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Mar 08. 2024

옆동네 도서관으로 출근해볼까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었고, 남의 손에 맡기기도 싫었던 나는 아이가 돌이 되었을 무렵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직금으로 경차를 마련했다.


 주말부부였던 우리는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를 보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10년 된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연수를 받았다.


 나의 첫 차 스파크로 말할 것 같으면 애달픈 나의 독박육아인생(어린이집에 안 보냈고, 남편과는 주말부부였으니 진정한 독박육아라고 할 수 있겠다.)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메이트였다. 아이가 낮잠을 안 잘 때면 카시트에 앉혀 동네를 하염없이 돌았고, 아이가 잠들면 그대로 주차장에서 숨죽인 채 함께 쪽잠을 잤다. 하루가 일 년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일단 운전대를 잡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어디라도 다녀와야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아이가 다쳐서 응급실을 찾아야 했을 때도 경차가 함께면 두려울게 없었다. 그 시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육아의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 한 것은 나의 애마 스파크뿐이다.


 한 때는 나의 벗이었던 차가 요즘은 좀처럼 주차장을 벗어나질 못한다. 아이를 끌고 다닐 시간도 별로 없거니와 지방으로 이사온 후로는 고속도로를 탈 일도 많아서 주로 남편 차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놀고 있는 차가 가여워 운전을 좀 해볼까 한다.


어디로 갈까. 그래. 오늘은 옆동네 도서관을 가보기로 한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열다섯개가 있다. 신도시에 새로 지은 제법 규모가 큰 도서관부터 어린이 전용 도서관, 작은 도서관 등 저마다 개성이 있다. 열다섯개 도서관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 도서관의 경우 인기 있는 도서를 구비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출하는 사람이 없는 탓인지 상호대차를 신청하면 거의 100% 받아볼 수 있다. 서울에 살 때는 대기가 너무 길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어려웠던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도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다. 내가 꼽는 지방으로 이사와서 좋은 점 중 하나다.


오늘 방문하기로 한 도서관은 구시가지에 있는 도서관인데 이곳 역시 높은 확률로 신간을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 중에 하나다. 상호대차를 신청하면 하루 이틀을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느니 직접 가보자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여기서 빌린 책은 반드시 여기에서 반납을 해야한다는 점이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같은 구역 안이라면 다른 곳에서 빌린 책도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반납할 수 있었는데 지역마다 운영규칙이 조금씩 다르구나.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책을 대출할 때는 이것저것 많이 빌리게 되는데 정작 반납할 날짜가 다가오면 슬슬 귀찮아진다. 연체를 하는 이유 중에는 부득이하게 일정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가 귀찮아서 반납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2주 뒤에 다시 이곳에 와서 책을 반납할 수 있을지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2주 뒤 '내가 왜 거기까지 가서 책을 빌렸지' 하고 후회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오늘 이 책을 빌리지 않으면 그 사이 다른 사람이 빌려갈지도 모른다. 놓치고 싶지 않다. 잠시 망설이는 나에게 도서관 게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3월 도서관 문화 강좌.


그래. 도서관에서 하는 강좌를 신청하자. 그럼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이곳을 오게 될테니 그때마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면 되지 않을까.


 리스트를 쭉 훑어보며 평소 관심있었던 프로그램이 없는지 찾는다. 그리하여 나는 매주 금요일 옆동네 도서관으로 출근하기로 한다. 수업도 듣고, 신간도서도 빌리고 일석이조니까.


그로부터 일주일 후 갑자기 내 손에는 붓펜이 들려있고, 언니들 사이에서 숨죽여 두시간을 줄긋기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신년운세가 맞긴 한가보다.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기회가 생긴다더니 뜬금없이 팔자에도 없던 일을 하고 앉아있는 것 보면.





 






매거진의 이전글 내 책 팔아 네 책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