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길 골목골목__ 열세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18.05.19 주차할 곳 찾다가 눈길이 멈춘 곳: ‘문 열고 나오면 화분들로 가시겠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추운 날이었다. 나는 수채물감을 이용해 카드 만들어보는 ‘일일 수업’에 참여하려고 합정역에서 10여 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나무 합판 두 개가 서로 기대어 서점의 입구를 알려주는 간판으로 눈길이 갔다. 그리고 원래의 여행 일정인 양 그 간판을 따라, 건물 밖에 나 있는 계단을 올랐다. 그 후, 안쪽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기 전, 벽돌을 쌓아 만든 벽면 위에 흔적만 남은 초인종의 옛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에 그 흔적이 남은 부분만 벽돌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미처 초인종을 따라가지 못했던 양면테이프 두 쪽이 남아 있었다. 주택을 개조한 건물이었나 생각하며 그 초인종 흔적을 매만졌다. 괜히 고맙게 느껴졌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그곳을 다시 흰 페인트로 덮지 않아서, 양면테이프를 깨끗이 떼지 않아서 고마웠다. 그냥 그대로 두어주어 고마웠달까.
그 마음 품고 오른 두 번째 계단 끝에는 어느 독립서점이 있었고, 그곳의 마크인 ‘호랑이’ 얼굴을 ‘고양이’ 얼굴로 착각해놓고는 해맑게 좋아했던 만행(?)을 저지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던, 그날의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그곳에서의 시간 이후, 일이 년 전부터 조금씩 내 안에서 생겨나던 낯선 감정이 무엇인지 인지하기 시작했다.
“저기 8차선 도로 옆 보도블록 보이제? 옛날엔 전부 흙길이었는데, 코스모스가 색색별로 저 길가를 따라 피어 있었대이. 참 예뻤대이.”
집안 어른의 그 말씀 뒤로 그리움이 설핏 보였지만, 그때는 그 감정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해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그 어른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멍한 눈길을 한 채, 중얼거리셨던 어른의 그 뒤섞인 감정이 조금씩 내 살갗에 와닿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산자락 일부를 잘라 4차선 도로가 놓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동네를 감싸고 있는 산등성이에 올라 고층 건물 높이만 한 크레인들이 도시 곳곳 우후죽순으로 뻗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는 그냥 그렇지를 못했다. 가슴이 먹먹하다는 감정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그 날, 산에서 내려오며 김광섭의 1969년도 시 <성북동 비둘기>를 핸드폰으로 급히 찾았다. 고등학교 때 배운 시였다. 급변하는 산업화에 떠밀려 살아온 터전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담은 시라고 했었다. 그때는 그것 역시 그런가 보다 했었다. 다만, 누군가의 시린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 같은 그 시구에 담긴 애절한 마음이 무얼까 하는 생각은 품고 있었다. 비록 그 당시의 내 가슴에 와닿는 울림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산을 오르던 그 날, 내 마음은 화살처럼 날아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꽂힌 것이다. 성북동 위를 하염없이 휘돌고 있는 성북동의 그 비둘기에게 꽂혔다. 더는 그 시절 그 감정에 대한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핸드폰 화면에 뜬 그 시 속의 상황은 나를 시리게 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시인이 나를 알 리가 만무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시인이 고맙고, 고마웠다. 위로받는 듯했다.
최근, 우리 도시에는 재개발의 신호처럼 보이는 거대한 천막들의 수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그 지역에 사람의 온기가 빠져나가고 벌건 라카칠이 그려진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아마 한 집 한 집 비워질 때마다 뿌려졌을 그것 옆으로 버려진 살림살이들이 보였다. 누군가의 손길에 길들었던 못 빠진 의자와 한창 시절을 보낸 후 고장 나버린 선풍기, 그리고 대문 앞 주차금지 표지판을 지켜주던 바람 빠진 타이어까지⋯. 동네엔 모든 ‘숨’들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하지만 어딘가 숨결이 미처 못 빠져나간 곳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 이사 못 간 이들은 없겠지? 이곳이 고향이라 여기며 살아온 세월을 뒤로한 이들의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겠지⋯, 그들은 다른 곳으로 잘 갔으려나? 새로운 이웃들 사이로 잘 적응해갈 거야, 그렇겠지? 동네 곳곳을 누비던 고양이들은 먹이를 따라 잘 이동했으려나?’ 스멀스멀 별별 생각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라카칠 된 벽 아래 피어있는 작은 풀꽃을 보며 시 속 비둘기가 맡은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나도 느끼며 그 생각들을 잠시 멈추었다.
언젠가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윤보선길을 따라 오르다 왼쪽을 꺾으면 있던 지하 갤러리에서, 재개발지역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놓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그들의 방식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들 마음에 한없이 동의했고, 한 작품씩 정성을 다해 보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했다. 함께 기억하고 싶었다. 더불어 나 역시, 사라져가는 우리 동네 곳곳을, 함께 기억하고픈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어떠한 형태로든 말이다. 모든 것을 묵묵히 내어준 터전과 그곳을 가꾸며 살았던 모든 이들에게, 들리지는 않지만 ‘수고했노라.’고 진정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계속 머무르게 된다면, 그 언젠가 나와 나의 이웃들이 다 빠져나가고 없는 재개발지역의 서늘함을 겪게 되겠지⋯.’
‘나아감’과 ‘지나감’이 공존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현실이 나의 현실로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내 마음에 막연히 자리 잡게 될 줄 몰랐던 마흔 즈음의 그 감정은, ‘나’와 함께 시작했던 세상이 점점 바래가는 듯한 서글픔을 느껴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이 또 다른 이에게는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러했다. 나 스스로에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묵념의 시간이 필요했다.
‘부모님 당신들의 추억 위에 나의 미래가 세워졌고, 다시 나의 추억 위에 또 다른 그네들의 미래가 세워지고 있군요⋯.’ 나와 함께해준 오늘의 내 터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겠노라 깊이 마음 먹어 본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잊고 살았던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소중함을 찾아보려 한다. 그것을 다시 기억하고 새로운 것으로 피워내는 작업을 꾸준히 더해가며, 가장 나다운 한 줌의 흙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세상의 따스한 토양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