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_2
마흔 길 골목골목__ 열한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15.12.15 부암동 내리막 골목에서: 민들레 홀씨 되어]
마흔 길 골목골목__열한 번째
"사계절 품은 그곳은"
[2015.12.15 부암동 카페 안 갤러리 전시 中: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때에]
간만에 따뜻한 날이다. 지금, 나는 집에서 나와 길 건너 나지막한 산 구석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내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 시야 속에는 산의 곳곳이 담기는 나름 명당(?)자리에 앉아 있다. 햇살이 적당히 비쳐 노트북 화면을 보기도 편하다. 집중해서 6년 전 기억을 더듬으려니, 귓가에 새소리가 들린다. “짹, 째액, 짹짹, 째액, 찍” 반복되는 새소리에 원래 이런 리듬감이 있었나 싶다. 나는 저들 이야기하고, 저들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나. 새의 리듬감 있는 지저귐은 6년 전 어느 갤러리에서 보았던 짧은 시 한 구를 떠오르게 했다.
그날 A.M 11:00 따뜻함에 카페 앞 동네고양이 마실 나오다
평소 나는 어떤 시인의 좋은 글귀를 읊거나 시집을 가까이 한 기억이 별로 없다. 15년 전 즈음 읽었던, 내 돈 주고 산 유일한 시집 한 권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시와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나였지만, 6년 전 그날 보았던 그 시 한 구는 참 강렬히도 다가왔다. 위로가 되어서일까. 아무튼 그날 나는, 부암동 오르막 골목 오른편에 붙어 있는 카페 안 그 갤러리 사진 한 장 앞에 한참 서 있었다.
해는 저물고 노을빛은 붉은데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이 꽃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때에 피어나듯이
우리 노동도 인생도 그렇게 디레디레, 천천히 꽃피워가는 것이지요"
‘디레 디레 천천히 천천히’, 내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사진 설명과 함께 액자 안,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었다. 밭에서 무언가를 따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이 담겨 있었다. 민트 잎을 거두는 여인들인데, 그녀들이 일하고 있는 그 인디아의 3월은 민트 향이 가득하단다. 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눈에는 담긴 ‘검고 갈라진 손’으로 일하는 그녀들을 보며 적어놓은 시구 같은 한 마디는 참 따뜻했다. ‘항상 “이래야 해! 저래야 해!”라면서 내 영혼이 따라오기도 전에 그 틈을 막아버리지는 않았던가. 삶에 임하는 나만의 속도를 스스로 탓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 내고 있는가.’ 이런 나의 되돌아봄은, 반성의 요구가 아닌 다독임의 손길을 건넨 사진 옆 글귀 덕분이었다. 잠시 울컥했다. 얇은 사과 조각들로 가득 찬 차 한 잔을 후후 불며 끝까지 다 마시고서야 그 카페를 나섰다. 신기하게도, 실컷 울고 난 후 답답함을 밀어내고 차오르는 후련함이 사과 향과 함께 느껴졌다. 따뜻했다. 카페 앞에는 동네 마실 나온 고양이 한 마리가, 힘차게 내려오는 내 인기척에 놀라 트럭 밑에 몸을 숨긴 채 빼꼼히 나를 올려다본다. “미안해!” 그 고양이와 글귀를 보기 전까지의 ‘나’에게 건넨 한 마디.
[2015.12.15 카페에서 내려오다 마주친 고양이: "깜짝 놀랐다옹!"
그날 P.M 12:00 골목 끝에서 떡 찌는 냄새 맡다
카페 쪽으로 올라갈 때 봐두었던 가게가 있었다. 건물에 간판이라는 짐을 지우지 않은, 하얀 벽돌집 방앗간이었다. 내려올 때, 잊지 않고 그곳으로 곧장 향했다. 고소한 냄새가 길가로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릴 적 집 근처 시장 옆 방앗간을 지날 때면 맡았던, 정겨운 떡 냄새였다. 활짝 열린 가게 문 안으로는, 갓 쪄낸 보슬보슬한 흰 떡들이 나란히 보였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고민이 됐다. ‘하나 사갈까?’ 그러나 나에겐 이틀이라는 여정이 더 남았다. 눈앞에 보이는 저 뜨끈한 보슬보슬함을 식은 채로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아쉬움을 접은 채 그냥 지나쳤다. 평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엄마 생각을 떠올리곤 하는 효녀는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이 집 앞에 서서 저 따끈한 떡을 호호 불며 함께 먹겠노라 다짐하며 그곳을 벗어났다. 아까 카페 앞 고양이도 그 근처로 와 서성이고 있었다. ‘날 따라서 왔나?’ 잠시 착각했다. 고양이는 저대로 고소한 냄새를 따라왔을 터.
그날 P.M 14:00 동네가 사람들로 북적이다
동네 언덕배기로 올라 환기미술관 전시를 관람했다. 미술관으로 오르는 계단 옆으로는, 봄이 오면 화사하게 피게 될 꽃들의 자취를 볼 수 있었다. 미술관 안은 시선이 향하는 방향들이 평범하지 않았다. 같은 작품을 위에서 옆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었고, 창들 역시 나의 시선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밖으로 나와, 미술관 둘레로 자리잡은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난관 앞에 서니, 커다란 나무들 옆으로 동네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들이 곳곳에 보였다. 택배차가 후진으로 빌라 단지로 들어가고, 장바구니 든 아주머니가 아이랑 같이 손잡고 내려오고 있었다. 주택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철커덩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화단에 긴 호스를 당겨 물을 주시는 소리가 단계별로 들렸다. ‘수도꼭지를 틀었구나, 호스를 당기는구나, 물 주시는구나.’ 마을을 이루는 평범한 집처럼 묻혀 있는 그 미술관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잠시 동네에 포함된 듯 여유롭게 길을 따라 내려왔다. 큰길을 건너, 부암동 석파정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날 P.M 17:00 해거름 해진 하늘을 바라보다
미술관 안에는 창의적인 요소들이 마구마구 뿜어나와서 참 좋다. 작품들에서도, 그 작품을 전시해놓은 손길에서도, 그리고 각각의 전시실로 이어지는 길목에 놓인 창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 담기는 자연의 모습에서도, 그 요소들이 주는 즐거움은 매우 크다. 그날 역시 그러했다. 작품들과 무언의 대화들을 한참 나누다 보면, 뭉쳤던 어깨가 풀리고 굳어 있던 입꼬리가 풀린다. 그리고 부러움이 살포시 밀려든다. 마냥 좋아하고 즐기던 그 전과 달리, 마흔 가까이부터 느낀 감정이었다. 그렇게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낸 그 자체에 대한 부러움은 아니었다. 다만,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제대로 인지하고 꾸준히 해내며 하나하나의 창작품으로 내어놓는 과정이 부러웠다. ‘나는 이미 늦은 게 아닐까’하는 섭섭함으로 인해 생긴 감정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다른 전시실로 건너가기 전에 있는 ‘쉼’ 공간의 창에 보인 자연은, 그런 나에게 아니라 했다. 이곳 미술관의 창은, 부러움에 대한 고백 이후부터 매번 그 감정의 방향을 ‘행하려는 힘’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자꾸 찾게 되었다. 미술관이 기대어 있는 그곳 자연만이 건넬 수 있었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미술관 꼭대기 층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부터 그 힘은 내게 더욱 강하게 와 닿았다. 돌 계단 끝자락부터 펼쳐지는 부드러운 산등성이 산책길이 가장 으뜸이었다. 걷기도 좋고, 생각하기도 좋았다. 감사한 곳이었다. 그 생각들은 산책길의 시작점인 한 곳을 서성이며 정리가 되었다. 지지대를 딛고 힘차게 서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곳이었다. 천세송이라 불리며 600년 넘는 세월을 살아낸 나무였다. 나무의 기둥은 마치 시간을 넘나드는 타임머신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를 온전히 알 것만 같은, 그 느낌에 나무 주위를 친한 척 한참을 서성이었다.
그날 P.M 20:00 어둠이 땅으로 내려앉다
분명 해질녘 하늘이었는데, 다시 미술관 꼭대기층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동안 해가 진 듯 했다. 밖은 거뭇거뭇해져 가게 불빛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길을 건너 북악산 테두리를 그리는 오르막 골목으로 향했다. 계속 걸었다. 골목 굽이치는 부분에 가고 싶었던 밥집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미술관을 나설 때즈음부터 다리가 아팠다. 2,3년 전부터 그랬다. 언젠가 패키지여행에서 뵌 할머니 한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다리가 후들거릴 때가 아닌, 가슴이 후들거릴 때 여행을 많이 다녀라.” 비록 다리는 후들댔지만, 맛집을 향한 내 가슴이 후들거리고 있었기에 설렘 안고 걸어 올라갔다. 결과는 ‘특급 칭찬’이 필요한 맛이었다.
그렇게 부암동의 여행을 매듭 짓고, 다음 날의 여정을 위해 인사동으로 넘어오는 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 뒤꽁무니로 부암동 골목골목들이 끼어서 딸려 오는 것 같았다. 버스 밖 풍경으로 눈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떠올린 부암동의 모습은, 미술관 창문 너머에 보였던 그 자연이었다. 매일매일의 모습 그 자체가 작품인 그곳에 단풍이 들 때즈음 다시 찾겠노라 다짐해보았다. 그 약속은 3년 후 이루어졌다.
사계절 품은 그곳은, 부암동 미술관 창에 비친 그 자연이었다.
여담: 경인미술관에서 돌보고 있던 고양이 가족들은 행위예술을 하는 작가처럼 자연스레 그 미술관에 녹아 있었다. 그래서 그곳 풍경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