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해’_1
마흔 길 골목골목__ 열두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13.09.25 바닥에 그려진 꽃잎 따라: 땅따먹기 슬쩍 뛰어 밟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잘 하는 편이다. 다만 나를 지켜봤을 때, 표현을 잘하는 만큼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상대의 피드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는 표현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팔청춘 열차를 두 번 타고 내린 후부터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 따뜻한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덕에 조금 더 마흔의 마음을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의 옛 시절 구석 한켠에 담긴 온기 품은 불씨를 꺼내 들어 다시금 지펴 보려 한다. 언젠가부터 놓치고 살았던, 잊고 살았던 중요한 그것의 제자리를 찾기 위해.
마흔 길 골목골목__열두 번째
"어린왕자의 작명"
[2019.02.28 익선동 골목 2층 창가 식당에 앉아: 동심버튼 ‘OFF’에서 ‘ON’으로]
“딩동! 철커덩! 푸악!”
30년 전, 우리 집 앞 큰길 건너편에는 동네에서 제법 사람들이 모이는 나름 큰 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시장 가는 길옆으로는 단독주택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주택들은 대문 모양과 들어가는 길목이 매우 닮아 있어, 지붕 색으로 구분하곤 했다. 그 중, 친구들과 자주 즐겨 가던 길은 파란색 기와 모양 지붕이 처음으로 보이는 골목이었다. 학교 가는 길목 가게에서 사 먹던 군것질이 건네는 재미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길이었기에, 그곳은 주말 동안 나와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 길 끝에는 ‘봉봉’이라 불리던 커다란 텀블링이 2개가 놓인 곳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라도 항상 그 길로 향했다. 우리의 봉봉 덕분에, 나와 친구들은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유로움과 미끄덩 넘어지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공중목욕탕 휴게실에서 먹는 바나나우유처럼, 기차 안에서 먹는 달걀처럼, 우리의 다음 코스는 무조건 달고나였다. 작은 국자에 설탕을 넣고 단내와 탄내의 그 중간 즈음에 소다를 휘저어 부풀리던 그 달고나를 식기 전에 후후 불어먹는 맛은 “정말 달구나!”였다. 참 많이도 웃었던 때였다. 그렇게 그 당시 나의 걸음으로 5, 6분 정도 걸으면 당도할 수 있는, 그 골목의 끝과 끝을 단내 풀풀 풍기며 신바람 나게 내달리며 놀았다. 그런데 허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동안 그 골목에 있는 양쪽 집들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혼구멍나도 싼 놀이에 빠져 있었다.
몇 주의 장난이 쌓인 그 날도 우리들은 파란 지붕 집 앞에 모여 지그재그로 뛰면서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딩동! 댕동!” 골목에는 다양한 높낮이의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져 나갔다. 킥킥거리는 우리 웃음소리와 초인종 소리에 “누구세요?”라 답하는 어른 목소리까지, 골목이 시끌시끌해졌다. 그런데 얼마큼 누르며 뛰었을까, 갑자기 “철커덩”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문틈으로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엄청 벼르셨다는 것은 아주머니 표정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고, 우리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푸악” 그 후, 우리는 갈색빛 도는 빨간 고무 대야 속 물 폭포가 퍼붓기는 것을 피하느라 난리가 났었다. 그렇게 우리의 불장난은 그날로 끝이 났다.
훗날, 생각해보면 우리의 다리 쪽에만 튀긴 그 고무대야 속의 물은 구정물이 아닌,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불러 세워놓고 크게 꾸짖거나 잔소리하실 법한 일이었는데, 그러지 않으셨다. 만약 요즈음 그런 장난을 친다면, 범죄의 두려움마저 느낄 것 같다. 말하기 참 부끄러운 장난이었다. 그러나 그즈음을 따뜻하게 기억하는 건, 알면서 한번, 이해한다며 한번, 벼르며 한번, 그렇게 봐주다 시원한 물 한 바가지로 깨끗하게 스스로 장난을 마무리 짓도록 해주신 그 아주머니 마음 때문일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못난 장난을 참아 주신 그 길목 모든 분 덕분일 것이다. 그분들을 다시 만난다면, 기억하실까. 마흔 살 나에게도 그리 한없이 철없던 시간이 있었다. 다만, 고상하게 포장된 철없음이 지금도 문득문득 보이기에, 어쩌면 생의 마지막까지 철부지려나 싶다.
“으아앙! 팟팟! 흑흑”
‘국민학교’에 다녔던 그 시절, 우리 집 마루와 부엌 사이의 한 공간에는 커다란 단지 뚜껑이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주황빛이 도는 물고기 세 마리가 살고 있었다. 각각 이름도 지어주었다. 정확히 기억나는 이름 하나는 ‘멋쟁이’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름은 ‘이쁜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다른 한 마리 이름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키워본 생명체였기에, 불면 날아갈라 애지중지 돌보았던 것 같다. 돌이랑 풀 빼내서 물 갈아주는 일은 하지 않았기에, 정확히는 애지중지 관심만 가졌던 것 같다. 가족들이 모이면 항상 그 아이들 이야기하기가 바빴다.
함께한 시간이 계속 쌓여 서로(?)에게 정이 푹 들었을 때 즈음, ‘멋쟁이’와 슬픈 이별을 하게 되었다. “으아앙” 붕어눈을 넘어서 복어 눈이 될 때까지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고이 잘 보내주기 위해 아파트 뒤 화단에 묻어주고 우리만의 표시로 작은 돌과 낙엽으로 더욱 단단히 덮어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엄청난 빗소리에 놀라서 깼다. 우산도 없이 그 화단으로 뛰쳐나갔다. “팟팟” 쪼그리고 앉아 그 일대 흙을 파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어제 묻어준 내 작은 친구가 빗물에 휩쓸릴까 걱정됐던 것 같다. 복어 눈을 겨우 뜨고서 묻어준 곳을 찾았다. 빗물이, 퉁퉁 부은 내 눈 사이골에 맺혀 앞을 보기가 더 힘들었다. “흑흑”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곧이어 달려온 엄마의 우산 안에서 또 한참을 울었다. “언젠가 흙으로 다 돌아가니까, 멋쟁이가 묻힌 이곳 화단의 흙과 낙엽 모두가 멋쟁이인 거야. 멋쟁이는 이 화단에 피는 꽃들에 좋은 거름이 되어줄 거야.” 엄마의 말씀을 듣고서야 안심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더는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대신, 그 화단에 꽃이 피길 기다렸다. 몇 달 뒤, 나는 토끼풀꽃이 한가득 핀 화단에 서서 참 기뻐했었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법을 배워간 듯하다. 좋든 싫든 말이다. 그러나 아픔의 순간이 지난 뒤 찾아온 가슴 가득 차오르는 그 무언가를 맛본 그 시절 내 마음은 따뜻했다.
“살어리 살어리 다시 그리 살어리랏다!”
그 시절, 나와 내 벗들의 무의식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담긴 기쁨의 무게가 절대로 작지 않음을 알았던 것 같다. 매일매일, 어찌 그리 웃을 일이 많았나 모르겠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의식적으로 행복의 무게를 재기 위해, 그 동심(童心)은 저울에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잊혀가는 듯했다. 때론 그 동심이 현실성 부족한 느낌으로 비칠까 해 어른이라 불리는 나의 큰 덩치에 가려 두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내 마음속 무언가로 인해, 내 삶의 필라멘트를 흘러 동심의 불이 종종 켜졌다. 동심을 잃고 싶지 않은 내 마음속 ‘어린 왕자’ 때문일까.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어린 왕자도 있고, 여우도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내 마음속 어린 왕자는 마흔 즈음의 나를 다시 불러주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의 오늘과 여우의 오늘이 만나,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삶을 주고받는, 모두가 품고 사는 그 동심(同心:마음을 같이함)을 나의 동심(童心:어린이의 마음)이 그리워하는 듯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그 시절 나의 어린 왕자가 이런 생각을 품은 마흔의 내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지 궁금하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야.’
나 역시 그런 꽃 한 송이 키워낼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