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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Nov 09. 2023

나의 20대는 바빴고, 퇴사한 30대가 되었다.

나의 20대는 바빴다. 바쁘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돈에 대한 집착으로 학업 중에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험 전날까지 했던 것 같다. 한 번 남자친구 생일에 지갑을 사주고는 용돈이 부족해 일주일 내내 1500원짜리 주먹밥으로 밥을 때웠던 충격이었거나, 캐나다에 잠시 지낼 때 돈이 없어서 1달러 짜리 빵으로 일주일 동안 아침을 때웠던 충격 때문일 거다.      


회사에 입사하고서도 퇴근하면 어떻게든 다른 일을 했다. 책을 읽고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글을 쓰고 애코백 같은 소품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회사에 그만 다니고 싶어서였다. 다른 돈벌이가 생기면 지금 회사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가 싫었던 건 일이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사람들도 좋았다. 그저 국기기관이라는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위직 공무원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납득이 되지 않고 상식을 벗어나는 조사를 지위 하나로 지시했다. 심할 때는 퇴근시간에 업무를 내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달라고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요즘에는 그렇게까지 빡빡하진 않았지만, 기한을 하루만 주는 건 매한가지였다. 의욕적으로 해내고 싶어도 어떤 상푸을 포장하는대 들어가는 포장지 g수를 상인들에게 조사하라는 등의 어느 누구도 모를 것 같은 정보를 수치화하는데, 현타가 무지막지하게 왔다. 보람도 성취감도 없었다.   

   

그리고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하루도 쉴 틈 없이 살던 20대를 보내고 조금 여유 있는 30대를 맞이하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이 시간이 무서워졌다.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쉬고 싶더니,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자니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아 푹 쉴 수가 없다. 쉬는 건 반대 행동인 무언가를 해냈을 때 행할 수 있는 거였지 싶다. 하루종일 그리고 몇 날 며칠 쉬는 건 존재할 수 없는 일 같다.     


정년퇴직 후 돌연사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나야 한 회사에서 7년 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30년 가까이 한 회사에 몸을 담고 그 울타리 안에서 한 인생을 바쳤다면,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도 안 된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나를 지지해 줄 여러가지를 만들어놔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남편만 바라보고 남편이 인생이 전부인 여자라든지, 일과 삶에 구분선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든지, 취미가 한 개도 없이 매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자진퇴사였지만, 나도 모르게 회사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던 것 같다. 20대엔 돈을 좇아 살았다면, 이제 무엇을 좇아 살지, 그동안 외롭지 않게 만들었던 취미들을 다시 한 개씩 시작해보며, 내 인생을 다시 형형색색으로 채워봐야지 싶다. 이 정도면 나 스스로 약 없이 불안과의 싸움에서 조금 승리해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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