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부스럭. 인기척이 느껴진다. 쏴아. 샤워기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일어났다. 찌뿌듯한 몸을 일으켠다. 씻기도 전에 부엌으로 간다. 벌컥벌컥. 냉수를 마신다. 정신이 조금 든다. 얼렁뚱땅 아침밥을 차린다. 늦장 부리는 아이를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세수해라, 양치질해라, 밥 좀 더 먹어라, 옷 입어라" 잔소리 폭탄을 날린다. 겨우 시간맞춰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쌓여있는 빨래, 정리하지 못한 설거지, 엉망이 된 이부자리, 어젯밤 미뤄두었던 방 정리까지. 전부 눈에 거슬린다. '세탁기만 돌려놓고 쉬어야지' 하고 세탁실로 가는데 꽉 찬 쓰레기봉투가 보인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늘어난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이가 올 때까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야겠다. 막상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손을 뻗어 더듬거려 본다. 스마트폰. 유튜브 검색, 쇼핑, 카페 탐방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띠리릭 띠리릭. 알람이 울린다. 벌써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에휴. 부지런히 움직인 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이유는 할 일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일을 다 하지 않은 채로 쉬고 있으면 마음 속에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릴 때 어른들이 늘 하던 잔소리처럼 할 일을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 그래야 가뿐하게 마음껏 놀 수 있다. 우리가 이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세탁기를 돌리기 전에 침대부터 찾는 이유는 아무도 나를 '통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출퇴근이라는 제도와 상사,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환경이 일종의 통제성을 발휘하게 한다. 하지만 전업주부는 어떤가. 시간에 맞춰 출근할 필요가 없다. 정해진 기한까지 끝내야 하는 일도 없다. 해야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도 나를 채근하지 않는다. 스스로 통제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흐지부지 시간만 보내기 딱 좋은 환경이다. 쉬어도 제대로 쉰 것 같지 않고, 일을 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고 느끼는가? 그럼 생각해보자. 내 일상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지 말이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쉬는 날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날들만 계속된다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더 쌓인다.
육아, 살림, 자기계발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다고 인정한 후로 살림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루 계획표를 짜보는 일이었다. 계획표의 중심에는 살림할 시간을 먼저 정해두었다. 수시로 보이는대로 치우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만 살림에 집중하기로 한 거다.
하루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간.
어차피 바쁘게 움직여야만 하는 시간.
나의 여가시간에 지장을 주지 않는 시간.
남편의 출근, 아들의 등원을 돕는 오전 1시간. 모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 오후 1시간. 나는 이렇게 하루 2시간만 살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시간은 최대한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이게 내가 발휘한 통제성이다.
혼자 있는 시간 = 엄마 퇴근 시간
엄마 퇴근 시간에는 가족을 위한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예를 들어 내 옷을 사기 위한 쇼핑은 하지만 아이나 남편 옷을 사기 위한 쇼핑은 주말로 미뤘다. 점심메뉴는 평소 먹고 싶었지만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없는 매운 음식이나 나만 좋아하는 메뉴들로 먹었다. 의도적으로 아이와 남편이 없는 시간에는 온전히 '나' 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나만의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하루 2시간, 살림을 위한 시간에 최대한의 효율을 발휘해 움직였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 매일 해야 하는 집안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고 오전 1시간 동안 매일 해야하는 집안 일에 집중했다.
살림을 줄이고, 나를 위한 시간을 늘리고 싶다면 꼭 가져야 하는 능력. 그것은 바로 통제성이다. '이거 하나만 보고 청소해야지. 잠깐만 누웠다가 빨래해야지' 이런 마음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시간만 보내게 된다. 오히려 '오전 1시간 집중해서 집안 일 끝내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어야지' 하며 스스로를 통제하고 느슨하게나마 하루 일과를 정해 활동하는 것이 살림에서 주도권을 잡고 집안 일에 허덕이지 않는 방법이다.
전업주부가 아니라 워킹맘, 독립 새내기, 혼자 사는 중년 어떤 상황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집이라는 공간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효율을 발휘하여 집안 일을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침대에 누워서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 신경쓰이고, 아침에 옷을 고를 때도 정리 되지 않은 옷방이 거슬린다. 그렇게 해서는 집이 에너지가 충전되는 곳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버린다.
집안 일에서 자유롭고 싶은가? 살림에 끌려가지 않고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명심하자. 하루 2시간. 살림에 집중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 안에는 최대한의 통제성을 발휘하여 효율적으로 일을 끝내자.
*사진출처 : pixabay