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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Mar 15. 2023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다정함들로 살아요



 병동 생활 때였다. 첫 입원이었으니 치료 의지보다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때다. 나는 제일 안 쪽 끝에 있는 4인실을 썼다. 정신과 병동 비수기라는 한여름이었기 때문인지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병동 자체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거실로 나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병실 세 개와 안정실 하나는 항상 듬성듬성 비어 있었고, 두터운 안전창과 창살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서늘했다. 병실마다 그림자처럼 하얗고 말없는 사람들이 침상에 앉아 마른 얼굴을 들고 있었다. 거실에 나온 사람들은 티비도 보고 탁구도 치고 떠들기도 했다. 병동의 풍경을 모습을 알게 된 건 입원하고 나흘이 넘게 지나서였다. 되찾을 수 없는 사흘이 지나고야 정신을 차렸으니.


 정신을 차렸을 때 간호사선생님 다음으로 처음 말을 걸어준 건 나와 같은 방을 쓰던, 바로 옆 베드의 언니였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피부가 하얗고 검은 머리를 하나로 꾹 묶고 있던 언니. 화장실 가고 싶어? 혼자 갈 수 있다고 하니까 대답 없이 웃기만 하던 언니. 언니는 정말로 다정했다. 한쪽 손에 꽂힌 수액 바늘 때문에 머리도 제대로 감지못하는 걸 보고 손수 샴푸 거품을 내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만 있는 걸 보고는 자꾸만 말을 걸어주었다. 벌을 받아서 갇혀있는 거 같아요. 그 말에는 그런 대꾸를 해줬다. 그럼 빨리 나갈 수 있게, 네가 괜찮다는 걸 보여줘. 밥도 잘 먹고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그러면서. 프로그램이 시작할 시간이 되면 가만히 내 침상 앞에 앉아 오늘은 어때? 오늘 한 번 가볼래? 물어보곤 했다. 언니 손에 이끌려 매일 오전 한 시간 반씩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밥을 먹고 병동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인사했다. 나야 워낙에 낙천적인 성격인지라 적응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많아야 너 다섯 살 차 또래 환자들과 친해졌고, 언니는 우리와 어울리는 대신 가만히 책을 읽기를 바랐다. 언니의 퇴원이 다가왔고 언니는 더 이상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퇴원 날짜가 다가와 참여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하건대 나를 참여하게 하기 위해 본인도 하기 싫은 걸 참고 참여한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음악감상을 하는 그 시간 동안 언니는 한 번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언니는 항상 죽만 먹었다. 나 역시 인공호흡기를 사용했던 여파로 목이 아파 한 동안은 밥을 삼키지 못하고 죽을 먹어야 했다. 언니도 죽식이네? 묻는 말에 또 가만히 웃으며 대답했다. 배가 아파서. 며칠 후 나는 일반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언니는 아직도 죽을 먹었다. 아직 아파? 물어보자 언니는 또 조용히 웃었다. 나중에야 언니가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나와서 놀자, 이야기하자 할 때마다 그냥 베드에 앉아있기만 하던 언니. 나는 입원 일주일 만에 거의 모든 환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오분 십 분씩 떠드는 사람이 되었지만 언니는 여전히 나를 챙겨주었다. 달력을 보며 내가 기억을 잃은 날이 며칠이었는지를 짚어주기도 했다.


 기억이 없는 동안의 상태를 말해준 것도 언니였다. 부르면 혼곤히 대답은 하고, 일어나 화장실도 곧잘 갔지만 계속 잠들어만 있었다고. 여러 번 묻는 말마다 그냥 잤어, 자고 있었어 똑같은 대답을 지치지 않고 해줬다. 언니는 나 말고도 중학교 2학년 여자애 하나도 잘 챙겨주었다. 원래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언니가 퇴원한 후, 병실 세면대에 놓인 비누조각이 없어진 걸 보고야 그게 언니 물건이었다는 걸 알았다.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여기 왜 들어왔어? 무례할 수 있는 질문에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원래 공무원이거든.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사무실에서 팔을 막 그었어. 나는 오랫동안 팔을 그으며 자해를 했던 사람이었고 언니의 깨끗한 손목을 보고 그 말이 거짓말임을 알았다. 하지만 나직한 대답을 듣고 그렇구나, 그냥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언니는 퇴원을 하며 나에게 전화카드를 주었다. 내가 입원한 병동은 휴대폰 반입이 안되어 전화카드를 사서 써야 했다. 언니가 준 것도 동종의 전화카드였다. 입원할 때 자기 몫으로 들고 왔을 게 분명한 전화카드. 이제는 쓸 일이 없을 거 같아, 하고 건네는 전화카드를 받으며 나는 언니의 휴대폰번호를 달라고 요청했다. 수첩에 꾹꾹 언니의 번호를 적으며 물었다. 언니, 심심하면 전화할게요. 나는 언니에게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언니의 전화카드엔 기본 잔액 4980원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입원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통화를 한 적 없기라도 한 듯.


 병동엔 노래방 시간이 있었다. 점심 먹은 지는 한참 저녁을 먹기도 한참인 애매한 시간,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마다 보호사님은 노래방 기계를 틀어주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때는 얼굴을 비추곤 했다. 병동에서는 음악이 귀해서도 있을 거고, 구경거리라고는 서로들밖에 없어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몇 명 없었다. 그나마도 내 또래 몇이 전부였다. 언니가 퇴원하기 이틀 전에도 노래방 시간이 열렸다. 언니는 원래 노래방 시간마다 방에 앉아있었던 사람이었다. 퇴원 전에 언니도 노래 한 번 불러주라. 나를 프로그램에 꼬박꼬박 참여시키면서도 노래방 시간에는 혼자 방에 있던 언니에게 조르고 졸랐다. 그래서 그날은 언니도 거실로 나왔다. 언니는 검색도 없이 번호를 꾹꾹 누르며 노래를 예약했다. 화면에 새파란 글씨로 제목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니는 노래를 불렀다.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아직도 너의 모습이 보여

아직도 너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너의 시간 안에 살았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를 들으며 그때서야 처음으로 생각했다.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언니는 여기 있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언니는 처음 인사했을 때와 똑같이 조그맣고 다정한, 나직한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했다. 언니는 정말로 다정했다.


 이십 대 초반 어린 애가 희어진 얼굴로 침상채로 들어와 사흘밤낮을 꼬박 잤으니 어쩌면 당연했을까. 병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관심이 많고 다정했다. 모두가 나의 입원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만큼 더 나를 궁금해했다. 언니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다정하기만 할 수 있을 만큼 순수하게 다정했던 게 그 때문이었을까.


 삶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실패하고,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은 참 다들 다정했다. 특히 그 언니, 내 머리를 감겨주고 밥을 먹게 하고 빨리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며 끝까지 다정하고 나직한 모습을 보여준 언니는 정말로 친절하고 다정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 덕분에 내가 다시 삶을 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가장 좌절한 순간에서 일어나고, 또 지금껏 나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아직도 언니와 다른 환자들의 흔적 안에, 시간 안에 살고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그 다정함들이 배어있다. 그래서 가끔은 궁금하다. 어떤가요? 어땠나요? 당신도 나와 같았나요. 물어보고 싶다. 그럴 수는 없지. 우리는 이제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게 좋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종종 생각을 한다. 어떤가요 그대, 어떤가요 그대, 당신도 나와 같나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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