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Sep 23. 2022

아침에 끝내는 매일 살림 습관

 오은영 박사님 보시면 혼쭐날만한 우리 집만의 루틴이 있다. 아침에는 유튜브 보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단, 아침에만. 나름대로 사정은 있다. 유치원에서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라서 아침이라도 든든히 먹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아침에는 입맛이 없다며 잘 안 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TV 보면서라도 진득하게 앉아 밥 한 공기 비우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좋아하는 프로그램 틀어 놓고 정신 좀 차린다. 그동안 식탁 대신 텔레비전 앞 밥상에 밥을 차려준다. 그럼 아이는 TV를 보면서 밥을 다 먹는다. 나름대로 규칙도 있다. 1시간 유튜브 보는 동안 밥 다 먹기. 엄마는 아침 다 먹이기를 성공하기 위해서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메뉴로 밥상을 차리는 센스만 발휘하면 된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TV도 끄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옷 입고 바로 등원. 이것이 우리 집만의 아침 루틴이다.


 사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 먹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밥을 먹으면서 보고 있으니 일종의 시간 절약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메뉴보다 더 신중히 고민하는 것은 TV 프로그램을 고르는 일이다. 나만 그럴까? 가끔 식당에서 혼밥 하는 사람들 보면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이 많다. 먹방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도 혼자 밥 먹을 때 입맛을 돋우기 위해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육아서에서는 유독 아이들에게 절대로 텔레비전 보면서 밥을 먹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안다. TV를 보면서 밥을 먹으면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포만감에도 둔해져 비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에는 밥 먹는 것에만 집중하며 올바른 식습관을 배울 수 있게 돕고, 음식 고유의 맛을 느끼며 먹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알지만 현실 육아라는 건 항상 교과서처럼만  되는 건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하루 세끼 중 한끼쯤은 TV보면서 먹어도 큰 일 나지 않지 않은가. 


 간혹 그러다 아이가 텔레비전을 더 보겠다고 하면 어쩌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아주 어릴 때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곱 살쯤 된 아이는 규칙만 만들어주면 잘 지킨다. 우리 집의 규칙은 8시 50분에는 집에서 나간다는 거다. 그때까지 준비를 마치지 못하면 엄마 혼자 나간다. 그리고 정말로 그 시간이 되면 혼자 나간다. 한두 번 시간을 놓쳐 허둥지둥했던 아이는 이제, 엄마와 함께 나가려면 적당한 시간에 텔레비전을 꺼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래도 종종 더 보고 싶어 할 때가 있는데 가끔은 칫솔에 치약을 묻혀 TV 보는 아이 앞으로 가져다 주기도 한다. 양치하면서 마저 보라고. 헹구려면 어차피 화장실에 가야 하니까 그 타이밍에 텔레비전을 끄면 된다.      


 이 루틴이 좋은 점은 엄마도 외출 준비를 여유롭게 마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 밥 차려주고 먹는 동안 머리 감고, 드라이하고, 선크림 바르고, 눈썹 그릴 시간도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준비를 마치고 로봇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대 위에 마른 빨래를 정리하는 시간까지 생긴다. 그럼 아이를 등원시킨 후 집에 와서 내가 할 일은 없다. 집안일에 손을 대지 않아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정도다. 그럼 그때부터 나를 위한 일을 시작한다. 집안일 말고 진짜 내 일. 노트북 켜고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대신 아침 공부라든지 독서는 포기했다. 아침 목표는 단순하게 정했다.      


 1. 아침밥 다 먹고 떠나기

 2. 기분 좋게 웃으며 나가기

 3. 지각하지 않기


 그 세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에 TV 보며 밥을 먹는 것보다 좋은 루틴을 찾지 못했다.      


 아침 미디어 타임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오전에 실컷 봤으니까 오후에는 미디어와 멀어질 수 있다. 하원한 아이는 자유시간이 길어진다. 그 시간에 다 못한 공부, 독서, 놀이 등을 충분히 하면 된다. 굳이 아침시간에 무리하게 스케줄을 짜 놓고 아이와 얼굴 붉히느니 힘든 일은 오후로 미뤄두고 아침에는 웃으며 보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보면 한소리 들을 만한 루틴이지만 우리 가족은 이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안될 건 또 뭐야.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육아서에 나오는 FM대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먹고, 놀고, 자는 것조차 스케줄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 먹이고 재우는데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됐다. 오히려 육아서에서 말하는 원칙을 조금 내려놓고 아이의 욕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자 육아가 더 편해졌다. 아이가 아직 말로 설득이 불가능할 만큼 너무 어리거나 엄마가 아침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대할 자신이 없다면 내가 말한 아침 루틴도 정답이 아니다. 그러니 각자 집안 사정에 맞는 생활 루틴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다만, 육아서나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지나치게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 우리 집만의 자연스럽고 유연한 루틴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어차피 아이가 10명이면 10명 다 적용되는 육아법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전문가의 조언도 한두 번이지 결국은 내가 책임지고 키워야 하는 아이니까. 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차라리 엉성항 계획을 세워놓고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하는 경험이 더 의미 있고 값진 것이 아닐까. 

아이가 TV보면서 밥 먹는 동안 끝내는 오전 살림 일과



* 사진출처 : pixabay

이전 08화 미루어봤자 결국은 내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