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길 골목골목__ 열네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18.11.13 길상사 돌판 위 단풍잎: 한 칸 한 칸 내딛어]
골목골목 걸으며 다시 내 살갗에 그날들의 기억이 스치듯 살아났다. 글을 끄적이는 지금의 시간을 따라 나와준, 열두 골목의 선물 보따리 덕에 행복했다. 기억을 더듬어 꺼낸 내 생활 곳곳이 어느새 얼기설기 엮이고 있었음을 알았다. 부족하면 부족한 그대로, 하루하루 더해졌던 것이다. 어떨 땐, 머리가 아플 지경으로 얽힌 듯했지만, 그렇게 그렇게 쌓여가고 묵혀지면서 '나'다운, '나'스러운 토양이 되고 있었다. 어느 하루도 허투루 지나간 시간은 없었다. 이리 확언할 수 있는 것은, 결코 내가 꼭 무엇을 해냈기 때문이 아니다. 내 의지가 더해지지 않아도 내 삶 속 무심코 지나친 모든 것에서 건네받은 배움의 조각들이 그 시간에 녹아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을 다행히도 느꼈기에, 그리 말할 수 있던 것이다. 고마운 나의 오늘에.
지금 마흔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 참 많이도 다를 것이다. 각각의 위치에서 다른 일들을 하며 보내고, 생각도 다를 것이다. 서로 이야기 나눌 주제가 달라, 만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재거리가 떨어지고 말문이 막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 분명 너무나 공감하고 한참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마흔’만의 마음이 있으리라 믿는다. 모두 그렇게 그렇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낸 자들이기에. 그들의 하루하루 역시 허투루 지난 시간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내일, 마흔 그대들의 내일을 진심으로 복(福)을 빌어드리려 한다. 가장 후회 없이,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너의 하루들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우리의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 둘러앉아 맛난 음식 나눠 먹으며 “나는 이런 삶을 살았노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 고마운 우리의 오늘에 대해.
그러면서 생각 뒤편으로, 그날에 나눠 먹을 음식으로 몇 가지가 떠올랐다. 맛있어서, 더 맛 나는 내 인생 골목 ‘맛(味) 사총사’를 나의 꿈, 나의 글의 매듭 끈으로 고이 묶어본다. 그 언젠가 함께 풀어볼 끈 자락을 남겨둔 채.
그날의 음식1)
비빔밥이여! 무엇을 만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7년 전, 엄마와 강릉 정동진에 놀러 갔다. 6시간가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역 근처 식당 골목을 찾았다. 그리고 앉아서 먹는 동안 바다가 잘 보일 것 같은 가게를 선택했다. 우리는 식당에서 추천받은 메뉴를 먹기로 했는데, 바로 ‘멍게방풍 비빔밥’이었다. 숟가락으로 비볐다. 멍게에 고추장 무늬 방풍 이불을 덮어 주듯, 스윽스윽 부드럽게 섞어 주었다. 멍게 향이 방풍 향을 만나 내 코를 거침없이 치고 들어오는데,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었다. 그날, 엄마와 함께한 여행을 떠올리면 꼭 멍게와 방풍 향이 가득한 그 비빔밥이 생각난다.
그리고 차곡차곡 세월이 흘렀고 작년 1월, 마스크가 일상 속 깊이 스며들기 한 달 전 즈음, 신림동의 한 시장에 갔다. 오로지 ‘육회노른자 비빔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고운 빛깔 보석이 얹어진 족두리를 머리에 단아하게 씌운 듯한, 그 비빔밥의 자태는 가히 예술적이었다. 젓가락으로 비볐다. 젓가락이 지나면서 생긴 길들 사이로 노른자가 부드럽게 퍼지는 순간, 여기가 천국이지 싶었다. 궁합이 맞는 재료가 신선하게 한데 어우러지면 이리 맛난 비빔밥이 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자기 특유의 맛과 씹히는 질감을 지키면서도, 다른 재료에 부드럽게 자리를 내어주며 색다른 맛을 창출해내는 그 두 그릇의 비빔밥을 보며, 내 삶도 저리 살면 되겠다 싶었다. 내가 잘하는 것들의 신선도를 지키려 항상 가까이 품고 행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함께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맛있는 세상을 일궈나가 봐야겠다 싶다.
그날의 음식2)
그리운 그대, 김
15년 전 즈음이라 기억한다. 충무김밥은 충무에서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나만의 일념(?)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멀미로 인해 울컥거리는 속을 잠으로 달래며 시외버스를 타고 ‘충무’로 불렸던 ‘통영’으로 갔다. 덜컹대는 버스 안에서 5시간 가까이 머물렀더니, 내려서도 덜컹대는 속 때문에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속이 좀 편해졌는지 바닷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기지개 한 번 쫘악 펴고 근처 충무김밥집을 찾았다. 힐끗힐끗 창문 너머 손맛이 느껴지는 집을 찾았다. 운이 좋게도 얼마 걷지 않아 멈췄다. 창문을 뚫고, 김밥을 마시는 아주머니의 비범한 솜씨가 삐져나왔다. 홀린 듯 들어가, 충무김밥을 주문했다. 어찌나 설레던지,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길 때 즈음, 통통한 오징어무침, 커다란 무김치와 함께 담긴 솔직담백한 김밥이 나왔다. 순수하게 김으로 말아놓은 밥이었다. 그러나 고슬고슬 갓 지은 밥알 특유의 찰진 씹힘과 깊은 바다 향이 밴 김의 조합이 참 든든하고 좋았다. 왕복 10시간과 충분히 맞바꿀 만한 맛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리운 맛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안타깝게도 ‘하시모토갑상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3년 후, 앞으로 약을 먹지 않는 대신으로 몇 가지 음식을 조심하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다. “김,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를 멀리하라!” 그 처방 덕분에 다행히도 지금은 갑상샘의 정상 수치를 유지하는 중이긴 하나, 그 좋아하던 김을 멀리해야 하는 삶은 제법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묘책을 세웠다. 일 년에 한 번 오로지 나만을 위한 ‘김’ 파티를 열어주고, 그 힘으로 일 년을 버티기로 했다. 때는 크리스마스 전날로 정하고, 조촐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풍요로운 파티 시간을 가졌다. 맨밥에 생김을 둘둘 말아 간장에 찍어 먹고, 미역국 한 그릇에 밥을 술술 말아먹고, 다시마를 초고추장에 척척 찍어 먹었다. 그날의 한 끼는 내게 최고의 밥상이자 일 년을 이겨낼 수 있는 내 마음의 기력회복제였다. 맛있으나 가까이할 수 없는, 나의 귀한 벗 ‘김’ 역시 마흔 즈음의 그대들과 둘러앉아 나눠 먹고 싶은 음식이다.
맛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당연히 나와 마음 맞는, 아니 적어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 맛이 더 좋게 느껴질 것 같다.
문득, 우리 삶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그 밑 빠진 항아리 독 그 자체를 물속 깊이 넣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독을 진득하니 누르던 어느 날, ‘고르륵’ 잠긴 내 항아리를 발견했다. 내 기억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자유롭게 내가 만들었던 나의 틀로 넘어 들어옴을 보았다. 그 모든 것들은 내 항아리 독을 부수지도, 탓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리 스며들어 주었고, 가득 채워주었다. 마치 열두 골목에서의 작은 경험들이 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듯이. 작은 옹기지만, 천천히 나의 방식대로 나답게 계속 채워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