐.”
“볼 수 있어.”
“어디?”
나는 동성이 건네준 별쿠키를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역시 그저 그런 설탕맛이었다.
“네 안에.”
동성이는 오늘따라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나는 우걱우걱 입안에 들어 있는 그것을 모두 다 씹어 삼킨다.
“그래서 말인데 어둠이 짙을수록 더 유리해. 발길 가는데로 걸어가…… 네 안에 빛이 길을 가리켜줄 테니까.”
“발길 가는데로…….”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발길 가는데로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뭔가가 빛나고 있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등인지 별인지 알 수 없었다. 빛을 따라 나는 천천히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시력을 잃어가면서 네오는 그제야 세상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에 눈 뜨기 시작했어. 이제껏 보아왔던 꽃은 사실 꽃이 아니었어. 그것은 심장이었어. 사랑이었어.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웃음이었어. 하늘도 이제껏 보아왔던 하늘이 아니었어. 그것은 시작이었어. 꿈이었어. 신이 우리에게 주는 노래였어. 그 무엇도 네오에게는 예전과 같지 않았어. 그래서 문둥병 여인의 얼굴을 보았을 때 네오는 그토록 놀라게 된 거야. 문둥병 여인의 얼굴을 보며 네오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어. 그것은 아픔이었어. 고통이었는데 그 속에 아름다움의 절정이 감춰줘 있다는 걸 네오는 알게 된 거야. 네오는 그것을 따라간거야. 두 번 다시 네오의 걸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어.
계속 걸어갔다. 누군가 바닥에 앉아 책장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혼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은 이곳에서 깊은 쉼을 누리고 있었다.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조용히 발끝을 들어 올렸다. 혼이 깨지 않도록 그곳을 조용히 지나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책장에는 식물, 곤충, 동물, 조류…… 와 관련된 온갖 책들이 꽂혀 있었다. 누구도 이 코너에서 책을 빌린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깨끗하고 반듯한…… 사람의 손길이 전혀 묻어 있지 않은 책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마귀가 보였다. 사마귀는 왜 이제 왔냐는 표정이었다. 사마귀 손에는 곤충나라 백과사전이 들려 있다.
“왔냐?”
“…….”
“5교시 시작 10분 전이다.”
“벌써?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네가 도서관 갔다고 해서. 넌 분명 길을 헤매고 돌아다닐 인간이니까.”
“그건 그래.”
“원하는 건 찾았냐?”
“아직.”
“이제 어쩔 건데?”
“몰라. 나 어떡해 사마귀?”
“……계속 걸어가.”
“계속?”
“어차피 어디로든 가게 되어 있으니까.”
“이러다가 길을 잃으면?”
“절대.”
“어떻게 알아?”
“네가 날 만났으니까. 내가 너의 이정표라는 얘기야.”
“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는 사마귀를 쳐다보았다.
“너희들이 내게 왔었잖아. 점심시간에 동성이가 내게 쪽지를 건네줬을 때 그때가 내 지도에 그려진 최초의 출발점이었어. 너희들이 내 지도에 우물을 만들고 길을 놓았어. 이상한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말야 그 길은 내가 바로 가려고 했던 곳이더라고.”
나는 사마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걸어. 그리고 누굴 만나면 그 사람에게 물어봐.”
“응!”
나는 속도를 높였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수백 개의 책장을 넘고 또 넘었다. 발바닥이 아파왔다. 땀이 흘렀는데 웃옷이 등에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저 멀리 누군가가 보였다.
머리카락만 보고도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안선배. 안선배는 책장에 기대어 뭔가를 읽고 있었다. 토렴의 온도. 나는 비틀거리며 겨우 선배 앞으로 가 섰다. 어떤 지진도 태풍도 흔들어놓지 못할 것 같은 선배의 호수처럼 고요하고 깊은 눈.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방해한 건 아니고요.”
“…….”
“제가 좀 찾고 있는 게 있어서요.”
“…….”
정적…… 선배와의 정적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발바닥이 불에 타는 것 같다는 둥, 목이 마른데 여긴 자판기 하나 없다는 둥, 수업 시간 전에는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 둥 혼자 궁시렁거렸다.
“그래서…… 힘드니?”
선배가 내게 물었다.
“…….”
“힘드냐고.”
“…….”
“힘들면 그만둬.”
“…….”
나는 주먹을 쥐고 고개를 들었다. 선배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너 또 포기할 거잖아.”
뜨거운 뭔가가 속에서 올라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말야…….”
“…….”
“운동화 끈부터 다시 매.”
끈? 밑을 내려다보았다. 운동화 끝이 풀려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묶어도 끈은 계속 풀어질 뿐이었다. 보고만 있던 선배가 무릎을 접고 앉더니 리본 모양으로 끈을 단단하게 조여 묶는다. 운동화 끈만 묶어주고는 인사도 없이 그렇게 선배는 뒤돌아서서 가버렸다.
나는 한참을 선배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어? 뒤쪽 책장 제일 밑에 비스듬하게 세워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조심스레 책을 꺼낸다. 언록트2008.
나는 221페이지를 펼쳐 읽는다.
시력을 잃어갈수록
세상은 더 진해져가네.
사랑을 잃어갈수록
향기는 더 깊어져가네.
소망을 잃어갈수록
삶은 더 강해져가네.
너의 얼굴 그곳에
널 아프게 했던 모든 것들의 빛깔이 녹아 있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너의 삶. 너의 눈물. 너의 노래. 너의 아픔……
너로 물들고 너로 적셔지고 너로 잠기는
네 눈물이 만들어낸 두 눈의 진주.
……그리고 나는 책장에 기대어 앉아 날이 새도록 글을 썼다. 새벽녘 희미한 빛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커지고 넓어졌는데 이윽고 그것은 황금빛 물결이 되어 도서관 창 안으로 출렁거리며 흘러들어왔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깨우고 보듬는 강렬한 빛. 따뜻하고 뜨거운 빛이 나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나는 하염없이 빛을 바라보았다. ……다시 글을 쓰고 저녁이 되고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폭죽이 터진다는 말은 이제 곧 치악고 체육관 공연이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완성된 원고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도서관 출입구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양마리, 우리랑 어디 좀 가줘야겠어.”
학생부 부원들이었다.
“미안 나중에.”
“아니. 지금 당장 가야해.”
내가 그냥 가려고 하자 그들이 내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팔이 아파왔다. 나를 가로막고 선 그들을 빠져나가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그들에게 이끌려 나는 어느 회의장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