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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Sep 19. 2022

미루어봤자 결국은 내 일

 주변에서 살림이 즐겁다고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친정엄마조차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서점가의 살림, 요리에 관한 베스트셀러나 온라인에 떠도는 어느 집들을 보면 하나같이 완벽해 보인다. 그들의 주방이나 집안은 깨끗하다 못해 화사하고, 그들이 두르고 있는 앞치마에는 김칫국물 하나 튀어 있지 않다. 비현실적이다. 나는 어제도 김치를 썰다 흰 티 하나를 버렸는데. 


 마흔 언저리까지 살아 보니 공부는 잘하면 좋지만 못한다고 해서 먹고사는데 큰 지장은 없더라. 돈도 마찬가지다. 많이 벌면 물론 좋겠지만 조금 벌면 버는 대로 살 수는 있다. 정작 공부, 돈 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살림이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 하루 세끼 밥은 누구나 먹어야 하고, 옷을 빨아야 깨끗하게 입고 다닐 수 있고, 청소를 해야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주부이든 자취생이든 퇴직한 중년이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일이다. 그러니 먹고사는 그 일에 가장 기본이 되는 살림이나 집안일처럼 중요한 일이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렇게 중요한 집안일을 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걸까?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니까? 하지만 한 번이라도 살림을 도맡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가전이 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결국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것을. 

     

 집안꼴이야 어떻든 간에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방은 엉망진창이어도 사무실 책상은 깨끗할 수 있고, 집에는 빨래가 쌓여있어도 출근할 때는 단정하게 옷을 다려 입고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것이 진짜 나를 위하는 일이 아닐까. 정리되지 않은 너저분한 곳에 몸을 뉘어 잠을 청하는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리 없다. 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조금 더 아끼며 살고 싶다면 먼저 내 집부터 달라져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살림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을 거다.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지.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안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안 하고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림을 전문으로 하는 ‘살림이 귀찮은 전업주부’다. 솔직히 집안일이 정말 하기 싫다.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고 육아에 온 힘을 쏟고 싶어 일을 그만두었지만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곧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고, 집안일이 온전히 내 몫이 된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      


 귀찮은 마음에 집안일은 잠시 미뤄두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 정도 빨래나 청소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쉬고 나면 하고 싶어 지던가? 아니.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더 하기 싫어진다. 바로 했으면 금방 끝날 일도 밀린 일이 되면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살림이 싫으면 매일 조금씩 하면 된다. 싫은 일을 매일 하라고? 맞다. 습관이 될 때까지 조금씩 하면 된다. 


 우리 남편도 '회사가 싫다, 상사가 거지 같다' 하면서도 매일 출근을 한다. 우리 아들도 '연산이 어렵다, 한글 쓰기 싫다' 하면서도 매일 조금씩 연습을 한다. 몸이 기억한다. 아침 6시 반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아빠는 컴퓨터 앞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업무를 하고, 아들은 연필을 잡으면 저절로 이름을 쓰고 있다. 12시가 되면 배꼽시계가 울리고, 6시가 되면 퇴근하고 싶어 지고. 그 루틴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살림도 그렇게 하는 거다. 재미있고 보람 있기를 바라지 말고, 하기는 싫지만 할 만한 일로 만드는 것.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매일 조금씩 꾸준히만 하자. 어차피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룬다고 해봤자 결국 내가 할 일.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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