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Dec 16. 2024

원하시는 출간조건이 있나요?

 솔직히 처음 투고를 할 때, 내 이름을 건 책 한 권을 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책이 얼마나 팔릴지, 독자가 내 책을 어떻게 읽을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오직 단 하나, 내 돈이 들어가는 일만 없으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출판사에서는 내가 원하는 출간조건을 말해달라고 했다. 어디선가 보통 출판계약을 할 때는 100만원 정도의 선인세를 받고, 10% 내외의 인세를 받는다고 들었지만 아무 경력도 없는 초보작가가 거기에 대고 계약금이나 선인세, 인세비율 등을 논의하기는 어려웠다. 어떻게든 내 책을 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계약을 하겠다는 출판사도 하나뿐이니 괜히 조건을 내세웠다가 난감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출판사에서 제안하는 그대로 받아드렸다. 그게 좋은 조건인지 아닌지 판단할 기준이 없었고,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조건을 수락하자마자 출판사에서는 내지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 원고 분량이 충분했으므로 내지 작업은 금새 마무리되었다. 몇차례 내지 디자인 작업에 대한 의견이 오고간 후 출판사에서는 우편으로 디자인 작업이 완료 된 원고를 보내주었다. 그럼 나는 프린트 된 원고를 다시 읽어보며 오탈자를 교정하고 문단을 수정하기도 했다. 내가 수정한 원고를 보내면 출판사에서는 재차 교정을 봤고, 이런 저런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럼 나는 의견을 반영해 다시 원고를 수정해나갔다. 


 원고를 수정하면서 나의 마음을 고백하자면, 자신이 없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 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이걸 돈주고 사서 읽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막상 책이 나왔는데 아무도 안 읽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 악플이 잔뜩 달리면? 누구에게라도 당당히 소개할 수 있게 완벽한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 시작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는 말, 일단 시작해야 끝을 낼 수 있다는 말. 수많은 자기계발서나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뻔한 이야기를 믿으며 작업을 계속 했지만 마음 한켠이 늘 불안했다. 출판사에서 나를 선택해 준 이유가 있었을거다. 상업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출간을 약속한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텐데도 나는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런 책을 만들고도 작가라는 이름을 얻는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욕을 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완벽주의라는 벽에 갇혀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출판사에서는 별다른 재촉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면 걸리는대로 기다려주셨다. 


 서너차례 우편으로 원고를 주고 받다보니 교정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무렵 나는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곧 책이 출간될 것 같다고 들떠서 섣부른 홍보를 시작했다. 누구보다 이 소식을 기뻐할 친정엄마와 남편과 아들에게도 조금만 기다리라며 큰소리를 쳤다. 


 문제는 형식적인거라 생각해서 미뤄두었던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터졌다. 잉크가 마를 때까지는 확언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