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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Jul 29. 2021

나의 우울증 치료기 01

통원의 역사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혹은 앓고 있다. '정신과 약'이라고 불리는 약을 먹은 건 이제 5년, 우울감에 시달리기 시작한 건 8년쯤 되었다. 2016년 여름 병상이 20개쯤 있는 지역 의원에서 초진을 받았고, 명백한 오진이었기에 인근 다른 병원을 찾아 반년을 다녔다. 연말정산을 하던 엄마가 나의 통원 사실을 알게 되어 병원비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버스를 30분 타고 지하철을 1시간 30분 더 타야 갈 수 있는 무지하게 큰 대학 병원을 소개해줬다. 1년 동안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았다. 상담은 좋았지만 여전히 내가 상담을 한다는 자체가 상담사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죄책감과 무기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을 끊었고, 집 근처에 유일하게 있는 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로비에 피아노곡으로 편곡된 K-pop이 나오던 그 병원은 1년 반을 다녔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날마다 찾아가서 진료확인서와 한 움큼의 약을 받아냈다. 술을 잔뜩 마시고 한 달치의 약을 모조리 삼키면, 사흘쯤은 아무 기억도 없이 보낼 수 있었다. 학교를 다녔고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말에는 종교생활을 했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약을 몰아서 먹고 기억을 잃고 다음 진료까지 먹을 약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그렇게 1년 반을 보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우리, 같이 죽을까. 날짜를 정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소중했던 것들을 정리하면서,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너무 많은 사랑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에 시집 두 권과 갈아입을 옷, 담배와 함께 한 동안 모아 온 몇 백 정의 알약을 넣었다. 도착한 곳은 내가 좋아하는 지역. 사랑하는 친구들이 살고 있고, 도망치고 싶을 때면 언제나 가곤 했기에 마음 편했던 그 바닷가.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했고, 약속 날짜가 다가오고 약속한 친구를 만나 바닷가의 숙박업소를 빌렸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면서 좋아했던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보고 싶었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즐거운 기억이 많은 바닷가였다. 어린 시절 가족끼리 피서를 오기도 했고, 도망치듯 달려와서 소주 몇 병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바다를 담으며 웃기도 했다. 그래 마지막이더라도, 나는 유쾌한 사람이니까. 웃으면서 끝내고 싶었다. 힙 플라스크에 담긴 도수 높은 술과 함께 수 백의 알약을 삼켰다. 약은 보조수단으로 준비한 것뿐이니, 주 수단 역시 준비를 끝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눈을 감았다. 정말 끝이길 바라며, 갈구하던 안식을 찾길 바라며.



 눈을 뜬 곳은 서울이었다. 목에는 통증과 함께 묘한 이물감이 느껴졌고, 오른손에는 수액 바늘이 꽂혀있었다. 사흘 정도 의식이 없었고, 또 이틀을 내리 잤다고 했다. 열 수도 없는 두꺼운 이중창마다 쇠창살이 달려있고, 나가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꼭 필요하며, 손톱깎이와 볼펜을 포함한 모든 쇠붙이가 금지된 곳, 보호병동에서 28일을 보냈다. 퇴원 후에도 통원 치료를 받으며 사회복지사와 두 달 동안 상담을 했고, 꾸준히 약을 먹었고 차도가 없어 또 한 번의 입원을 했다. 그 새 상황이 바뀌어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고 나는 주말마다 외출을 해서 밀린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갔다. 여전히 진전은 없었다. 병원에서는 또다시 상담치료를 권했고 밤마다 찾아오는 괴로움은 나를 놔주지 않았다. 입원을 하고 ECT(Electroconvulsive therapy, 전기충격요법)를 받자는 권유를 받았다. 약 부작용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미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어서, 마냥 그 병원이 싫었기에 거절을 하고 다른 병원을 알아봤다. 집 근처 대학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입원을 불사한 선택이었으나 새 병원에서 내어 준 건 약 몇 정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 훌쩍 지났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5년 간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다니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 쓸 글들은 치료의 역사를 담게 될 것이다. 우울증을 앓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고꾸라질 나를 위해 5년을 기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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