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나갔다. 바로 어제. 열 팀이 넘게 보고 나서야 계약이 성사됐다. 부동산에서는 주인이 살 때 보다 집을 훨씬 더 깔끔하게 썼다며 고맙다고 덕분에 빨리 집이 나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는 사람마다 감탄을 마다하지 않는 집이었다. 34평 4 bay 구조라는 점도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웬만한 집의 작은방 보다도 큰 팬트리와 드레스룸이었다. 게다가 초품아로 등교하는데 5분이 걸리지 않는 집. 방문하는 사람이 집을 칭찬하면 할수록 내 집도 아닌데 왠지 모를 아쉬움이 컸다. 수도권에서 이런 집을 이런 가격에 절대로 얻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다시 경기도로 이사 간다.
멀리도 돌아왔다. 8년 간의 주말부부 생활, 나는 남편에게 서울로 올라오라며 버티고, 남편은 남편대로 네가 지방으로 내려오라며 버티던 그 세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결국 백기를 든 내가 눈물을 흘리며 결심한 지방으로의 이사. 그 서럽고도 어려웠던 결심이 무색하게도 서울 발령은 너무 쉽게 결정되었고, 나는 남편을 따라 또다시 경기도로 이사를 가게 됐다.
"더 이상의 이사는 없어. 다시 발령이 나면 그때는 나 혼자 내려갈게. 이제 서울로 가자."
육아휴직 1년이 남편에게 준 것은 변화를 받아들일 용기였다.
본사 발령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부동산 검색부터 했다. 적어도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최근 부동산 시세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육아휴직 기간 동안 모아 놓은 돈 상당 부분을 쓴 상태인지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셋값 정도로 이사를 해야 했다.
남편의 출퇴근 시간을 고려할 것, 아이의 초등학교가 가까울 것 딱 두 가지 조건만 가지고 집을 찾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면서 전셋값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평수를 줄여야 하고, 신축 아파트에서 구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의미다. 주상복합이나 상업시설, 학원가 등은 적당히 양보해야만 대출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동네를 먼저 정하고, 아파트 시세를 찾아보니 우리가 가진 돈으로 선택할 수 있는 아파트는 이랬다.
18평짜리 신축 아파트.
24평짜리 소단지 10년 차 아파트. 기본 인테리어.
30평짜리 대단지 40년 차 아파트. 리모델링 되어 있음.
우리 가족의 현실이 한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이 돈으로 다시는 수도권 진출을 불가능할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집 하나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하긴 했다. 우리 가족의 특징과 개개인이 원하는 조건들을 적어보며 최종 집을 선택했다.
v 초등학생 자녀 1명의 3인 가족. 외벌이. 외식이나 쇼핑을 즐기지 않고, 가성비를 선호하는 편.
v 엄마는 교육에 관심 많은 편이라 학군지까지는 아니어도 학교 분위기나 학원이 잘 되어 있으면 좋겠고, 도서관이 잘 되어있으면 좋겠음.
v 아빠는 회사와 최대한 가까우면서도 단지 내 체육이설이 있어 헬스와 러닝을 할 수 있으면 좋겠음. 그 외에는 상관없음. 기숙사 생활까지 겪어 본 터라 집 컨디션에는 관대한 편.
v 아들은 학교와 가까웠으면 좋겠고, 집이 깨끗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여러 의견을 종합하여 우리는 24평짜리 소단지 10년 차 아파트로 최종 결정했다. 그렇게 가계약금을 걸어놓고 집에 돌아와서 문을 여는데 '아뿔싸! 큰일 났다'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34평짜리 집에 있는 물건을 전부 가지고 가는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이제부터는 강제 미니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